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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중국문화
· ISBN : 9788952111395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11-01-14
책 소개
목차
1장 선종으로 이해한 중국의 원림문화
2장 당·송대 사회의 특징
사대부 계층의 성장과 그 역할
장원제와 지방경제의 활성
불·유·도 사상의 자유로운 교류
3장 선종의 등장과 확산
중국과 선종
선종의 등장
돈오돈수|불립문자ㆍ직지인심ㆍ견성성불
선종의 전개, 선의 황금시대
평상심시도와 재가선 문화|백장청규와 차문화의 전개|선의 일반화|
선과 사대부의 교류|재가선의 발전
4장 당·송대 원림의 발달과 전개
중국의 고전원림
당대의 원림
당대의 도시원림|당대의 교외원림
송대의 원림
송대의 도시원림|송대의 산수원림
5장 당·송대 산수원림의 구성과 공간적 특징
왕유의 망천별업
왕유의 행적과 선종 교류|망천별업의 입지 조건과 공간적 특징
백거이의 여산초당
백거이의 선종 교류와 원림 조영 활동|여산초당의 공간적 특징과 현황|
소동파의 동파원림
소동파의 선종 교류와 원림 조영 활동|
동파원림의 공간 구성과 원림 감상의 특징
6장 당·송대 산수원림과 사대부 선취의 영향
음차문화와 산수원림
다선일미와 음차문화의 전개|산수원림과 음차문화의 영향
산수원림의 의경
선종과 의경미의 관계|산수원림과 무한의 경계미
자연산수미의 재발견
자유자재의 심적 경계와 원림 경계의 확장|상즉과 산수원림의 전형
7장 원림, 경계 없는 자연
저자소개
책속에서
중국 정원에서 만난 선과 차, 사대부와 의경
이 책은 ‘중국의 원림문화는 무엇인가?’라는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답은 원림의 공간 구성과 형태에서 찾기보다는 원림을 이루는 사상과 배경에서 찾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선종’이다. 선종은 중국 역사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사상 가운데 하나로 당·송대 사대부와 문화예술 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필자는 이 책에서 안과 밖이 밝은 돈오와 돈오의 삶을 살려고 한 사대부, 또 그들이 풀어놓은 원림의 함의를 통해 산수원림의 경계 없는 경계를 밝혔다. 사대부들은 선으로 의경을 완성하고 능동적으로 살았으며 경계에 자유로워 높은 정신세계를 향유하였다. 그들이 머물고 행하는 곳은 모두 원림이었고 보이는 곳 또한 원림이었다. 당·송대 사대부는 경계 없는 원림, 경계 없는 자연산수에서 선으로 차를 마시며 시를 읊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사대부와 선종의 만남
한유韓愈768~824의 '논불골표論佛骨表'는 정치적인 입장에서 불교를 반대한 내용의 글이다. 그는 헌종이 부처의 사리 친견 법회를 궁궐에서 열려고 하자, 배도裴度, 최군崔群 등과 함께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하였다.
… 위의 글에 나타나는 한유의 반불교적 견해는 유교를 숭배하는 그의 복고적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이는 훗날 회창년간에 단행했던 무종의 훼불 사건에 대한 정당한 명분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상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조주 자사로 폄직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유는 조주로 좌천된 이후 여러 차례 스님들과 만날 기회가 생겼고 그들을 통해 선을 접하게 되면서 오히려 선에 대하여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는 '여맹간상서서與孟簡尙-書書'에서 “조주에 머물 때 태전이라는 한 노승을 만났는데, 매우 총명하고 도리에도 밝았고, …… 실로 육체를 도외시하고 이치로써 자신을 다스려 외물에 의한 혼란됨이 없었다. 같이 대화할 때는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어도 하여튼 저절로 흉중에 막힘이 없어지고 시원했다.” 하여 태전 선사(太顚)를 통해 접하게 된 선에 대한 인상을 기록하였다. 여기서 한유는 태전 스님과의 만남이 매우 격조있었음을 밝혔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논불골표?의 불교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과는 상이하다.
원림 공간 구성의 구체적 묘사
망천별업은 동남쪽에서부터 서북쪽으로 약 20여 리에 달하는 지역에 선형을 이루고 있으며, 별업을 감싸고 있는 망수는 종남산의 동채욕과 서채욕에서 흘러와 망천에서 합류한다. 그리고는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흘러가며 다양한 형태와 색채를 띤다. 이곳은 크게 ‘진입 공간-거주 공간-후원’으로 공간이 구성된다. 별업이 시작되는 망천 계곡에 들어서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는 언덕 ‘화자강’과 성벽 등의 유적이 남아 있는 편평한 ‘맹성요’가 나타난다. 왕유의 '맹성요'에 화답한 배적의 시와 '남전현지藍田縣志'에 의하면, “맹성은 본래 고성古城으로 당시에 성곽은 흔적만 남아 있으며, 화자 언덕은 지세가 주변보다 높아서 조망이 가능하다. 그리고 맹성요를 지나면 주요 거주 공간인 망천별업 건물이 나타난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