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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후리는 노래

멜 후리는 노래

(임시찬 제3수필집)

임시찬 (지은이)
정은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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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후리는 노래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멜 후리는 노래 (임시찬 제3수필집)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8245049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4-06-11

책 소개

《멜 후리는 소리》는 멸치 떼를 휘몰아친다는 뜻이다. 한여름 새벽 마을 해안에서 벌어지던 멸치잡이 광경으로, 이 작품 또한 ‘나’의 ‘우리’로의 치환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본시 고향 냄새란 얼마나 짙고 진하고 달달한가. 이제, 작가의 작품 의도를 충분히 알아차릴 것 같다.

목차

제1부- 집 이웃 밭 이웃
홀아비 예행연습 15
목욕탕의 전설 19
표현의 자유 23
졸업과 입학 사이 27
유 자식이 상팔자 31
시골 영감 35
집 이웃 밭 이웃 39
포제 43
노을 장 47

제2부- 사필귀정
태풍과 함께 지새는 밤 53
사필귀정事必歸正 57
주차장 60
음택 63
입산봉 67
학의 눈물 71
송년의 밤 75
퇴임 준비 79
세배 83

제3부- 동생이 오는 날
태풍이 훑고 간 자리 89
외국 노동자 93
동생이 오는 날 97
뒤 새가 터지면 101
떡 하는 날 105
포용 109
선거 113
가족사진 117
빈 쇠막 121

제4부- 경자유전
폐기되는 마늘밭 127
소득증대와 도유지 131
경자유전耕者有田 135
제초제 치던 날 140
잊지 못할 선물 144
장손의 생일선물 148
풍악이 울리던 날 152
고령 농민과 용역 156
퇴직 해녀의 연금수당 160

제5부 바다 건너 저편에
에너지 선진지 견학 167
오오사카에 가다 172
종말 176
바다 건너 저편에 180
만장굴 탐사 184
칠순 188
복지사회 192
천년으로 가는 길에 196

제6부- 멜 후리는 노래
가을 색 203
나라 말씀이 207
요양원 211
자가 격리 214
비석거리 218
농업용수 222
마을의 총유 자산 226
든자리 난자리 빈자리 230
멜 후리는 노래 234

저자소개

임시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제주한라대학 졸업 ·수필과비평 신인상으로 등단 ·수필과비평 작가회, 구좌문학회, 들메동인 문학회 회원 ·제주일보 논단 필진 ·한라문화제 (민속부분) 2회 최우수상 수상 연출 (도 대표 출연 2회: 마산 성남) ·전 구좌읍 바르게살기, 주민자치위원 ·전 김녕리 이장. 새마을지도자 ·전 김녕농협 이사, 감사 ·전 제주시수협 이사, 감사 ·공인중개사. 사회복지사 ·수필집: 《두럭산 숨비소리》(2018), 《못다 한 이야기》(2020), 《멜 후리는 노래》(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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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정초에 온 마을이 들썩거린다. 꽹과리를 선두로 북과 설장구 소리, 느릿한 여덟팔자걸음 하면서 길게 수염을 단 영감도 있고, 스님도 있다. 곱게 새색시로 단장한 부인도 있지만, 단연 주인공은 거지와 총을 든 사냥꾼이었다. 흥에 겨운 몸놀림과 구경하면서 뒤를 따르는 아이들 온 마을이 시끌벅적하다. 집마다 막무가내로 들어가서 마당을 한 바퀴 돌면서 잡신 물러가라고 굿을 한다. 집주인이 고맙다고 형편에 따라 돈도 주고 곡물 몇 됫박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부인회가 주축이 되어 마을의 숙원이었던 목욕탕 건립을 위해서, 걸궁으로 모금 활동을 한 것이다. 마을의 중심지이고 당시에는 조그만 방앗간 있던 자리를 매입해 그럴싸한 목욕탕을 건립했다. 당시 지도자들의 마을숙원사업을 이루기 위해서 온 정성과 고난과 눈물 어린 사연들이 결국, 이루어낸 것이다. 높은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오를 때 지도자들의 감회와 전 이민의 감격과 기쁨, 지금 생각만 해도 감격스러운 장면이었다.
내부라야 들어서면 조그만 옷장이 있고 문을 열면 가운데 둥그런 목욕탕과 벽면에 드물게 수도꼭지 몇 개가 전부다. 김이 가득 서려 누가 있는지조차 한참 있어야 희미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당시에는 명절 때가 가까워야 부엌 큰솥에다 물을 데워서 어머니가 순서대로 때를 밀어주던 시절이다. 이런 시절에 현대문명을 만났으니 얼마나 감격이 컸는지 모른다. 그러나 목욕비도 아껴야 하던 때라 자주 할 수는 없었다. 어쩌다 한번 가는 목욕탕에 아주머니 목욕 가방에는 빨랫감이 수북했고, 탕 안에는 물 위로 때가 넘쳐났다.
옆집 장작 눌 위에 숨어서 조그만 여탕 문 안을 도독 고양이처럼 살피다 들켜 혼이 나고, 남탕과 여탕 칸막이가 천장 위로 열려 있어 등을 구부리고 한 놈은 올라타서 김이 서려 보이지도 않는 여탕을 보다가 들켜 혼쭐나기도 했다. 이제 목욕탕을 건립한 대다수 지도자님과 목욕탕에서 빨래하던 아주머님들은 마을 공동묘지 지키려고 떠나셨고, 훔쳐보던 아이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전 주민의 협동의 산물이었던 목욕탕은 점차 주변 다른 마을의 새로운 현대식 시설을 갖춘 목욕탕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어느 날 조용히 사라져야만 했다. 지금은 그 자리가 자동차 주차 공간으로 변했다. 우리 마을은 읍 관내의 20%의 인구가 사는 꽤 큰 마을이면서도 목욕탕이 하나도 없다. 전 주민이 원하면서도 누구 하나 나서는 이도 없다.
설 촌 당시부터 우마로 경작하던 시절 우마를 놓아 방목했던 마을 공동목장이 있었다. 이 목장은 측량 당시에는 세금 등 어려움으로 마을소유명의로 등기는 하지 않았지만, 유축 농가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풀을 베고 무너진 담장을 손질하면서 가꾸어 온 소중한 자산이었다. 제주도에 골프장개발 붐이 일면서 업자가 눈독을 들였고, 행정의 힘을 등에 업은 업자는 선량한 주민들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 허울 좋은 협약서란 것을 제시하면서 일을 도모해 나간 것이다. 그렇게 소중하게 가꾸어 오던 넓은 땅이 고스란히 업자 차지가 돼 버렸다.
- <목욕탕의 전설>중에서


