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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라 하네

살아가라 하네

정복언 (지은이)
정은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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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라 하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살아가라 하네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8243984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19-09-30

책 소개

정복언의 첫 수필집. 대상물에 다가가는 저자 특유의 관법과 조우할 수 있다. 저자의 사유는 인간과 생명의 근원에 깊이 닿아 있다. 1부 '꽃종이 울다', 2부 '초록빛 가슴으로', 3부 '빨간 장미를 죽이다', 4부 '의자의 토설', 5부 '어둠의 역설', 6부 '하얀 그리움'으로 구성되었다.

목차

작가의 말 4
작품평설 | 김길웅(수필가, 문학평론가) 257

1부_ 꽃종이 울다
푸른 미소 … 15
삶의 생기 … 17
부재 아닌 부재 … 21
해바라기 조화造花 … 24
꽃종이 울다 … 28
수필을 향해 … 31
어떤 인생 … 35
5개월의 반란 … 37
주례를 서다 … 41
운수, 매정하다 … 45
글담을 쌓고 싶다 … 48

2부_ 초록빛 가슴으로
순간의 운명 … 55
모성애 … 57
글제 … 61
눈[雪]에 끌려서 … 64
삼식이 단상 … 68
의식의 끝자락 … 71
초록빛 가슴으로 … 75
비양도에서 … 78
호기심 … 83
작명 … 87

3부_ 빨간 장미를 죽이다
오월의 화단에서 … 93
동행하는 숨결 … 94
빨간 장미를 죽이다 … 98
침묵을 들으며 … 101
바둑 … 105
시를 품은 바위 … 109
어머님의 세례 … 112
황혼을 바라보며 … 116
생질의 결혼을 축하하며 … 121
민달팽이의 유서 … 125
기다림 … 129

4부_ 의자의 토설
식탁 위의 딸기 … 135
모란꽃 앞에서 … 137
얼굴 사진을 찍으며 … 138
어휘력 … 141
길을 찾아서 … 145
이슬의 강 … 149
경품 추천 … 153
사랑하는 큰며느리에게 … 156
샴쌍둥이 감 … 159
의자의 토설 … 162
뜨락에서 … 166

5부_ 어둠의 역설
배롱나무 … 171
깨끗한가 … 173
어둠의 역설 … 176
9월의 자두꽃 … 180
발상의 전환 … 183
말씀의 빛 … 187
석류의 꿈 … 192
여행의 발자국 … 196
사유 충전 … 201
곡선의 길 … 205

6부_ 하얀 그리움
꽃의 순교 … 211
하얀 그리움 … 212
석화가 입을 열고 … 216
정원의 숨결 … 219
어디서 누군가 … 224
매정한 이별 … 228
겨울을 나며 … 233
어머님을 떠나보내다 … 235
함께 터벅터벅 … 242
교정에서 맺은 … 246
살아가라 하네 … 250

저자소개

정복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귀포시 남원 출생 (1949) •공주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1972) •중등 교장 역임 •황조근정훈장 수훈 (2012) •『文學광장』 시 등단 (2016) •『현대수필』 수필 등단 (2017) •제주문인협회・제주수필문학회・동인脈 회원 •제주일보 ‘사노라면’ 필진 •시집 『사유의 변곡점』, 『내게 거는 주술』 •수필집 『살아가라 하네』, 『뜰에서 삶을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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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꽃종이 울다

