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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55251843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5-11-25
책 소개
이탈리아에 프리모 레비가 있다면 대한민국엔 김명희가 있다. _변진경(시사IN 국장)
원소들에서 뽑아낸 이야기의 너비와 깊이가 혀를 내두르게 한다. _이기병(의료인류학자)
신비롭고 충격적이며 무엇보다 사랑스럽다. _홍은전(인권동물권기록활동가)
프리모 레비의 실험대 위에서
사회의학자 김명희가 새롭게 혼합한 인간 사회의 주기율표
18개 원소로 문명과 역사의 아이러니를 읽는다!
많은 이에게 주기율표는 “수헬리베붕탄질산…”을 읊던 지루한 화학 시간을 연상시키는 암기표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사회의학자 김명희에게 주기율표는 홀로코스트 생존 유대인이자 화학자이며 작가인 프리모 레비의 저서로 기억된다. 〈시사IN〉 변진경 국장의 권유로 시작된 연재는 레비의 《주기율표》에 대한 오마주이자,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원소들은 프리모 레비가 선택한 21개의 인생 원소와 얼마나 다르고 같을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해가는 과정이었다.
“프리모 레비가 경험한 것만큼 역사의 격랑에 휩쓸리지 않았고, 그토록 심원한 존재론적·윤리적 고민에 직면한 적도 없었지만 나에게도 ‘이야깃거리’는 있었다. 그 이야기는 나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이과생 보건학 연구자이자 화(火)가 많은 시민으로서 내가 연구하고 목격하고 연대했던 세상과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 〈프롤로그〉
프리모 레비가 ‘수은’ 편에서 “폐쇄적 공동체의 광기, 전근대의 도덕감각, 수은중독 증상을 분간하기 어려운 인물들의 기행”을 보여주었다면, 김명희는 공장에서 온도계를 만들던 15세 소년이 수은의 독성보다 치명적인 “기업과 정부의 환상적 연금술”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소상히 밝힌다. ‘아르곤’의 비활성 특성에서 프리모 레비가 그의 조상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점잖은 유대인”을 떠올릴 때, 김명희는 “오늘날의 원자화된 현대인”을 떠올린다. 《주기율표》가 유년의 이야기부터 인간에 대한 성찰까지 풍부한 문학성으로 풀어낸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회고록이라면, 그로부터 정확히 50년 뒤 우리에게 도착한 《주기율표 아이러니》는 레비의 실험대 위에서 새롭게 혼합한 인간 사회의 주기율표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 및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 질병의 사회적 요인을 연구해온 김명희는 “빅뱅으로부터 탄생한, 감정도 의지도 없는 지극히 미미한 원소들로부터” 이야기를 추출하여 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흐르게 함으로써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존재와 사건들 사이를 원소가 어떻게 연결하는지 조명”하고자 했다. 주기율표의 18개 원소를 사회과학의 방법론으로 분석하는 참신한 접근을 통해, 과학적 질서 속에 감춰진 문명과 인간의 모순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원소들의 복잡한 상호작용, 과학과 문학, 신화와 역사, 직업병과 감염병, 기술의 진보와 불평등, 차별과 연대의 역사 들을 결합해”(홍은전) 만물의 기반이 인간의 윤리와 사회적 구조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면밀하게 탐색해나간다.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고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느냐에 따라 어떤 원소가 구원자도, 파괴자도 될 수 있음을” 저자는 직접 연구하고 분석한 데이터부터 국내외 다양한 문헌과 연구 사례들을 근거로 들어 하나씩 밝혀나간다.
묵직한 주제, 독창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작가들이 한목소리로 감탄한 지점은 의외로 “이야기의 재미”였다. 연구자의 글이 ‘논문 투’와는 거리가 먼 대중성과 가독성을 겸비한 것은, 탄탄한 과학적 지식과 정확한 데이터 사이를 넘나드는 SF, 넷플릭스, 홈쇼핑, 무협지, 신화 등 다채로운 재료들 덕분이다.
원소가 인간과 결합할 때 어떤 차별을 낳는가
‘과학은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의대에 진학했으나 “입학하자마자 운동권 선배들에게 ‘픽’되어” ‘데모꾼’으로 활동하다보니 “세상이 이 모양인데 의사는 해서 뭐 하나”라는 회의가 밀려왔다. 원진레이온 집회에 참여한 어느 날 저자는 한 선배의 권유로 예방의학이라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때 인생 경로가 결정된다. 개인의 질병 원인을 사회 구조에서 찾는 사회의학을 업으로 삼게 된 건 “원진레이온 투쟁이 남긴 여러 유산 중 가장 소소한 것”이리라 저자는 회고한다.
