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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51025853
· 출판일 : 2008-09-03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거니?”
그나마 한참 있다 나온 속삭이듯 갈라진 그의 낮은 목소리가,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서 있는 두 사람의 공유된 공간을 맴돌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서야 진원도 숨을 들이마시며 빠르게 오른팔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을 낚아 문 안으로 잡아당겼다. 예은이 얼굴을 묻게 된 곳은 그의 단단한 가슴. 촉감을 통해 기억하는 잘 짜인 그의 상체만큼이나 분명하게 기억하는 그의 체취와 열기에 싸여 예은은 귓가에 울리는 그의 심장 소리와 불규칙하게 오르내리는 가슴의 움직임에 머리를 맡겼다. 그 자신의 이성은 분명히 예은이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자신의 물음에 답하던 그녀의 고갯짓을 보고도 믿을 수 없다고 속삭이는 목소리의 존재는 무엇인지. 너무 절실하게 원하던 것이 환영이 되었을 때 삼켜야 할지도 모르는, 너무 쓴 체념의 덩어리를 뜻밖에도 순식간에 두려워하게 되었기 때문은 아닌지. 확인해야 하는 간절함에 만져야 했고, 따뜻한 체온과 매끄러운 피부가 그의 손아래에 닿는 순간 와락 당겨 안아야 했다.
“날 너무 놀라게 하는구나.”
“괜찮아?”
“머리가 좀 아프지만 참을 만해요.”
“잘 참는구나. 머리 아픈 것만 참고 있니?”
안색이 창백해서인가, 예은의 큰 눈이 더 커 보였다. 의미를 함축한 진원의 질문에 놀라는 것 없이 말갛게 마주 쳐다보는 예은의 눈빛에 언뜻 비친 감정이 열정과 억제의 힘겨운 혼합이라고 느낀 것은 진원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다 참아 낼 수 있어요.”
나오는 말은 그런데 눈빛도, 목소리도 흔들렸다.
“왜 너는 참아야만 하는데?”
“……참지 않으면 어떡하는데요? 이 방법뿐인데.”
어떤 종류의 대답이든 곧바로 들려도 이미 예은의 흔들림을 보아 버린 지금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텐데, 그녀의 대답이 한참 만에 돌아왔다. 지금 저 두 눈에 엷은 막처럼 끼는 것이 수분인가. 진원의 이성이 그를 버렸다. 호주머니에 가두어 놓았던 손이 주술에 걸린 듯 예은을 향해 움직였고, 안는 것으로 예은의 지친 모습을 다 흡수하기라도 하려는 듯, 그의 팔이 예은의 허리를 감아 자신의 몸에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가두어 안았다. 이런 느낌일 줄은! 온몸의 세포들이 하나같이 열리듯 반응하는 대로 예은은 그냥 진원에게 가만히 갇혀 있었다. 손이 묶인 채 물 속에 던져진 느낌 속에서 가라앉지 않으려 발버둥 치기 싫었다. 억지로 애쓰는 거 말고 가만히 물살 가는 대로 몸을 맡겨도 그냥 가라앉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지쳐서 이런 걸까 묻는 것조차도 힘겨웠다. 난생처음 예은의 충동이 그녀의 지각 능력을 눌렀다. 그의 단단한 가슴 그대로, 강한 팔 그대로, 머리 위의 뜨거운 숨결 그대로, 그냥 느껴지는 대로 거부하기 싫어서 살며시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었다. 느껴질 듯 말 듯한 그 작은 움직임이 예은의 첫 허락이라는 것을 생각해 낸 순간 진원은 저녁 내내 지독히도 자신을 괴롭히던 갈증의 일부분을 허락하고 말았다. 거세게 부딪혀 오는 뜨거운 입술을 받아 내며 예은은 그나마 쥐고 있던 가는 이성의 끈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