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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역사
· ISBN : 9788953142282
· 쪽수 : 532쪽
· 출판일 : 2022-06-29
책 소개
목차
서곡(A Prelude). 2천 년간 우리가 걸어온 길에 대한 정직한 탐구
1. “거룩한 교회”라는 신앙고백이 무색해진 날
# 1099년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지른 대학살
2. 간략하게 짚어 보는 십자군 원정의 전후 맥락
# 1000-1200년대 # 성공한 성전(聖戰)?
3. 더없이 온전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원 곡조
# 1세기 # 기독교 윤리
4.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에 무심한 교회들
# 1세기 # 기독교 인간관
5. 초기 기독교, 뜨겁고 훌륭한 패배의 순간들
# 64-312년 # 교회가 당한 박해들
6. 콘스탄티누스와 ‘종교의 자유’ 선언
# 300년대 초 # 최초의 기독교인 황제
7. 세상에 스며든 ‘기독교적 자선’의 첫 단추
# 300년대 초 # 로마법의 재정적 변화들
8. 배교자 율리아누스의 반기독교 노선
# 360년대 # 기독교 시계를 거꾸로 돌린 황제
9. 힘센 근육질 기독교의 등장
# 300년대 후반 # 주교가 된 ‘원로원 의원’
10. 카파도키아 3대 교부의 실천적 복음
# 300년대 후반 # 최초의 병원 #노예제
11. 폭력을 동원한 이교 탄압과 이교의 불법화
# 380-415년 # 기독교인의 폭동 # 이교 신전들의 폐쇄
12. 국가 폭력에 대한 신학적 정당화?
# 400년대 초 # 기독교 전쟁론
13. 무너진 서로마제국, 교회의 성장
# 400-1100년 # 유럽의 바바리안과 기독교인들
14. 터무니없는 강압과 폭력, 기독교 ‘지하드’
# 700년대 후반 # 유럽의 강제 개종
15. ‘르네상스’를 꽃피운 지성적인 중세 교회
# 암흑시대 한복판 # 교육자 요크의 앨퀸
16. ‘그리스도의 기사’로 탈바꿈한 교회
# 1100년으로 가는 준비 기간 # ‘성전’(聖戰)의 서곡
17. 위선자들을 꾸짖고 개혁에 앞장선 선지자들
# 중세 # 수도원과 개혁 활동
18. 동방의 영원한 제국, 비잔티움이 남긴 유산들
# 500-1400년대 # 서방에 잊힌 동로마제국 사람들
19. 암흑시대 내러티브의 전말
# 500-1200년대 # 세속 스토리텔링이 붙인 슬로건
20. 종교재판, 사람 잡는 기독교 독단주의?
# 1100-1500년대 # 이단재판의 진위
21. 종교적 신화들로 얼룩진 30년 전쟁
# 1600년대 # 종교개혁기에 일어난 피비린내 나는 전투
22. 북아일랜드 분쟁, 또 하나의 비극적인 종교전쟁?
# 1700년대-1998년 # 신구교의 충돌이 화근?
23. 해명이 불가능한 교회 내 악행에 대한 도덕적 결산
# 현대 교회 # 아동성학대
24. 신앙을 오롯이 내면화해 실천할 때 맺히는 열매들
# 현대 교회 # 평범한 신자들의 선한 영향력
25. 우리 모두의 눈 속에 있는 들보
# 모든 시대에 도사리는 위선
종결부(A Coda). 기독교, 다시 생명의 원 곡조로 돌아갈 시간
감사의 말
주
리뷰
책속에서
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니케아신경으로 알려진 기독교 공식 신경은 신자에게 “거룩하고 보편적이며(catholic; 여기서 ‘catholic’은 로마 가톨릭이 아니라, 단순히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사도적인 교회”에 대한 믿음을 선언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아주 실질적인 의미에서, 기독교인(Christian;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기관에 대한 모종의 믿음 또는 영적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Hades〕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 16:18, 새번역).
하지만 수 세기에 걸친 기독교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회가 한결같이 “거룩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진실을 알고 있다. 때로는 교회가 “죽음”의 협력자가 아니었던가! 오랫동안 역사를 연구했고 그 시간보다 더 오래 교회를 다닌 나는 갈등을 느낀다. 나는 교회사의 무덤 어디에 시신들이 묻혀 있는지 알고 있는데, 니케아신경의 문구를 어떻게든 고백해야 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이 모든 상황은 연관된 문제를 제기한다. 십자군 원정은 종교적 동기에서 진행된 전쟁이었을까? 이따금씩 제시되는 몇 가지 대안적 설명 뒤로 숨고 싶은 유혹이 든다. 십자군 원정은 종교를 가장한 유럽인들의 토지 수탈일 뿐이었다든지, 새로운 자원 모색의 일환이었다든지, 할 일 없는 수만 명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책략이었다는 설명 말이다. … (중략) … 십자군 원정에 관한 일차 자료를 읽다 보면, 그곳에 표현된 강력한 종교적 동기 및 목표와 맞닥뜨리게 된다. “같은 기독교인들을 보호하고, 성지의 명예를 지키고, 밀려드는 이슬람의 ‘이교 사상’에 맞서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일의 중요성.” 앞서 인용했던 아귈레의 레이몽은 제1차 십자군의 종군 사제였다. 그는 이 폭력 행위들 안에 내재하는 영적 사명을 일깨우는 구체적인 사명을 가졌다. 1099년의 대학살을 두고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이날은 기독교의 옳음이 드러나고, 이교 사상이 굴욕을 당하고, 우리의 신앙이 새롭게 된 날이다.” … (중략) … 갈라져 싸우는 유럽을 통합하기 위해서였든, 서방 기독교계와 동방 기독교계를 결합하기 위해서였든, 우르바누스 교황의 정치적 야심이 둘 중 무엇이었든 간에 그의 ‘신학’이 그의 생각을 떠받치고 있었다. 우르바누스는 교리와 도덕의 문제에서 그가 생각하는 이전 시대 교회의 순수성을 되찾고 싶어 했다. 그는 회개와 연합이라는 위대한 순간이 있어야만 교회가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먼 동로마제국의 기독교인 황제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에게서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바로 그 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상황을 망쳐 놓는 인간의 성향을 건강하게 인식하는 사람들만이 바깥세상의 부도덕을 제대로 탄식할 만한 위치에 서게 된다. 이것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의 의미다. … (중략) …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부도덕을 볼 때 보이기를 기대하셨던 반응은 ‘슬픔’이다. 교회가 이따금씩 악명 높게 자행한 ‘심판을 일삼는 태도’가 아니다. 자신의 도덕적 가난함을 먼저 보고 그 이후에야 다른 이들의 “도둑질과 모든 악한 짓”을 슬퍼하는 겸손한 비애다. … (중략) … 세상 속 기독교인의 기본자세는 “죄인들의 모임”의 정식 회원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비애여야 한다. 우리는 자기 안에 있는 악을 먼저 보고 난 뒤에 세상의 악을 애통히 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