137일 동안 이어진 원진레이온 ‘장례 투쟁’에서 ‘황’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자체로는 독성도 없고 일상생활의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뿐만 아니라 페니실린 같은 의약품, 비료 등의 주요 성분인 황이 어쩌다 ‘사신(死神)’이 되었을까. 황과 탄소가 결합한 이황화탄소의 독성을 알고도 생산기지를 계속해서 이전하며 노동자들을 방치한 국내외 기업들의 사례를 짚으며 저자는 “원인 모를 병마와 외롭게 싸우던 노동자들, 심각한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노동자들의 고통은 애초에 겪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라고 일갈한다. 황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에피소드는 저자의 지식(과학)과 취향(SF)과 사회적 의식이 드러나는, 그 자체로 통쾌하고 의미심장한 의도적 반어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나에게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던 분은 도저히 내가 넘어가지 않자 “천국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뇨, 저는 지옥 가고 싶은데요.” 그분은 옆 칸으로 도망갔다. 꺼지지 않는 지옥 불이라면 인류가 꿈꿔온 무한동력, 거절할 이유가 없다. 파인만, 호킹, 힉스, 슈뢰딩거, 아인슈타인 같은 일류 과학자들도 신을 믿지 않는다는 불경죄로 이미 그곳에 가 있을 터, 무한동력을 이용하여 일찌감치 기술 문명을 꽃피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더글러스 애덤스, 커트 보니것 같은 유쾌한 작가들과 많은 SF 작가들도 나보다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있을 테니 심심할 걱정도 없다. 직업병 걱정 없이, 쾌적한 환경에서, 유쾌한 동료 시민들과 신비로운 푸른색 불꽃으로 이글거리는 유황 지옥 불을 불멍할 수 있다면 멋진 일 아닌가?”
- 〈황: 아니오, 저는 지옥 가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납’ 이야기의 주인공은 지질화학자 클레어 패터슨이다. 그는 집착에 가까운 노력으로 역사상 가장 완벽한 ‘클린룸’을 만들고, 마침내 지구 생성 시기에 떨어진 운석에 함유된 ‘순수한’ 납 함량을 측정함으로써 지구 나이를 추정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야기는 뜻밖의 길로 접어든다. 그는 도처에 존재하는 납이 대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궁금증을 갖고 다양한 가설을 검토한 끝에 1923년 등장한 유연휘발유가 납 오염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결론 내린다. 정유산업은 청부 과학자까지 동원해 그의 연구를 방해하지만, 패터슨은 대서양과 태평양의 심해, 남극과 북극, 설산, 화산 분화구, 심지어 인체 유골과 미라까지 분석해 자신의 가설을 입증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국의 플린트시의 상수관으로 뻗어나간다. 오염된 납 파이프 상수관으로 수도를 공급하던 가난한 유색인종의 도시 ‘플린트 물 사태’는 중립적인 원소가 인간과 결합할 때 어떤 차별을 낳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한편, ‘과학이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남긴다.
트랄파마도어 행성에서 울먹이던 질소에게
위로해줄 말이 우리에겐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트랄파마도어 행성에 모인 화학원소들 사이에서 나치 경비병과 의사 몸의 일부로 비자발적 복무를 한 질소가 울먹이고 있다. 커트 보니것의 소설 《타임퀘이크》의 한 장면으로 시작되는 ‘질소’ 편은 인간의 불가해한 아이러니가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이 책의 클라이맥스다.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질소가 어쩌다 사람들을 학살하는 데 이용되는지,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의 말마따나 “공포나 슬픔보다 의아함이” 앞선다.
“독일의 부헨발트 수용소,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를 직접 가보았을 때에도 공포나 슬픔보다 의아함이 더 크게 일었다. 도대체, 이게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일인가?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기차에 태워 이 멀리까지 이동시키고, 조금이라도 빠른 업무 처리를 위해 철로를 수용소 앞마당까지 연결하고, 그 많은 포로들을 특성에 따라 세세히 분류하여 라벨을 붙이고,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빠르게 죽이기 위해 별도로 가스실을 건설하고, 시체를 옮기는 수레에 잔여물이 남지 않도록 수레 내부를 코팅하고, 가스실에서 소각로 입구까지 시체 운반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부지런함과 효율성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 〈질소: 절멸 캠프에서 본 인간의 얼굴〉에서
그러나 이 책은 인간의 어두운 면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학살자와 방관자만이 아니라,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불의에 저항하고, 가장 위험하고 비참한 순간에도 인류애를 보여주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꼿꼿이 버틴 사람들 몸속에도 질소가 들어 있었다”며 트랄파마도어 행성에서 울먹이던 질소를 위로한다. 1980년 광주, 계엄군이 시가지를 장악하고 대중교통도 끊어진 상황에서 헌혈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혈액원 입구에서 병원 정문까지 구불구불하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 히틀러-나치에게 경례하지 않기 위해 “집 밖을 나설 때면 항상 양손에 무언가를 들었다는” 어느 과학자의 작은 실천에 숙연해지는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인간에 대한 희망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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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는 곧 타자를 어떻게 대해왔는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책에 담긴 18개 원소들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과학 지식을 품고 있는 물질의 기본요소인 한편, 인간이 인간을 대상화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증언하는 ‘목격자’이기도 하다. ‘철’ 편에서 이야기되듯이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 사회와 혈액마저 상품으로 거래되는 ‘매혈’ 사회, 그리고 특별한 보상 없이도 자발적인 ‘헌혈’로 생면부지의 타인을 돕는 증여 사회는 각기 다른 미래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주기율표 위에 그려낸 몸, 타자화, 연대의 지도는 자연과학의 재료로 사회를 읽는 지적 즐거움뿐 아니라, “나의 행동 혹은 행동하지 않음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성찰할 기회를 준다. 1975년에 발표된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에 담긴 아이러니와 2025년의 《주기율표 아이러니》가 얼마나 비슷하고 또 다른지 답해보는 시간은 독자들 몫이다.
