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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91194996217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26-06-04
책 소개
목차
안토니오
아나 마리아
베네수엘라
크리스토발
옮긴이의 말|“난초와 석유의 나라” 베네수엘라에 바치는 노래
리뷰
책속에서
테레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황량한 세상에서 모두로부터 잊힌 채로 나뭇가지 위에 숨어 있는 안토니오를 보면서, 그녀는 자신이 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미래는 그저 자리를 잘못 골라 태어난 죄로 죽을 때까지 고독을 끌고 다녀야 하는 거리의 부랑아에게 약속된 운명뿐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이대로는 결국 방탕한 인간들과 범죄자들, 아름다움과 영원히 멀어진 자들, 이제 누구를 위해 죽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게 된 절망적인 인간들이 들락거리는 초라한 술집들을 전전하게 될 게 뻔했다. 그러다보면 결국 지금 그를 찾느라 혈안이 된 자들, 그를 두들겨 패려는 자들, 심술궂고 오만한, 교육이라고는 호수의 난폭한 삶과 수전노 같은 아버지들에게서 배운 게 전부이고 꽃 하나 피지 않는 가시덤불 같은 마음을 지닌 자들과 똑같아질 터였다
몇 년이 지난 뒤 그날 주위에서 터진 조롱의 웃음을 떠올리면서 그녀는 그때 자신의 내면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처음 꿈틀댔음을 깨달았다. 바로 투쟁의 피였다. 그녀의 혈관 속에서 잠들어 있던 여성들의 계보가 순식간에 깨어났다. 아마존 맥에 올라탄 마리아 리온사의 피 묻은 단검, 아마조네스 여왕의 활, 아나 마리아 캄포스의 존엄한 자태, 아그노디케의 짧게 자른 머리, 도미틸라 플로레스의 영웅적인 순교, 그들 모두가 말에 올라서 과거라는 요새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아나 마리아는 자신이 두 가지 싸움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는 의학을 위한 싸움이었고, 하나는 여성을 위한 싸움이었다. 자신이 왜 다른 학생들처럼 여관과 술집에 드나들 수 없는지, 어째서 실수를 하면 안 되는지, 왜 성공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지 뼈저리게 자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고갈되지 않는 지식의 힘,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드는 앎이 자신을 승리로 이끌어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안토니오는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그는 위대한 외과 의사였지만 당장 딸에게 대답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했다. 가장 높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수백 번의 연설을 했고, 수술실에서 죽음을 무찌르면서 수없이 많은 승리를 거뒀으며, 그 어떤 힘겨운 복병이든 모두 극복해왔지만, 아마도 고집쟁이 혈통으로부터 유산을 이어받았을 아이, 눈 속에서 불길이 이글거리는 저 용감한 아이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지워져버렸다.
안토니오는 딸과의 싸움에서 자신이 패배하게 될 것임을 깨닫고 저항을 포기했다. 그는 딸을 앞에 앉히고 마지막 조건을 제시하며 항복했다. 그렇게 그는 딸이 평생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게 될 말을 건넸다.
"좋다. 가도록 해. 하지만 한 가지만 기억하거라.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의 노예가 되고, 하지 않은 말에 대해서는 주인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