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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7483091
· 쪽수 : 192쪽
· 출판일 : 2020-07-10
책 소개
목차
제1부 세상살이
냄새
아줌마
대기소
밥
삽질
사랑
추억
걱정
생일
의자
기차
세탁
압류
전단
식당
택배원
떡
연탄
김장
미화원
만원
은행
외판원
푸른길
얼굴
연금
실업급여
경비원
유통기한
요양원
빈소
제2부 짧은 생각들
세월
화장
칼
꿈
길
땀
태양
바다
잡초
연극
베개
도장
뇌
별
여행
절기
집
삼금
술
끊음
껍데기
피
왼손잡이
인사
낙하산
철
유언
희망사항
원
저자소개
책속에서
마누라가 끓여주는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아련한 어머니 냄새와 겹친다. 그땐 십중팔구 된장국만 먹었다. 두부나 감자, 양파 등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쌀 씻고 난 뜨물에 텁텁한 된장만 넣고 끓인 국이다. 순수한 원조 된장국이다. 그래도 잘만 먹었다. 요즘 아이들은 할아버지 냄새와 비슷하다며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칠순이 지날 무렵이면 폐차장에서나 반길 고물냄새를 풍기지 않던가. 그러면서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를 타고 가드레일도 없는 비탈길을 쏜살같이 내려간다.
급기야 회귀 본능의 연어들처럼 기저귀를 찬 시절로 돌아간다. 친자식들도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들어가 보호사들에게 의지해야 한다.
다행히 연금이라도 받고 있으니 요양비를 스스로 해결한다. 내리사랑이라고 저마다 자기 자식들 키우느라 부모 돌볼 여유가 없단다. 한 달에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렇게 한숨 소리와 입냄새와 똥냄새를 풍기고 머금다가 냄새 없는 곳으로 안주한다.
인생은 냄새로 시작해서 냄새로 끝나는 단막극인가보다.
불자는 아니지만 백팔번뇌가 있다고 한다. 눈·코·귀·혀·몸·마음(뜻)의 여섯 가지가 좋다·나쁘다·그저 그렇다의 세 가지 번뇌와 충돌하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두 가지 번뇌가 대립하는데 이런 것들이 과거·현재·미래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108가지 번뇌란다.
이 여섯 가지의 기본 번뇌 중 네 가지가 얼굴에 있다. 그래서 얼굴의 비중이 아주 높은가 보다.
오늘은 동그라미를 그리려는데 무심결에 어머니와 아버지, 마누라와 자식들의 얼굴이 얼키설키 나타난다.
모두 보고 싶은 얼굴이다.
머지않아 그마저도 힘들어지면 갓난아기로 되돌아가 기저귀를 차게 될 것이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물수건으로 온 몸을 닦아줄 것이다. 예전엔 며느리나 딸이 했었는데 요즘엔 요양보호사가 대신한다. 대리운전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요양원 앞 119구조대 담벼락에 그려진 담쟁이 넝쿨의 마지막 잎이 떨어지면 생을 마감할 것이다. 피 끓는 젊은 시절 동안 7남매를 키우느라 피골이 상접했었던 그날들을 뒤로한 채 말이다.
생명은 윤회하는지 어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늘의 할머니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내일이면 또 다른 할머니가 그 침대에서 잔잔하고 쓸쓸한 회환의 미소를 짓고 계실지 모른다.
‘현대판 고려장’이라 불리는 요양원의 하루는 오늘도 변함없이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