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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4642057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16-09-07
책 소개
목차
갈매기는 끼룩끼룩 운다 - 007
마니차 - 035
아버지 축제 - 073
머리 위를 조심해 - 099
벽장 - 139
전발씨 - 171
원초적 취미 - 207
대단히 멋진 꿈 - 243
해설 | 김형중 (문학평론가)
괄약근 VS 불수의근 - 267
작가의 말 - 281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거기까지 외친 저는 꺽꺽 소리내어 오열했습니다. 정말 눈알을 쏟아낼 듯 울어댔어요. 나는 김준규가 일말의 죄책감이나 동정심을 품길 바랐습니다. 저를 좀 불쌍히 여기길 바랐어요…… 하지만 김준규는 저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말없이 방을 나가버렸습니다. 저는 훌쩍이며 생각했죠. 그래, 아주 떠나버리라지. 차라리 굶어 죽는 편이 나을 거야. 그러나 그는 금세 돌아와 제 팬티를 끌어내렸습니다. 따뜻하게 데운 수건으로 사타구니를 꼼꼼히 닦아준 다음 새 속옷으로 갈아입혀주었어요. 그러더니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기…… 힘들겠지만, 힘내.
_「마니차」
나는 창가에 앉아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옅은 안개가 우무처럼 바깥을 감싸고 있는 게 보였다. 어쩐지 비가 올 것만 같았다. 맑고 축복받은 날씨가 될 것이라고, 라디오는 얘기했지만 모두가 속고 있는지도 몰랐다. 모두를 속이는 일은 아주 쉽다. 둘이나 셋을 속이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
_「아버지 축제」
단 한 번의 이완이 모든 것을 망칠 것이었다. 이성의 끈은 당겨질 대로 당겨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늘어져 있었다. 이제 틀렸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축축하고 음흉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냥 싸버려. 알 게 뭐야. 어차피 모르는 동네잖아. 더이상 참을 수도 없잖아. 편해질 거야.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거야…… 제기랄, 입다물어. 난 아무데나 똥을 누진 않을 거라고…… 호기롭게 윽박았지만 목소리가 옳았다. 더는 참을 자신이 없었다.
_「머리 위를 조심해」
“내 변기가 우릴 만나게 해준 거요. 운명적으로.”
_「머리 위를 조심해」
내가 그곳을 벗어나 다른 어딘가, 이를테면 거실의 구석빼기나 식탁 밑에 자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는데, 내 기억이란 게 늘 창가에서 시작하곤 했으며, 아주 처음부터 거기 앉아 있었던 것만 같아서였다. 더 이전의 것을 더듬어보려 해도 매우 어렴풋하게 역겨운 누린내 외에는 떠올릴 수 없었고, 그건 차라리 모태의 기억을 빙자한 망상인 듯했다. 나의 시작을 모른다는 것, 또 그것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내 고착의 먹이가 되었다
_「벽장」
내가 내 집 좀 갖겠다는데, 좀 살아보겠다는데, 이 서울 땅에 등 좀 누이고 있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이냐는 억울함이 들끓었다. 그냥 서로 없는 사람처럼, 조용하게, 피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고 좀, 각자
의 관에 누운 시체들처럼 살면 안 되겠느냐고, 나는 토로하고 싶었고 차라리 애원하고 싶었다.
_「전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