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54645027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17-04-07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르네상스의 살아있는 교과서, 피렌체
첫째 날: 피렌체에 남겨진 중세의 흔적(1014~1302)
―산 미니아토 알 몬테 수도원_중세 주교의 탐욕
―바르젤로 국립박물관_신흥상인이 세운 자치정부의 흔적
♣ 미켈란젤로 광장의 숨은 이야기
둘째 날: 피렌체 르네상스 여명기의 모습(1302~1348)
―피렌체 시청사 팔라초 베키오_고대 로마 문화 부활의 첫번째 모습
―오르산미켈레 교회_르네상스의 여명을 가리운 흑사병
―산타 크로체 수도원_영적 세계와 세속 세계의 분리를 지지한 탁발 수도사의 둥지
♣ 미켈란젤로가 시청사 벽면에 새긴 의문의 그림
셋째 날: 길드 정부의 황금시대(1382~1433)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_타이타닉 호처럼 침몰하는 주교의 권력
―오르산미켈레 교회_조각가의 경쟁의 장이 된 기적의 성소
♣ OPA 문장의 의미
넷째 날: 메디치 가와의 운명적인 포옹(1402~1434)
―도나텔로의 걸작 <다비드> 조각상_인문학자들, 코시모를 지도자로 추대하다
―메디치 가문이 야밤에 훔친 <산 로마노 전투>_코시모를 구한 용병대장
♣ 메디치 은행과 교황에 얽힌 이야기
다섯째 날: 메디치 가의 황금시대(1434~1464)
―메디치 가 문장의 비밀_만들어진 신화
―메디치 저택_권력자의 위용
―산 로렌초 교회_교회가 사유화되는 전형적 모습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수도원_메디치 가문이 사유화한 또하나의 교회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조각상_지도자의 덕목을 새긴 불멸의 예술작품
♣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속 피렌체
여섯째 날: 메디치 가의 몰락기(1469~1492)
―산타 마리아 노벨라 수도원_세속화로 추락하는 도미니크 수도회의 성지
―산타 트리니타 수도원_종교기관이 세속화된 절정의 모습
―산타 마리아 누오바 병원 부속 예배당_메디치 은행을 파산으로 몬 단테의 연인 가문
♣ 임산부에게 특효가 있는 성수 이야기
일곱째 날: 피렌체 르네상스의 황혼기
―미켈란젤로의 <다비도>와 반디넬리의 <헤라클레스와 카쿠스>_메디치 가와 마키아벨리의 상반된 정치적 이상향
―산 로렌초 교회 (신) 성구실의 메디치 가문 영묘 조각상_철학을 조각으로 승화시킨 미켈란젤로
♣ 야반도주하는 메디치 가 후손들
에필로그: 르네상스라는 파도를 일으킨 바람
주
저자소개
책속에서
11세기 초반, 군사 도로 덕분에 피렌체는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고 유럽에서 가장 번성한 상업 도시로 발달하게 된다. 자연스레 인구도 점차 늘어나, 무려 4만 5000여 명에 이르게 된다. 당시 파리의 인구보다는 적지만 런던보다는 많았다. 이렇게 피렌체가 갑작스럽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둘러싸고 교회에서는 성직자들, 길거리에서는 귀족들 사이에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높은 탑 위에서 지나가는 반대파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고, 길거리에서 만나면 서로 칼을 휘두르는 사건이 다반사였다. 르네상스 이전의 피렌체는 중세 다른 유럽 도시와 마찬가지로 무질서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 혼란의 시기, 피렌체에서 가장 부자는 바로 주교였다. 교회에서 들어오는 십일조, 도심의 상점에서 거두어들이는 임대료, 농지 임대료, 그리고 상품 거래에 부과되는 세금의 수입 등이 모두 주교의 몫이었다. 피렌체 토착귀족 또한 주교가 공석일 때마다 주교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이들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던지, 단테는 “교회가 공석일 때마다 고위성직자 회의에 참석하여 살이 찌는 자들”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토착귀족은 사병을 거느리고 주교의 신변을 보호하는 중세 기사 역할도 수행했다. 주교는 영적 지도자인 동시에 기사를 거느리며 세속 세계를 다스리는 지도자였던 셈이다.
당시 피렌체의 평범한 시민이나 이민자 들은 대부분 영국이나 스페인 등지에서 수입해온 양모를 아르노 강에서 세탁하고 빗질하여 양모 공장에 넘기는 것과 같은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해가 지면 고단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면서 이 높은 언덕에 지어진 수도원[산 미니아토 알 몬테 수도원]을 향해 기도를 올리곤 했다. 주교는 고단한 시민들이 이 수도원을 예수가 지배하는 ‘천상의 예루살렘’으로 여기도록 재현하고자 했다. 이 모자이크 작품이 <온 세계의 지배자로서 예수>라 불리는 것도 이러한 신앙적 배경에서 온 것이다. 피렌체 시민들에게 이 수도원은 구원의 희망이었고, 이 수도원으로부터 나오는 신성함으로 주교의 위상은 강력해질 수 있었다.
이렇게 이 수도원은 피렌체 시민에게는 영적 구원과 희망을 주는 신앙의 보금자리였고,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주교에게는 신성으로 피렌체 권력을 장악하려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이 수도원을 장식한 예술작품은 순수하게 신앙적이면서도 세속적이다.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대를 꽃 피우기 직전인 중세 피렌체 예술작품의 이중성이라 하겠다.
피렌체 주교의 탐욕으로 피렌체 사회는 갈등의 늪에 깊숙하게 빠져들고 만다. 교황의 후원을 받는 개혁적인 수도회가 주교에게 도전하자, 주교는 교황이 아닌 독일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성직자로 변신했다. 그러자 예전부터 독일 황제의 보호를 받아가며 자신의 영지를 다스리던 농촌의 토착귀족들도 주교의 손을 잡았다. 사병을 거느린 이들 토착귀족은 주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주교의 관저가 위치한 피렌체 도심의 두오모 광장에 자신들의 저택을 짓고, 주교가 소유한 토지와 재산을 관리하며 부를 늘려갔다. 이러한 전환점이 바로 피렌체 토착귀족이 도심에 자리잡게 되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