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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액션/스릴러소설 > 한국 액션/스릴러소설
· ISBN : 9788954449298
· 쪽수 : 204쪽
· 출판일 : 2023-07-28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날 이후, 나는 알람 없이도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누군가 내 옆에서 긴 숨을 몰아쉬는 것 같은 기척이 느껴지면 어김없이 4시였다. 신경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를 삼키고 다시 누워도 떠나간 잠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눈을 뜬 채로 꿈을 꾸었다. 쾌청한 해변에 다나와 내가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집 안 곳곳엔 CCTV가 있다. 꼼꼼한 브라더가 이 장면을 놓칠 리 없었다. 손바닥 안에서 메시지 진동음이 느껴졌다. 그걸 확인하는 사이 남자가 나를 공격하거나 도망칠지도 몰랐다. 나는 전설의 사나이 정진만의 조카다.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는다.
“매칭이 됐으니 저녁에 바쁘시겠어요?”
나는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서 크롬캐스트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옌장, 아까 들었나 보네. 저기, 그게 뭐냐면…….”
(32쪽)
“김미남이야 진만 씨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근데 우리한텐 더 큰 이슈가 생겼잖아. 진만 씨도 어쩌지 못하는 존재. 김정본, 찾아온 김에 뭐 하나 묻자. 알렉스가 누구야?”
돌발적인 질문이었다. 알렉스가 누구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내 깜냥으로 해치울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도 궁금하긴 했다. 시야가 좁아 미남의 정체에만 골몰했는데, 우리 쇼핑몰이 나락으로 떨어진 건 바빌론과 알렉스 김 때문이니, 온 김에 뭐라도 하나 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본이라면 놈의 정체를 알고 있을 법도 했다. 그가 하는 대답을 들으며 상체를 앞으로 당겼다. (59쪽)
“브라더 말이 사실이야? 김정본하고 같이 있냐고? 지안이를 데리고 거기까지 갈 줄은 몰랐다.”
삼촌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이어폰이 진동했다.
“너무 뻔한데 몰랐다는 게 더 황당하네요. 진만 씨보다 유능한 정보통은 김정본밖에 없으니 찾아왔어요. 덕분에 알렉스의 본진을 알아낸 것 같아요.”
민혜는 차분하고 반박하기 힘든 논리로 삼촌을 밀어붙였다.
“김정본이야말로 진짜 남파 간첩이잖아. 분명히 함정일 거야. 탈출해. 아니, 제거하는 게 좋겠네.”
“지금은 그럴 수 없어요. 적의 적은 동지니까요. 김정본은 알렉스에게 원한이 깊고, 난 그 감정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생각이에요.” (73쪽)
“바빌론이 왜 정진만한테 집착하는지 알아? 그러니까 네 삼촌 이라크에 용병으로 갔을 때 얘기.”
“아뇨.”
늘 그렇듯 삼촌의 과거를 남에게 듣게 되었다. 파라솔 근처로 젊은 커플이 다가오다, 정본의 데저트 이글을 발견하곤 작게 욕설을 지껄이며 도망쳤다. 얼뜨기 실행자들이었다.
“그 나라 무슨 명절이었다지. 민간인 아이들이 바구니 가득 과자랑 초콜릿을 들고 부대를 찾아왔다더군. 그걸 평화유지군과 용병들에게 나눠주러 다녔는데, 정진만 혼자 느낌이 싸하더래. 인형같이 예쁜 여자애가 정진만한테 다가왔을 때, 폭발음이 들렸대.”
삼촌은 PMC라는 민간 군사 기업의 용병이었다. 그리고 그가 주둔한 이라크의 한 캠프에 열두 명의 꼬마들이 일명 자살 조끼라고 불리는 폭탄을 두르고 나타났다. 꼬마들의 임무는 웃음으로 군인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유선 기폭 장치를 누르는 일이었다. 그날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바쉬라뿐이었다. (116~117쪽)
나는 눈 뜬 채 다시 꿈을 꿨다. 늘 그랬듯 쾌청한 해변이었고, 다나는 내 새김칼로 석류를 까고 있었다.
“난처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다나의 티셔츠 앞섶에 선홍색 과즙이 피처럼 떨어졌다.
“우리 사이에 진실이 있긴 했어?” (130쪽)
“잘 들어, 정지안. 액션 영화 주인공들이 어떻게 살아남는지 기억해야 해. 그들은 적의 생명선이 길다는 걸 잊지 않아. 그래서 반드시 몸통에 두 발 그리고 머리에 한 발을 날리지. 그걸 우린 모잠비크 그릴이라고 불러. 사실 용어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 앤 공주의 장미 정원이든 알렉산드라의 편의점이든…… 뭐든 상관없어. 그저 습관이 돼야 할 뿐이야.” (183~184쪽)
배신이라는 말에는 한때의 깊은 신뢰가 전제된다. 하지만 이 바닥에서 실력 외에 믿을 건 없었다. 모두가 붉고도 푸르렀고, 퍼플코드의 일원이었다. (1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