댕그렁, 댕그렁.
환청이 아니다. 종소리가 맑은 얼굴로 다가와 가슴에 안긴다. 어떻게 휘둘리지 않고 소음의 늪을 지났을까. 덜컹덜컹 일상을 밀고 가는 목소리, 가쁜 숨을 토해 내는 자동차 엔진 소리…. 온갖 소리가 뒤엉켜 침묵을 몰아내는데, 영혼을 일깨우듯 종소리가 퍼지고 있다.
제주시 중앙성당 종탑에서 아침저녁 6시에 울리는 종소리는 부활의 그리움이다. 종소리마저 소음이라며 민원의 대상이 되어, 학교나 교회의 종들이 숨을 멎을 때 함께 눈 감았던 종이 살아났다. 지역민들이 종소리의 추억이 그리워 되살린 것이다. 잠시 귀를 열면 수많은 언어로 메마른 가슴을 적시리니.
사람들만 종을 매다는 게 아니다. 자연도 종을 매단다. 하얀 소리를 울리며 마음으로 듣게 하는 영성의 종이다.
마당의 분재 군락 속엔 종낭 분재가 하나 있다. 종낭이란 때죽나무를 일컫는 제주어이다. 다섯 개의 하얀 꽃잎이 아래를 향해 벌어지면 마치 종을 닮아 붙여진 이름일 테다. 여러 해 전 멀리 강원도의 한 분재원에서 내게로 이사 온 종낭은 고향이 그리운 듯, 5월 초면 하얀 지등을 주렁주렁 달아 놓는다.
대부분 꽃은 하늘을 우러러 마음을 여는데, 종낭꽃은 눈 아래 땅을 굽어보며 가슴을 연다. 마치 하늘의 소리를 전하는 경전 같다. 꽃이 지면 작은 열매가 탄생한다. 그때부터 비바람으로 수행하며 완성의 길로 나아간다. 고작 손톱만 하게 조롱박 모양으로 자라는 열매는 낯빛이 연회색이다. 어찌 보면 진리의 소리가 응축된 종주머니 같기도 하다.
봄 햇살 내리는 오전, 마당으로 나가 종낭꽃과 눈을 맞춘다.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듯, 꽃향기가 나를 에워싼다.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저 하얀 순수, 고통을 수용하면 저리 아름다울까.
댕그렁, 댕그렁.
하얀 꽃종이 운다. 가식이나 왜곡이 없는 종소리다. 꾸미지 않고 희로애락을 토해 내고 진리를 설파한다. 찰나를 노래하고 때론 긴 서사를 풀어내기도 한다. 소통의 달인이며 언어의 마술사다. 살포시 지상으로 내려오는 천상의 소리, 눈으로 보며 전율한다.
울지 않을 수 있으랴. 살아 있는 것은, 아니 존재하는 것은 종처럼 몸으로 울어야 한다. 하늘이 울고 땅이 울고 산과 바다가 울고 꽃과 나비가 울며, 소리들이 모여 화음이 되고 종국에는 소실해 침묵이 된다.
종은 구도자다. 긴 시간을 침묵으로 묵상하다 깨달은 진리를 울음으로 전한다. 내면을 때리는 고행의 소리, 그에 사람들은 무릎을 꿇는다. 가슴마다 은은하게 흐르는 여울은 본향으로 인도하는 순례길인가 싶다.?나는 자연에서 신의 메시지를 듣고 영혼의 구원을 꿈꾸곤 한다. 필요 없이 생겨난 게 무엇일까. 무질서하게 보이는 만상의 것들이 질서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실존을 증명함임에랴. 오래 바라보노라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도 무한한 신비와 아름다움이 튀어나온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머리를 숙이게 된다.
내 몸에도 종소리가 들어 있을까, 공명을 꿈꾸는 맑은 소리. 그래서 어느 날 종 줄을 당기면 내 일생의 소리가 은은하게 퍼질까, 아니 둔중한 소리라도 나기나 할까.
꽃종을 바라보며 다채로운 소리에 몰입한다. 침묵의 건반을 오르내리는 생의 노래다.


