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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4635585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15-11-30
목차
서문 - 9
1부┃ 괜찮을까요
당당한 부끄러움 - 13
저것은 국화 - 19
샤넬 - 22
한밤중 어항 속이 끓고 있다 - 26
삼십대는 고유하다 - 32
아버지와 나 1 - 36
아버지와 나 2 - 40
닭장차에 꽂힌 통배추 이파리처럼 - 44
괜찮을까요 - 48
2부┃ 칸트와 슈퍼 쥐
시는 나만의 과학이다 - 57
시가 훔친 것 - 60
구름 위의 집 - 69
나무와 바퀴 - 74
감각의 지도 - 81
그 나무에 대한 기억 - 86
시적인 것 - 92
칸트와 슈퍼 쥐 - 96
일종의 나이키 - 100
3부┃ 오리를 보는 고통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 107
당신의 책상은 얼마나 외로운가 - 110
가지런하고 딱딱한 이름 - 112
문제는 어떤 단맛인가이다 - 114
아파트 - 116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118
연인들 - 120
집에 대하여 - 122
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 - 124
고요한 오렌지빛 - 127
그림자놀이 - 130
내년에도 나의 입술은 - 132
오리를 보는 고통 - 134
물렁하게 흐르는 칼 - 137
4부┃ 망치란 무엇인가
소통 불능 대화 무능 - 141
시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다 - 150
꿀문학이라는 불가능한 말 - 158
망치란 무엇인가 - 164
마음이 즐거워지는 네이밍 - 174
‘가난’이라는 창조적 낭떠러지 - 179
외계인과의 조우, 혹은 사라진 시인 - 192
‘나’라는 감옥 혹은 탈출구 - 201
‘나’는 내가 아닌 사람 - 212
또다른‘ 나’를 만나는 일 - 222
다섯 개의 주석 - 230
오늘 한 번 더 당신을 만나겠습니다 - 237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자칫하면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나는 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한 명 더 만난 적이 있었다. 반쯤은 신에 들리고 또 반쯤은 수행을 통해 득도한 어느 스님께서, 나도 알 수 없는 나와 나의 미래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동안 종이 위에 무엇인가를 쉬지 않고 적고 계셨다. 나는 나에 대한 얘기인데도 그 말의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고 글자도 아니고 글자가 아닌 것도 아닌 그 이상한 모양의 글자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나에 대한 어떤 불안과 걱정의 말이 오갈 때 그 글자들은 더욱 휘어져 내려갔다. 두 바닥 반 정도가 채워지고 나서야 피곤하다는 듯이 말을 멈추셨고 나는 들은 것도 본 것도 뚜렷하게 없는데 복비를 지불했다. 속은 것도 속지 않은 것도 같았지만 그 종이들은 다음 페이지로 넘겨졌고 또다른 누군가의 삶을 담아내기 위해 희고 차가운 얼굴을 내밀었다.
등단 소감에 나는 기중기와 칠레산 홍어와 사라지는 꼬리, 커다란 입 같은 것들에 관심이 많다고 적었다. 그동안에 기중기에 관한 시를 한 편 썼는데 너무 시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칠레산 홍어에 관한 시는 아직 쓰지 못했고 경동시장에서 홍어를 한 마리 사다가 된장을 풀어 끓여 먹었다. 칠레라는 이름의 긴 나라에 대해 생각하면서 말이다. 뒤돌아보면 꼬리뿐인 고양이들과 자주 마주치고, 나는 새로운 것들을 해야 할 때마다(요즘에는 운전이 그러한데) 커다란 입속으로 들어가는 공포감을 맛본다. 도로를 긴 혀로 생각하니 또 시적인 것 같다.
그러나 시적인 것에 대해 의식하거나 몰두하지 않으려는 힘이 나에게 시를 쓰게 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못된 아이처럼. 그러나 또 지금 착한 아이를 꿈꾸며 나는 참 고분고분해져서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사람들은 조금 다르거나 이상하면 금방 주목한다. 그러한 주목과 관심은 참 여러 방향으로 힘을 갖는다. 살면서 사랑하면서 나는, ‘감정선이 붕괴되었다’고 며칠 전 생각했었지만 오늘은 산고개를 넘으며 단풍이 참 곱다고 ‘가을이 깊었다’고 생각했다.
―「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에서
여러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면 좋겠다. 날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 어떤 기분이 들까. 계절마다 이름을 바꾼다면 이 어수선한 봄날, 내게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이름이 두 글자가 아니라면 또 어떨까. 오늘 나는 ‘고양이 목걸이를 하고 걸어가는 목 쉰 사람’. 내일은 ‘꿈속의 물컹한 손가락’. 이름이 없으면 좋을 것 같은 날도 있다. 그냥 나를 ‘빵’이라 불러줬으면 좋을 것 같은 날도 있다. 내가 쓴 작품들을 나의 긴 이름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래서 내가 길어지거나 뚱뚱해지거나 재밌거나 지루하거나. 그런데 오늘도 내 이름은 가지런하고 딱딱하다. 내 앞으로 우편물이 세 개 도착했다. 우리집 꼬마는 나와 좀 다른 것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다 ‘까까 꼬꼬’라 부른다. 밥도 과일도 책도 텔레비전도 까까 꼬꼬가 되고, 지나가는 사람도 나무도 돌멩이도 까까 꼬꼬라 한다. 하루이틀 사이 정교해져서 ‘깜깜 꼭꼭’이 되기도 한다. 나도 그런 ‘무서운’ 까까 꼬꼬가 있으면 좋겠다.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아무나에게 손을 흔들고 무엇에게도 다 인사를 한다. 다 사랑할 수 없어서 나는 날마다 다른 이름을 꿈꾸고 헤매고 멈추고 넘어지는 것 같다. 앞으로는 좀더 창조적으로 살아보겠다.
-「가지런하고 딱딱한 이름」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