목차
프롤로그_원소를 통해 바라본 세상
아이오딘_주홍빛 방역의 추억
산소_‘불멍’에서 에크모까지, 그곳에 산소가 있다
수은_온도계를 만들던 15살 소년의 죽음
황_아니오, 저는 지옥 가겠습니다
나트륨_소금을 둘러싼 아이러니
납_지능을 망치러 온 지성의 구원자
아르곤_고독하지만 외롭지는 않게
은_‘은이 솟구치는 산’에서 사회의학의 탄생까지
탄소_시력을 앗아간 진짜 범인
셀레늄_로봇공학 3원칙과 인간됨
리튬_친환경 영웅의 감추고 싶은 탄생기
알루미늄_살아남은 사람들도 아프다
수소_산 테러를 저지르는 못난 마음
비소_마담 보바리의 결심
인_원소계의 ‘샛별’은 어쩌다 살상 무기가 되었나
철_흡혈, 매혈, 헌혈 사이 철과 피의 연대기
칼슘_뼛속에 새겨진 삶과 역사
질소_절멸 캠프에서 본 인간의 얼굴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느 날 지하철에서 나에게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던 분은 도저히 내가 넘어가지 않자 “천국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아뇨, 저는 지옥 가고 싶은데요.” 그분은 옆 칸으로 도망갔다. 꺼지지 않는 지옥 불이라면 인류가 꿈꿔온 무한동력, 거절할 이유가 없다. 파인만, 호킹, 힉스, 슈뢰딩거, 아인슈타인 같은 일류 과학자들도 신을 믿지 않는다는 불경죄로 이미 그곳에 가 있을 터, 무한동력을 이용하여 일찌감치 기술 문명을 꽃피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무한동력이 있으니 냉방과 환기 장치도 걱정이 없다. 더글러스 애덤스, 커트 보니것 같은 유쾌한 작가들과 많은 SF 작가들도 나보다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있을 테니 심심할 걱정도 없다. 무엇보다, 동성애 반대하는 부채춤을 보지 않아도 되고, 임신중지가 죄악이고 진화론은 엉터리인 데다 동성애가 사회주의 혁명 수단이라는 기기괴괴한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니 눈살 찌푸릴 일도 없다. 직업병 걱정 없이, 쾌적한 환경에서, 유쾌한 동료 시민들과 신비로운 푸른색 불꽃으로 이글거리는 유황 지옥 불을 불멍할 수 있다면 멋진 일 아닌가?
_〈황: 아니오, 저는 지옥 가겠습니다〉
메탄올은 별이 생성되는 지역에서 다량으로 관측되기에, 천문학에서 별의 생성 지역을 찾는 표지자로 활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구 한구석에서 찾아낸 메탄올의 흔적은 별의 탄생이라는 낭만이 아니라, 동료 노동자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극단적 노동유연화와 위험 외주화의 결합을 알리는 적신호였다.
이 원고를 다듬고 있던 2025년 4월 17일, 메탄올 중독 피해자 중 한 명인 이진희 씨가 돌아가셨다. 38세라는 젊은 나이,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고 뇌병변 장애를 앓게 된 지 9년 만이다. 2016년 말 노동건강연대가 작성한 사건 조사 보고서에 고인의 생생한 목소리가 남겨져 있다. “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면요, 누가 보게 될까요? 아무도 안 볼 것 같아요. 욕을 해도 돼요? 하. 웃음밖에 안 나온다 진짜, 왜, 우리나라는 왜 이럴까 진짜, 할 말이 없다 진짜. 나 진짜 따지러 가고 싶다 진짜. 할 말도 없다 진짜.” 그의 명복을 빈다. 그가 들을 수는 없지만 전해주고 싶다. 우리가 남아서 당신의 이야기를 보고 있다고.
_〈탄소: 시력을 앗아간 진짜 범인〉
‘기-승-전-위험의 외주화’라는 판에 박힌 시나리오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작동했다.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미래산업의 초라한 이면이다. 시민들은 이어지는 보도를 통해서 리튬의 속성과 리튬을 취급하는 작업의 위험성은 물론 일차전지와 이차전지의 차이까지 ‘억지로’ 알게 되었다. 매번 이런 식이다. 사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전까지 배에 사용하는 ‘평형수’의 존재와 의미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참사는 우리에게 자꾸만 원치 않는 학습을 시킨다.
_〈리튬: 친환경 영웅의 감추고 싶은 탄생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