살아가라 하네

“여보, 희로애락이 내게서 모두 떠난 모양이오.”
무심결 튀어나온 말에 어떤 느낌이며, 왜 그런 거 같냐고 아내는 꼬치꼬치 캐묻는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내 의식이 그렇게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수양한 결과 초연해진 마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만, 평범한 삶을 추구하려는 내게는 재앙으로 다가온다.
지난겨울엔 추위를 많이 탔다. 여러 달 내의를 착용하면서 나이 들수록 불편한 일이 한둘이 아님을 실감한다. 추위에는 약하나 더위는 잘 견디는 체질이어서 얼른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날이 따뜻해지면 몸 상태가 좋아지던 예년과는 상황이 달랐다. 여름에 접어들면서 불청객이 내 몸에 들어앉았음을 깨달았다. 다리가 유독 시린 것이다.
아내는 한약방에 들러 증상을 이야기하고 기력을 돋우는 약을 한 달 치 지어 왔다. 마침 삼차신경통 증세가 나타나 걱정하던 차에 이틀을 복용하니 증세가 단박에 가셨다. 특효약처럼 신봉하며 몇 주째 복용해도 하지의 냉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침술 하는 지인이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다며 가는 침을 놓으라고 조언한다. 혈당을 재려고 사용하는 채혈침으로 날마다 다리의 이곳저곳을 찔러댔다. 어느 곳에서는 검붉은 피가 몽우리처럼 솟아나기도 했다. 일주일쯤 지나니 피가 났던 곳곳에 붉은 반점들이 들어서며 피부염에 걸린 꼴이 되고 말았다. 아내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며 공중목욕탕에 가긴 글렀다고 못을 박는다.
당뇨약과 고혈압약을 처방 받으러 병원을 찾았을 때 다리의 문제를 말했더니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약을 하나 더 처방해 주었다. 다발성 신경병증 치료제이다. 당뇨로 인해 말초신경에 이상이 생겨 감각이 저하된 상태인 것 같다. 덥고 추움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가. 더워서 에어컨을 틀면 두 팔은 박수를 보내는데 두 다리는 양말을 신기라고 생난리를 부린다.
몸과 더불어 정신도 많이 피폐해진 것 같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에 걸린 듯 서재와 마당을 들락거리며 여름 한철을 거의 보내고 있다. 차분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가 없다. 불잉걸이 쏟아지는 마당을 서성이며 숯덩이처럼 타 버리고 싶은 생각에 젖노라면 주변 풍경이 새롭게 다가온다. 정성으로 보살피던 초목들이 힘을 내라고 응원을 한다. 저들인들 삶이 수월할까만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서너 그루 감나무가 비가 오고 나면 낙과하며 자신의 체력을 가늠하더니 올망졸망 열매를 튼실히 키우고 있다. 올봄에 심은 무화과나무도 활력을 자랑하며 잎겨드랑이마다 봉긋봉긋 열매를 달고 있다. 가만히 열매를 바라보노라면 엄마 젖을 문 아기처럼 모정의 풍경을 그리게 된다. 땅속에서 분주히 땀을 흘리는 뿌리의 노고는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식을 두어서야 비로소 어머니를 부르며 흔들리는 뿌리가 된다.
배롱나무꽃이 연일 허공에 불을 밝히고 있다. 누구를 위해 가지마다 소신공양을 하는 걸까. 아니면 무슨 죄를 지어 자신을 태우며 정화하는 걸까. 행복한 순간이라며 신앙을 증언하는 건 아닐까. 눈길을 보낼 때마다 본능을 밀쳐내고 의지로 살아가는 수도자 모습이다.
텃밭에서 만만한 상대는 호박넝쿨이다. 짓밟아도 한마디 대꾸도 없이 씩 웃을 것만 같은 인상이다. 호박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암을 예방하는 데 호박이 좋다는 방송을 들은 탓도 있지만, 씨앗을 유전자 조작으로 당년에 한해서만 열매를 맺게 한다는 말에 분노를 느껴서이다. 삼 년 전 마르지 않게 물을 주며 암꽃에 가루받이를 시켜 관리했는데도 툭툭 떨어져 버린 조그만 열매는 사람을 얼마나 허망하게 했던가.
어릴 적 초가지붕에서 황갈색으로 익던 맷돌 호박의 본성을 찾아주고 싶다. 제대로 수분을 하지 못한 결과인지 몇 개는 열매가 떨어져 버렸지만, 네댓 개는 주먹보다 크게 자랐다. 앞으로도 더 달리고 계절을 담으며 몸피를 불릴 것이다. 수시로 열매에 눈을 맞추며 생명의 신비를 어림해 볼 생각이다.
한번은 볕바라기를 끝내고 서재로 향하다 걸음을 멈췄다. 지난해 처음 보았던 벌레 하나가 방충망에 붙어 있지 않은가. 머리, 가슴, 배 세 부분으로 나뉘며 다리가 여섯 개라는 일반적인 곤충의 정의가 쉽게 연상되지 않는 기이한 모습이다. 몸의 길이는 10센티 정도이고 빨대처럼 굵기가 비슷하며 갈색이다. 머리에 길게 돋아난 게 발이 아니라 촉수라면 다리는 네 개뿐이다. 만약 발이라면 머리에 발을 가진 셈이니 기이한 게 아닌가. 겨우 알아낸 이름은 ‘대벌레’이다.
지푸라기로 살짝 건드렸더니 바닥으로 이내 떨어지곤 다리 마디를 접으며 움직이지 않는다. 죽은 체를 하여 위기를 모면하려는 술책이다. 한참 바라보아도 움직임이 없다. 인내심이 대단하다. 다시 건드렸더니 긴 다리를 쭉쭉 뻗으며 달아난다. 얼마 안 가서 햇볕을 즐기려는 듯 다시 시멘트 바닥에 몸을 붙인다. 이리저리 거닐며 살피는데도 꼼짝 않는다. 오 분이 족히 넘었다. 나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벌레이기에 삶의 방식은 태생적일 것이다. 존재 양식을 어찌 옳다 그르다 하랴.
여러 해 전 발목 골절로 수술을 받고 통증을 완화하려고 무통 주사를 맞았던 기억이 난다. 통증이 없어진 게 아니라 못 느낀 것이다. 그땐 의술이 참으로 고맙게 생각되었다. 이제 다리의 신경계 고장을 생각하노라니 몸과 마음에서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죽음에 대처할 수 없음을 절감한다.
사는 것은 통증을 느끼는 일이 아닐까. 늘 피하고 싶은 통증이 때론 간절해지고 감사의 대상이 됨은 생의 역설이요 운명이란 생각에도 이른다. 중요한 건 의미 부여일 테다. 긍정의 시간으로 생이 채색되길 기도한다.
자연 속에서 생기를 얻는다. 살아가지 않는 게 없다. 살아가라 하지 않는 게 없다.


