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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간증/영적성장
· ISBN : 9788953152526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26-02-25
책 소개
현대 사회를 탁월하게 읽어 내는 성경적 해석자 팀 켈러,
세상과 교회의 접점을 넓히는 법학자 존 이나주,
신앙의 실력을 온 삶으로 일구어 온 10인의 필진이 뭉쳤다!
혼돈의 시대 한복판으로 들어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다.
공동선의 본질과 인간 번영의 의미마저 파편화된 시대, 오늘의 사회는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사 시대'를 방불케 한다.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서로가 사용하는 언어와 세계관 자체가 갈라진 불통의 현실이다. 갈등과 혐오가 일상이 된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신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대와 영성을 묻다》는 특정 집단만을 위한 지침서에 머물지 않는다. 분열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모두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필자들은 차이를 이유로 서로를 적대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 탈기독교 시대를 선교적 기회로 새롭게 읽어 낼 가능성을 모색한다. 공격적 변증이나 무분별한 문화적 동화를 경계하며, 성육신적 참여와 관계적 선교라는 길을 제시한다.
추상적인 구호를 넘어
일상의 실천으로 번역한 복음
필자들은 이 시대의 가장 시급한 질문들에 각자의 삶으로 답한다. 복음의 방식인 '겸손, 인내, 관용'을 추상적 구호로 남겨 두지 않고,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 실천으로 풀어 낸다. 신학자, 목회자, 의사, 선교사, 교수, 작가, 힙합 뮤지션, 싱어송라이터 등 다양한 영역에서 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때로 고통스럽기까지 한 차이 속에서도 신실하게 관계 맺는 길을 보여 준다. 세상 속에 스며들어 소금처럼 복음 본연의 맛을 내고, 부패를 막으며, 거름이 되어 생명을 일으키는 그리스도인의 공적 신앙을 입체적으로 그려 낸다. 겉도는 종교적 수사가 아니라 세상의 심장부에서 복음의 생명력을 증명하는 삶의 태도를 조명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독자의 내면과 삶의 방향 전환을 촉구한다. 복음의 다리를 놓는 변화, 바로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시작된다!
목차
프롤로그. 하늘 시민권을 가진 이 땅의 나그네들을 위한 안내서
Part 1. 시대를 묻다, 시대 속 영성의 틀을 세우다
― 다원주의 환경을 마주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1. 신학자로서 통찰하다
격변의 시대,
정치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2. 목회자로서 통찰하다
우리는 복음의 불로 타오르는
이중 시민권자인가
3. 모험가 정신으로 마주하다
익숙한 답이 통하지 않는 시대,
신앙의 야성을 회복할 시간
4. 개척자 정신으로 마주하다
두려움과 불편을 무릅쓰고
공공의 광야에 길을 내다
Part 2. 좁힐 수 없는 차이 속에서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 끼리끼리의 벽을 허무는 법
5. 작가로서 통로가 되어
내가 속한 시공간을 정확히 읽어 내며
영원한 현실을 선언하다
6. 송라이터로서 통로가 되어
비극과 아름다움, 그 마디마디를
정직한 노래로 증언하다
7. 스토리텔러로서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거대 서사로,
왜곡된 서사를 다시 직조하다
8. 번역자로서 통로가 되어
두 세계에 온전히 발 딛고서
양편의 언어로 서로를 잇다
Part 3. 세상 한복판에서 어떻게 복음을 살아 낼 것인가
― 메마른 곳에 하나님 나라의 숨결을
9. 다리 놓는 자로 섬기기
오해와 갈등의 현장,
서로 마주 앉을 자리를 설계하다
10. 돌보는 자로 섬기기
성취의 사다리에서 내려와
'아프고 고단한 동료 여행자' 곁에 서다
11. 화해자로 섬기기
그리스도의 압도적 사랑에 매여,
답 없는 균열을 파고들다
12. 평화를 이루는 자로 섬기기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이 땅에 '샬롬의 질서'를 일구다
에필로그. 겸손과 인내와 관용으로, 한 번에 한 걸음씩
감사의 글
주
필진의 다른 작품들
책속에서
세상에 참여하다 보면 낯선 관계를 맺고 위험한 공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본다. 그분은 단순히 안락함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이라는 확실하고 분명한 대가를 치르면서 세상에 참여하셨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으로 가셨을 때 사람들은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눅 19:7, 새번역)고 수군거렸지만 예수님은 가시던 걸음을 멈추지 않으셨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을 기록하며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한다〕”는 점을 강조했으나(요 4:9), 예수님은 개의치 않고 우물가에서 그 여인에게 말을 건네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시고 죽으셨다(눅 23:43). 우리는 복음에 대한 확신과 우리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을 붙들고,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이 사신 방식대로 살아가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의 선한 행실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나는 존 이나주가 제안한 ‘확신 있는 다원주의’가 분열된 정치 문화 속에서 베드로의 권고를 실천할 방법이라고 본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내’할 수 있다. 다양한 정치적 현실 속에서도 그리스도께서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영원히 주님이심을 아는 장기적인 관점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는 ‘겸손’할 수 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온전히 의존하는 존재임을 알며,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의견이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은 사랑은 자기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모든 것을 온전하고 밝히 보게 될 날을 기다리며 모든 것을 참고 견디게 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우리의 주된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썼지만(빌 3:20-21), 사도행전을 보면 그는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수시로 언급하고 활용했다. 이는 우리가 예레미야 29장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예루살렘 시민이었던 유대인 유배자들에게 바벨론의 가장 탁월한 시민이 되라고 명하셨(4-7절). 직관과는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눅 10:20)되었다는 확신에서 오는 안정감과 사랑, 기쁨과 용기에 힘입어, 모든 지상 공동체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시민들이 되어야 마땅하다.
나는 이런 성경적 주제들로 무장한 뒤, 문화의 바람에 휩쓸려 동화나 은둔 중 한쪽으로 향하는 두 종류의 신자들에게 다가갔다. 첫 번째 집단에게는 그들이 이 사회에 좀 더 거북함을 느끼게 하려 노력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이 이 세상의 시민권보다 우선함을 깨달아야 했다. 그로 인해 성, 돈, 권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도시의 나머지 사람들과 뚜렷이 달라져야 함을 알아야 했다. 두 번째 집단에게는 그들이 뉴욕의 진짜 시민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켰다. 나는 그들에게 세 가지 방식으로 섬기고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사람들과 만날 때 자신의 신앙을 밝히고, 신앙을 자신이 하는 일과 통합시키며, 지역 사회에서 정의와 긍휼을 위해 일하라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