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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일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57078150
· 쪽수 : 390쪽
책 소개
목차
공허한 십자가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나카하라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내 생각을 말해도 될까요?”
“…… 말씀하세요.”
“그때 사요코와 이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야마를 향해 덧붙였다.
“만약에 이혼하지 않았다면 또 유족이 될 뻔했으니까요.”
사야마의 얼굴에 고뇌의 빛이 깃들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음 순간, 나카하라는 그들이 자신의 알리바이를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버럭 화를 내며 두 손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건가요? 내가 딸을 죽였다고요?”
아사무라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은 아무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무슨 소리예요? 내 딸이 살해당했다면서요? 왜 범인을 안 잡고 날 심문하는 겁니까?”
“범인을 잡고 싶다면 수사에 협조해주세요!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아사무라의 굵은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분노와 슬픔과 억울함이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가. 피해자인 내가 왜…….
“말씀해주세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요? 어떻게 된 건지 제발 말씀해주세요.”
“모든 게 끝나고 나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모든 거라니, 어떤 거 말인가요?”
“모든 수사라는 뜻입니다. 그때까지는 함부로 말씀해드릴 수 없습니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사무라는 말도 붙일 수 없을 만큼 차갑게 대꾸했다.
“딸이 살해된 사건에서도 히루카와는 입만 열면 사죄도 하고 반성도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연기는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히루카와는 교도소에서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교회에도 참석했겠지만, 조금 더 주의 깊게 관찰했다면 어금니를 숨겼을 뿐이라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교도소 밖으로 내보내다니, 지방갱생보호위원회 위원의 눈은 그냥 뚫려 있는 구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석방은 결국 교도소가 가득 찼다는 이유만으로 이루어지는 무책임한 행위일 뿐이다.
만약 최초의 사건에서 히루카와를 사형에 처했다면 내 딸은 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히루카와지만, 그를 살려서 다시 사회로 돌려보낸 것은 국가다. 즉, 내 딸은 국가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계획적이든 아니든, 충동적이든 아니든, 또 사람을 죽일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을 사형에 처하지 않고 유기형을 내리는 일이 적지 않다.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징역의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은 재범률이 높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갱생했느냐 안 했느냐를 완벽하게 판단할 방법이 없다면, 갱생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형벌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마무리했다.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