<작품평설> 東甫 김길웅(수필가·시인·문학평론가)

① 주검 옆에는 유서가 남겨 있다. 나는 먼저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하여 기억상실에 대비한다. 고대인이 남긴 상형문자를 고고학자들이 연구하듯, 기억의 저장고에서 그 현장을 꺼내어 며칠째 의미를 캐고 있다.
② 커다란 민달팽이 한 마리가 회색 시멘트 바닥 위에서 최후를 맞았지 않은가. 그것만이라면 집게를 들고 와 마당의 구석진 곳으로 치우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검 옆에는 한 생을 마무리하며 유서를 남겼으니, 도저히 미물 취급을 할 수가 없었다.
③ 민달팽이의 느린 걸음을 생각하면 아침 일찍 출발했으리라. 어떻게 사하라사막 같은 곳을 횡단할 원대한 꿈을 키웠을까.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향을 찾아 나섰던 것일까.
④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생은 충분히 흥미를 촉발한다. 내일이라는 시간이 무얼 들고 내게 다가오려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게도 한다.
⑤ 세상 어느 것이나 유일하다는 생각에 이르면 관심을 기울여 사랑해야 할 당위를 얻는다. 하물며 인간임에랴. 그런데도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돌아보니 미안함이 깊다. 늘 부족하고 못난 존재, 불만스러운 환경과 가파른 운명, 어느 하나도 나를 포근하게 감싸지 못한다고 내심 자학도 많이 했다.
⑥ 민달팽이의 유서를 해독해 본다.
‘무겁게 길을 걸었네. 마지막에 이르러 동행하는 숨결을 느끼네. 아름다운 발자국을 남기시게나.’
문상객처럼 서서 민달팽이의 죽음을 생각하노라니, 자연이 사방에서 우릴 응시한다.
―〈민달팽이의 유서〉 부분

