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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예배/기도/묵상(QT)
· ISBN : 9788953148864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4-07-24
책 소개
목차
추천사
머리말
들어가는 말
1부. 기도의 초보에서 벗어나는 법
1장. 그들은 어떻게 기도했는가 - 기도의 네 가지 단상
대주교의 죽음 / 기도 응답을 5만 번 받은 조지 뮐러 / 주여 왜? / 하나님의 임재 연습
2장. 기도를 배운 적이 있는가 - 기도는 주님 앞에서 하는 것
개헤엄과 수영은 분명 다르다 / 누구에게 기도하는가 / 유대인의 18번 축복 기도 / 주의 기도
3장. 하나님께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 나를 변화시키는 기도
기도란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 기도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 기도란 원초적 언어이며 절규다 / 기도란 실에 구슬을 꿰어 가는 것이다
2부. 기도 응답의 자리로 나아가는 법
4장. 왜 기도하는가 - 기도란 응답받기 위해 하는 것
당신은 왜 기도하는가 / 기도 응답인가, 소원 성취인가? / 거절된 응답에서 발견하는 섭리 / 꾀가 통하지 않을 때 기도한다 / 고독은 하나님을 만나는 위대한 자리 / 기도 응답을 확인하는 3단계 심증, 확증, 물증
5장. 나는 누구인가 - 죄인이라 고백할 때 만나는 하나님
네 이름이 무엇이냐 /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시는 분 / 기도할 때 자아의 자각이 일어난다 /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나를 아는 지식 / 나를 발견하는 은총과 조하리의 창
6장. 나를 누구라 부르시는가 - 소명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라
야곱, 이스라엘이 되다 / 하나님이 바꿔 주신 이름의 의미 / 인생의 B to D, calling과 choice 사이 / 나의 사명 S.T.O.R.Y 발견하기 / 클라크 교수의 사명,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7장.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는가 - 브니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라
사흘만 볼 수 있다면 /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을 뵙다 / 하나님의 얼굴로만 누리는 해갈의 기쁨 /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 관상적 체험이란 무엇인가
3부. 기도하는 자의 삶의 자세
8장. 기적을 살아가는가 - 소망의 내일을 걸어가라
형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다 / 야곱의 크로노스, 카이로스, 플레루 / 브니엘 체험 이후 다시 세상 속으로 / 브니엘 체험의 내연과 외연 / 브니엘이 답이다
참고도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수영을 제대로 배우려면 고수로부터 코칭을 받아야 한다. 수영법엔 나름대로 호흡법과 자세가 있다. 호흡과 자세를 배우지 못하면 수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개헤엄과 수영은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르다. 기도 역시 이와 같다. 자기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좋지만, 성경과 교회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제대로다. 열두 제자들은 기도에 상당한 경험과 식견이 있었지만, 예수님께 기도를 배우길 원했다. 개인의 체험보다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은 더 소중하고 의미 있다. 예수님은 기도의 대가시며 영원한 스승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소리를 들으신다. 말로 드리는 기도,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 소리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갈망, 탄식과 신음까지도 들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뱉은 탄식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신음을 들으시고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셨다(출 2:23-24). 일차적으로 좋은 기도란 자기의 현재 느낌이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원초적 언어와 절규는 느끼는 그대로의 날것이기에 점잖지 않고 세련되지 못할 수 있다. 어떤 이는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감정표출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기도가 무기력한 이유는 너무 세련되기 때문은 아닐까. 언제부터인지 많은 기도가 세련된 언어와 교양적인 표현으로 드려진다. 좋은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우아하게 포장되고 다듬어진 기도엔 힘이 없어 보인다. 기도에 매끄러움은 있지만, 야성(野性)과 뜨거움과 간절함이 없다. 반면, 원초적 언어와 절규의 기도는 거칠고 투박하지만, 뜨거움과 간절함이 있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다중적 자아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예컨대, 아버지로, 아들로, 남편으로, 사장으로, 교인으로, 친구로 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을 이루는 정체성은 다중적이다. 야곱도 그러했다. 야곱은 이삭의 아들이요. 에서의 동생이다. 외삼촌 라반의 조카이며, 레아 라헬의 남편이다. 동시에 여러 자녀의 아버지요 가장이고,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그러나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나 기도하며 본질적인 자기 실체 곧 사기꾼 야곱을 본 것이다. 사람은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깊이 숨어 있는 자기의 실체, 즉 진짜 정체성을 볼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얍복강 기도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 형의 이름이 무엇이냐’, ‘아버지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타인이 아닌 야곱 자신의 이름을 물으셨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기도하면서 자기 이름을 하나님 앞에 아뢰기보다는 형, 동생, 장로, 목사, 집사 등 남의 이름을 들먹인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 눈의 티를 보며, “하나님 저 사람은 이래요, 저래요”라고 타인을 들먹인다. 이런 태도는 진실한 기도의 자세가 아니다. 하나님과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하고 핑계 대고 도피하는 것이다. 이런 기도는 망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