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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58073536
· 쪽수 : 244쪽
책 소개
목차
Ⅰ1972년 봄
Ⅱ 홋카이도의 여름 방학
Ⅲ 안녕, 기타히야마
Ⅳ 굿찬에서의 첫날밤
Ⅴ 굿찬 중학교 신고식
Ⅵ 거친 방황, 덧나는 상처
Ⅶ 격동의 겨울
작가의 말
해바라기가 피지 않던 청춘을 추억하며
옮긴이의 말
카 짱의 거친 청춘 질주
책속에서
“왜 내가 오타루 초료 고등학교에 가면 안 된다는 거야? 굿찬 고등학교보다 훨씬 좋은 학교인데? 선생님도 나라면 갈 수 있다고 했잖아. 게다가 하숙시켜 주지 않아도 다니겠다고 했고. 그럼 됐잖아. 뭐가 문제야?”
츠카사가 다그치자,
“아까도 말했잖아. 오타루까지 다니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매일 그렇게 다녀야 돼.”
또 물 타기 전법이다.
“난 갈 거야.”
츠카사는 선언하듯이 단호히 말했다. 그러자 입을 다문 채 땅을 보고 걸어가던 어머니가 불쑥 말을 던졌다.
“네가 굿찬 고등학교보다 더 좋은 학교에 가면 형이 어떻게 생각하겠니? 형의 입장이 뭐가 되겠냐고.”
츠카사는 아연실색했다. 주베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그리고 이번에도 어머니가 반대한 큰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럼 내 입장은 어떻게 되는데……?”
“넌 동생이잖아…….”
동생은 형보다 뛰어나면 안 된다. 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츠카사 형제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받았다. 어쨌든 어머니에게는 형이 최고다. 사실 형은 형제 가운데서 무엇을 해도 1등이어서, 츠카사와 동생들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형보다 공부를 잘해서는 안 된다는 건가? 형보다 좋은 학교에 가서는 안 된다는 건가?
“아버지를 원망한 적 없어?”
“아버지를 원망해? 왜?”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나하고 동생들이 싸우면 아무 상관없는 형한테 책임을 지우고 때렸잖아.”
“아, 그랬지. 그렇지만 장남이란 게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 별로 원망이고 뭐고 그런 것 없었어.”
형의 말이 거짓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럼…… 고등학교 문제는? 아버지가 억지로 하코다테 주베에 시험 치게 해서 재수하게 됐잖아. 히가시 고등학교를 쳤더라면 붙었을 텐데.”
“그것도 떨어진 내가 나쁘지. 아버지를 원망할 일이 아냐.”
그런가? 형은 어째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지, 츠카사는 신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너한테는 미안하게 생각해. 하코다테로 고등학교를 가지 못한 건 내 탓이니까. 그뿐만이 아냐. 굿찬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도 내 탓이지? 실은 알고 있었어. 네가 오타루 초교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 한 것……. 알고 있었지만, 가라고 말하지 못했어. 역시 너가 나보다 좋은 학교에 가는 게 싫었던 거야. 형인 내가 더 나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렇지만 네가 나하고 같은 나이인 응원단 녀석들을 어떻게 해달라고 했을 때 알았어. 난 이제 너의 형으로 있을 자격이 없다고. 나 때문에 굿찬 고등학교에 가게 해놓고, 너한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잖아. 그러니까 츠카사, 이제 네 형 안 할래.”
‘왜 그래, 형…….’
할 말을 잃은 츠카사는 가슴이 아파서 미칠 것 같았다. 형은 주베 고등학교에 떨어진 뒤로 줄곧 혼자 고민하고, 자신을 탓하며 괴로워한 것이다.
츠카사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면에서 형을 비난하자, 지금 형은 형이라는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츠카사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 형은 츠카사의 슈퍼맨 노릇에 지쳐서 이제 그만 해방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요시자와는 뭘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츠카사는 아차 했다. 자신과 똑같았다. 각자 처해진 상황과 입장은 다르지만, 요시자와 카나코도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해서 아무런 목표도 없이 오로지 공부만 할 수밖에 없는 매일……. 요시자와에게 그런 날들은 매일 고문 같지 않았을까?
분명 그랬을 것이다. 츠카사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성적이 떨어지고 또 떨어져, 가고 싶지 않았던 굿찬 고등학교밖에 갈 수 없게 되었을 때 할 수 없이 허겁지겁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 몇 개월 사이에 맛본 것은 구토조차 느낄 수 없는 허무함이었다.
모든 것에 절망한 요시자와 카나코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고, 츠카사는 비뚤어지고 거칠어 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엔 츠카사도 다가와 붙었을 때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가네코, 넌 되고 싶은 게 있냐?”
위스키를 마셨다. 몹시 쓴맛이 났다.
“응?”
가네코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나중에 해보고 싶은 게 있냐고?”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없어. 너는?”
“난… 생각해 봤는데, 없어. 아무것도 없어…….”
가네코는 한참 동안 말없이 위스키만 홀짝거렸다.
“그래도 생각하는 동안은 괜찮을 거야. 분명히.”
가네코가 불쑥 말했다.
“그럼 넌? 괜찮지 않아?”
“난 앞으로도 생각하지 않을 거니까 괜찮을 거야,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