나는 이 작품을 정복언 수필의 대표작으로, 그 앞줄의 맨 앞에 세우려 한다. 마치 한 사람 생애의 백서를 읽듯 시종을 훑고 돌아와 그것을 민달팽이라는 매개체의 유서로 치환한 착상과 기법이 신선하고도 기발하다. 이제 수필도 이제까지의 고착된 틀, 낡은 기법을 넘을 수 있어야 한다. 고행으로 얻었을, 쉽지 않은 착상이 놀랍다. 또 구성이 이로 따라 정연한 점 또한 간과할 것이 아니다.
글씨를 잘 쓰려면 쓴다는 생각 없이 써야 한다. 고졸에 이르는 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기는 그 도정이 무척 멀고 험난하다. 그런데 이 수필은 무심결 그렇게 썼다. 써진 것이다. 화자가 그렇게 길을 걸었다. 걸은 것이다.
① 처음부터 산에 올라 유서 앞에서 인간을 굽어보고 있다. 추론하려는 의중이다.
② 한 생을 마무리하고 있는 유서를 목도한 화자, 무심할 수 없었다.
③ 이상향에의 희구를 꿈꾸었을 것이란 상상을 하고 있다.
④ 인생은 불확실한 데서 흥미롭고 설레게 하는, 그래서 살 만한 그런 무엇이다.
⑤ 감싸지 못하고 자학해 온 것에 대해 회오와 죄책을 토설한다.
⑥ 마침내 유서를 해독하기에 이른다. 누구의 묘비명 같다.

여느 때처럼 아내는 부엌에서 혼자 제수를 준비하고 있다. 과일을 씻고 돼지고기와 쇠고기로 산적을 만들고 갖가지 전을 부친다. 콩나물과 고사리나물도 준비한다. 그러면서 내게 말한다. “당신은 나보다 먼저 돌아가야 해요.”
몇 년째 듣는 말이다. 내가 아내의 말뜻을 왜 모를까. 때론 다투기도 하고 갈등도 빚으면서 엮어 온 삶이 사랑의 자양분 되어 내 아픔을 삭여 주었다. 아내의 손을 잡는다. 이 따스한 손이 체온을 잃는다면 나로서는 밀려드는 고독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부부가 오래도록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나는 고맙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아내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슬의 강〉 부분

부부는 인생길의 반려다. 한평생 간난고초를 함께해 오며 정들어 흐드러진 사이다. 젊은 시절엔 풋풋하게 연정이니 애정이니 하다 늘그막에 이르면 성숙해 ‘인간애’가 된다. 일심동체란 말은 결코 평범한 말이 아닌, 실체로서 절대 진리다. “당신은 나보다 먼저 돌아가야 해요.” 살아 내기 어렵다는 하루하루를 생살 찢는 것에 빗대는 말년의 혼자되는 고독, 여자는 혼자가 돼도 견뎌내나 남자는 힘들다 한다. 세상에, 아내 말고 이런 말을 과연 누가 할 것인가. 단언커니와 헌신적인 사랑의 화신, 아내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내외간에 주고받는 대화 그리고 서로 간 쳐다보는 눈빛에 한 생이 그림자처럼 잠겨 있다. 아름답고 애절하니 처연하다. 정복언은 정녕 아내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 하고 있다. 마음만 있으면 어렵지 않다. 어느 철학자는 ‘진정한 선물 행위는 받는 사람의 기쁨을 상상하는 기쁨’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행복이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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