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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58073826
· 쪽수 : 256쪽
책 소개
목차
딸들만 있는 나라
질풍의 마리아 11
타고난 전사 30
첫 비행 59
사랑 87
여왕벌 이야기 112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습격 139
보이지 않는 적 166
숙명 184
사투 195
여행 224
에필로그 242
어느 곤충학자의 후기 246
장수말벌 제대로 알기 250
책속에서
베스파 만다리니아의 전사로 태어난 이상 매일 비정한 싸움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설령 돌아오지 못한 전사가 있다 해도 그걸 한탄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새로운 전사를 키워 내기 위해 사냥에 나가는 것이 자신들의 사명이다.
장수말벌 워커는 알에서 깨나 우화할 때까지 약 30일간 거의 죽는 일이 없다. 안전한 둥지 안에서 성충들의 보살핌 속에 먹이를 풍족하게 제공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화하고 둥지 밖으로 나서면 끊임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성충이 됨과 동시에 지금까지 안전을 보장받았던 대가를 치르기라도 하듯 급속히 사망률이 높아진다. 첫 일주일 사이 약 3분의 1이 죽고, 2주 만에 반이 모습을 감춘다. 3주를 넘기는 워커는 1할도 되지 않는다. 천수를 누려도 30일 남짓밖에 안 되지만, 그때까지 사는 워커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워커들은 그 전에 짧은 생명을 불태우고 세상을 떠난다. 그만큼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산드라는 전사로 활동하기에는 너무 늙었어. 그런데도 항상 멀리까지 원정을 나갔지.”
“용감한 언니였어요. 저도 산드라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키르스텐이 마리아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산드라는 평생을 제국을 위해 헌신했지. 그런데 아무 보상도 못 받고 죽었어.”
“보상이라니 뭘요? 워커에게 보상이라면 동생들이 훌륭하게 자라는 거죠.”
키르스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산드라는 충분한 보상을 받았겠구나. 마리아처럼 강한 동생을 키워 냈으니까.”
“산드라 언니가 죽어서 안타까워요.”
“워커의 목숨은 짧지. 나도 이제 멀지 않은 것 같아.”
“우리의 수명은 짧지만 다른 어떤 벌레보다 거침없이 살 수 있어요. 동생들의 단 즙만 마시면 세상 어디라도 날아갈 수 있고 아무리 싸워도 지치지 않아요.”
“그래, 네 말이 맞아. 유충들의 타액은 마법의 물이야. 우리가 하루 종일 날 수 있는 건 틀림없이 단 즙 덕분이야. 그렇지만 마리아….”
키르스텐이 잠깐 말을 끊었다. “이렇게 작은 몸으로 우리가 그렇게 날 수 있다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해 봤니?”
“무슨 말이에요?”
“우리 몸은 원래 그렇게까지 날 수 없고 그렇게까지 활동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런데 단 즙 덕분에 터무니없이 많은 일을 해. 그러니까 우리는 육체를 혹사하고 목숨을 갉아먹으며 사는 거야.”
“워커의 목숨이 짧은 이유가 단 즙 때문이라는 말이에요?”
키르스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요? 그걸 안다고 뭐가 달라져요? 짧더라도 굵게 사는 게 제 꿈이에요. 뭐 하나 제대로 이루지도 못하고 웅크려만 지내면서 오래 살 바에는 짧은 시간 제 모든 걸 다 불태우고 살래요. 그게 베스파 만다리니아 전사의 삶 아닌가요?”
키르스텐은 아무 대답도 안 했다.
“키르스텐 언니는 죽는 게 무서워요?”
“너 같은 젊은 워커는 이해 못 할 거야.”
“전 죽음이 무섭지 않아요. 사냥에 나갈 때마다 항상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각오해요.”
“넌 강한 전사구나.”
마리아는 아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자신의 인생을 고민할 때가 올 게다. 워커는 무엇을 위해 태어난 걸까 하고.”
“왜 워커는 아이를 못 낳을까? 암컷인데.”
마리아는 그렇게 물은 순간 자기가 한 말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내 입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다니.
“글쎄. 타고난 운명이겠지.”
곰개미는 흥미 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개미가 하늘을 못 나는 것과 똑같지 않겠어? 당신이 물속에서 살지 못하는 것과도 같고, 장수풍뎅이가 침을 찌를 수 없는 것과도 같아. 못하는 걸 갖고 뭐 하러 고민해? 원래 그렇게 태어난걸.”
“그렇군. 당신 말이 맞네.”
마리아는 멍청한 질문을 한 것을 반성했다.
곰개미가 떠나려다, 돌아서서는 말했다.
“우리 개미나 당신네 장수말벌이나 둥지 전체가 하나의 생물인 거야.”
“무슨 말이야?”
“여왕벌은 난소고 워커는 손발이야. 제각기 달라 보이지만 실제로 모두 합하면 하나의 생물인 거지.”
곰개미는 그렇게 말하고는 휙 하니 가 버렸다.
마리아는 곰개미가 한 말을 머릿속에서 곱씹었다. 처음에는 무슨 수수께끼처럼 들렸지만 곰곰이 되새겨 보는 사이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커가 손발이라면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