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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7076651
· 쪽수 : 304쪽
책 소개
목차
1장 - 9
2장 - 65
3장 - 121
4장 - 181
5장 - 239
작가의 말 - 298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세상에는 말이야, 상상 속에서 가능하지 않은 일이란 존재하지 않아. 정말 멋지지 않나? 이 지루하고 무능력하고 권태로운 인생 너머에 모든 악과 욕망으로 들끓는 또 다른 판타스틱한 세계가 존재한다면 말이지.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집중해서 잘 들어봐. 어쩌면 말이지, 진짜 인간들의 세계는 여기가 아니라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살면서 말이야, 그런 생각 안 해봤나? 이 재미없기 짝이 없는 현실 세계가 정말 진짜일까 하는 의심 말이야. 뭐 하나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답답하고 무료하고 숨 막히는 현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느냐고. 어쩌면 현실은 말이지, 살아 꿈틀대는 저 멋진 무한 상상의 세계를 감추려고 위장한 심심하고 단순한 시뮬레이션 게임은 아닐까.
자, 어느 평온한 날 당신의 아침 식탁을 떠올려보자고. 실내에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 가장조> 같은 우아하고 발랄한 클래식이 울려 퍼지는 게 좋겠군. 당신은 상쾌하고도 가벼운 마음으로 식탁에 앉는 거지. 여느 날처럼 콘플레이크에 우유를 부은 접시를 끌어당겼어. 그때 당신 동공이 접시 속 한곳에 멈췄지. 그 안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를 발견한 거야. 두려워하지 말고 자세히 들여다봐.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게 개구리라면 좋겠나? 아니면 작은 태아가 좋을까? 당신이 만약 누군가에게 장난을 친다면 어느 게 더 끔찍할 거라고 생각하나? 하하, 이제 눈치를 챘나. 그래, 그러니까 이제 화장실로 달려갈 거 같은 그 구겨진 얼굴 좀 펴라고. 불에 탄 그것의 실체가 실제로 무엇이었는지 더 이상 고나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란 걸 알겠나. 이제부터 중요한 건 상상이라고. 고가 우유 속에서 발견한 게 개구리라고 믿어버리면 그만인 거야. 실제 태아를 가스레인지에 태워버렸다고 해도 진실은 중요하지 않게 되는 거지. 문제는 그 반대의 경우야. 불에 타버린 건 시커먼 개구리의 재였을 뿐인데 가스레인지에 태운 게 태아라고 믿어버린 순간, 거기서부터 새로운 상상과 끝도 없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지. 당신도 한번 상상해보지. 이미 상상하기 시작했나? 어느 게 더 생생하고 현실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지지? 개구리였나? 아니면 태아였나…….
네가 게임 회사에서 쫓겨난 후 너는 아내가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그녀가 점점 말을 잃어가고 밤마다 잠들지 못하고 수면제를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어. 너는 그날 밤 아내가 여행 가방을 끌고 나가는 것을 알고도 잠든 척 일어나지 않았어. 너는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고 믿어버렸어. 아내가 일주일째 돌아오지 않자 너는 집 안의 모든 가구를 처분했어. 경찰에게서 아내와 아이의 시신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을 때도 너는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않았어. 아내와 아이의 장례식 내내 너는 한 번도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울지 않았어. 너는 보름 만에 다시 돌아온 텅 빈 집을 보며 아내와 아이가 감쪽같이 너를 버리고 사라졌다고 믿어버렸어. 이제 너에게 일어난 진짜 현실이 똑똑히 보이나. 네가 믿고 있는 현실은 진짜가 아니야. 네가 부정하고 지워버린 기억이 진짜 네 현실이야. 이제 진짜 고통을 느껴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딸아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끔찍한 고통을 가슴으로 절절하게 느껴보라고. 어때? 숨이 막히고 피가 거꾸로 돌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살아 있는 게 끔찍하게 느껴지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