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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외국 과학소설
· ISBN : 9788952216663
· 쪽수 : 562쪽
· 출판일 : 2012-02-01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앤드류는 눈을 감았다. 이미 볼 만큼 다 보았기 때문이다. 그 방의 장면은 인간에 대한 잔인함과 냉담함을 단적으로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충분한 기회와 상상력과 예리한 칼을 가진 인간이 동류 인간에게 얼마나 잔혹한 짓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 주었다. 살인자는 처참하고 잔인한 해부학에 대한 지식을 보여 주었다. 앤드류는 난생처음으로 삶은, 그러니까 진짜 삶은 그들이 날마다 시간을 보내는 방식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의 입술에 키스를 하는지, 어떤 메달을 따고, 어떤 신발을 수선하는지 여부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진짜 삶은 우리의 내부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지하의 강처럼 흐르고, 외과의나 병리학자, 혹은 잔인한 살인자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기적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궁극적으로는 빅토리아 여왕이나 가장 비천한 거지나 별 다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사람은 뼈와 기관과 조직들의 복합한 구조로 이루어지고 호흡은 신이 부여해 준 것이라는 사실을.
“그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용기는 없어요. 그것이 세상을 좋게 변화시킬지, 아니면 나쁘게 변화시킬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어요. 무엇이 인간들을 책임감 있는 존재로 만드는지 자문해 본 적 있소? 감히 말씀드리죠. 그것은 사람들이 뭔가를 한 번에 단 한 번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의 가장 어리석은 실수까지 고칠 수 있게 해 주는 기계들이 있다면 세상은 무책임한 자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 힘을 고려해 볼 때 지극히 우스운 개인적인 일로만 사용할 수 있지요. 하지만 만일 유혹에 넘어가 과거의 무언가를 바꾼다거나 아니면 현재의 상황을 좋게 만들기 위해 미래로 여행하게 된다면? 그건 내 친구의 꿈을 배신하는 겁니다…….” 그가 실망스런 한숨을 내쉬었다. “보시다시피, 그 훌륭한 기계는 내게 방해물이 되기 시작하는군요.”
찾던 물건을 발견하자 루시는 서랍을 닫고 상기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루시에게 죽은 자들과 얘기를 하는 것보다 더 흥분되는 것이 무엇일까, 클레어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루시가 자기 손에 놓아 준 팸플릿을 보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루시는 흥분된 표정으로 그녀에게 옅은 하늘색의 팸플릿을 건네주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작은 종이에는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는 로봇과 인간의 전쟁을 관람하는 시간여행, 구체적으로 2000년으로의 여행단을 모집한다는 머레이 시간여행사의 광고가 실려 있었다. 클레어는 놀라서 팸플릿의 내용을 여러 차례 읽고 바로 그 전쟁을 암시하는 투박한 그림을 살펴보았다. 폐허가 된 건물 사이에서 로봇과 인간들이 세계의 운명을 놓고, 이상한 무기를 들고 서로를 향해 쏘고 있었다. 인간의 군대를 지휘하는 인물이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삽화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를 더 영웅적인 포즈로 그렸는데, 그림 밑에 적힌 내용에 의하면 그는 용감한 데릭 섀클리턴 대장이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