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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0997588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21-09-23
책 소개
목차
글머리에
1. 운명 앞에 서서 | 추억의 그림자들
1951년 초여름, 열한 살 소년의 고뇌 / 기억 속의 보좌신부님 / 두 교장 선생님 이야기 / 윤동주의 「별 헤는 밤」 / 운명 앞에 서서 / 신영복의 친구 N 이야기 / 어느 불자의 보시 이야기 / 딸과의 약속 / 홈커밍 / 그날, 스톡홀름 거리에서
2. 인생 3모작 | 원암리 일기
인생 삼모작을 실험하며 / 농사 예찬 / 잡초와의 전쟁 / 그해 겨울, 벽난로의 낭만 / 고성산불, 그 잔인한 기억 / 어쩌다 ‘코로나’ 소동 / 내 사랑 영랑호 /
3. 혜화동 연가(戀歌) | 내 마음의 고향
혜화동 연가(1) / 혜화동연가(2) / 리스본행 야간열차 /
4. 부끄러움에 대해 | 삶의 단상들
부끄러움에 대해 / 감동하는 능력에 대하여 /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자 / 새벽찬가
5. 꽃길만 걸으셨지요 | 나와 인간 존재의 탐색
꽃길만 걸으셨지요 / 내 아호 ‘현강’ 이야기(1) / 내 아호 ‘현강’ 이야기(2) / 프로이트와 아들러 / 프랭클과 ‘죽음의 수용소’
6. 장기려 그 사람 | 삶에서 만난 사람들
장기려, 그 사람 / YS를 추억하며 / 아름다운 청년이군! / ‘지애학교’ 학부모의 눈물 / 이육사의 꿈 /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어록 / 별처럼 수많은 ‘무명가수’를 위하여
7. 왜 아직 글을 쓰는가 | 글과 삶
왜 아직 글을 쓰는가 / 데드라인과 더불어 / 글을 쓴다는 것 / 65세~75세가 전성기? 왜
8. 종강록 | 스승과 제자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 스승의 날에 생각나는 일 / 50부터는 인격이 좌우한다 / 천직의 후유증 / 종강록
9. 역사를 보는 눈 | 나의 정치관
내 기억 속의 김구와 조소앙 / 역사를 보는 눈 / 지식인과 진영 / 대통령과 현인 / 대화(1) / 대화(2) / ‘슈뢰더’가 주는 교훈 / 처칠과 애틀리가 함께 쓴 전쟁과 평화의 서사시 / 국정운영의 ‘이어가기’, ‘쌓아가기’
10. 나의 삶, 나의 길
나의 삶, 나의 길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날 그 사건은 나, 열한 살 소년에게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안겨 주었다. 무엇보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양심의 가책에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상으로 따져 볼 때, 그가 나와 몇 마디 대화를 마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지프차가 덮쳤으니, 애초에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아니 설혹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더라도 그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당장 내려갈게.” 하며 급히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면 아마도 별일이 없었을 것 같았다. 그러니 내가 그 참혹한 사고의 유발자였다.
“나 어제 형을 만났어.”라고 작약)하던 그의 밝은 모습과 길거리에 쓰러져 있던 그의 흐트러진 모습이 계속 오버랩되면서, 가슴이 쥐어짜듯 저리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는 그가 죽었을까 걱정이 되었다. 사고 현장을 물들였던 핏자국으로 보아 중상이 확실하고, 그것이 자칫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면 나는 미칠 것 같았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부정적인 상상이 증폭되어 급기야 나는 그가 죽었을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이 이르게 되었다. 그러면서 급기야 ‘내가 그를 죽였다’라는 망령된 생각이 계속 엄습했다.
그날 이후, 나는 하루 한순간도 이 처절한 고뇌의 심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말수가 적어지고 밤잠을 설치는가 하면 끼니마저 자주 걸렀다. 그러니 옆에서 내 심경을 헤아리는 어머니의 걱정은 태산 같았다. 어머니는, “네 잘못이 아니야. 번잡한 길에서 빨리 차를 몰았던 그 군인들이 잘못한 거야. 그리고 세영이는 좀 다쳤겠지, 죽었을 리 없어.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대신 하느님께 기도해.” 하시며 나를 달래셨다.
인간은 누구나 운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으나, 그 운명의 영향 아래서 가능한 한 자기 영역을 확대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운명을 부정하고 거부하지는 않지만, 너무 그것을 의식하고 그에 매달리든가, 만사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미리 염탐해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역술가나 도사 등을 찾고 혹은 스스로 예지력을 키우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쁜 일은 미리 피하고 조심하며, 좋은 일은 더 열심히 노력하기 위해, 혹은 재미 삼아 그런다고 그럴싸한 이유를 댄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내일을 미리 내다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래는 운명과 자유의지의 합작품이기 때문에, 그것을 사전에 탐지하고 대처하기보다는, 미래의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그 안에서 자유의 몫을 키우고 그 영역을 확장하는 데 더 진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운명이라는 어휘 자체가 이미 초월성과 신비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얼마간 신의 영역이 깃들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미래 세계에 미리 가보려 하는 일은 우리 인간이 신의 비원을 기웃거리는 행위이다. 그것은 주제넘은 일이며, 자칫 신의 노여움을 살 수도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뽑고 돌아서면 다시 고개를 내미는 것이 잡초다. 한쪽 구석에 손대다 보면 저쪽 구석이 무성하다. 한나절 일해야 겨우 한 고랑을 마친다. 그래서 잡초와의 전쟁은 영원한 전쟁, 승산 없는 싸움이라는 절망감이 밀려올 때가 많다.
세계 여러 나라 대통령이나 수상들이 ‘빈곤과의 전쟁’,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남미의 대통령들도 자주 ‘마약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조폭과의 전쟁’을 공언한 검사장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세상이 떠들썩댔지만 실제로 크게 성공한 예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이 온갖 ‘전쟁’들을 주도했던 주역들도 내가 비 온 후 마치 불사조처럼 기세등등 새파랗게 다시 솟아오르는 잡초 앞에서 느꼈던 진한 열패감을 맛보았을 것 같다. 암 수술에 임한 집도의가 개복 후, 암세포가 원발부위에서 다른 부위로 크게 전이된 것을 발견하고 느끼는 좌절감도 이와 비슷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