산수의 해녀가 물질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 본인 스스로 체력이 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자녀들도 그만두기를 바라는데 굳이 바다에 들어 사고를 당하고 주위를 슬프게 할까.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난 시절과 비교하면 너무나 풍족한 환경에서 많은 것을 누리며 산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러나 결코 예전보다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당시에 고령 해녀의 손은 테왁 대신에 아기 구덕에 걸쳐있었고, 젊은 며느리가 테왁을 이어받아 바다 가운데 있었다. 바다는 늘 젊고 활기로 넘쳤다. 언제부턴가 바닷가 초가삼간은 시멘트에 밀려 사라졌고 아기 구덕도 함께 사라졌다. 바다에는 해녀 노래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등 굽고 주름진 늙은이들 몫이다.
경로당 지어놓고 편히 쉬고 즐기라고 하지만, 젊을 때 즐겨봐야 즐길 줄 알지 늘 반복되는 일상에 움직일 수만 있다면 테왁을 벗함만 못해 절뚝이면서도 바다로 가는 길이 오히려 즐거운 할머니 해녀다. 바다가 직장이고 휴식처이고 즐거움이 있어 해녀는 바다에서 주름살이 늘지 않는다. 어찌 자녀들이 말리고 행정에서 퇴직하라 종용한다고 쉽게 그만둘까.
오랜만에 찾아오는 손자의 고사리손에 지폐 한 장 쥐여주는 맛에 산다. 지폐 색깔에 따라 할머니 부르는 소리가 다르다. 오늘도 바다에 가는 이유다. 물론 집 안에 혼자 있는 것보다 나이 어린 해녀들의 싱싱한 소리가 있는 탈의장이 훨씬 좋고 얕은 할망 바다에서 소득은 별로지만,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노력해서 떳떳하게 손에 쥐는 소득의 만족감을 누가 알 것인가.
시집가기 전까지는 가정의 경제를 위해서 살았다. 오빠와 남동생을 위해 책가방 한 번 들어보지 못하고 숨비소리에 약이 나오고 연필이 나오고 옷이 나왔다. 딸은 공부시킬 필요 없고 착한 남편 만나 시집이나 가면 된다는 당시 고리타분한 부모님 생각은 개인적이기보다 사회의 분위기였다. 어찌 딸이라고 공부를 시키고 싶지 않았을까마는 경제가 원인이었다.
딸들은 고생이라 하지 않고 숙명으로 여겼다. 우리 딸은 절대 해녀질 안 시키겠다고 학교에 보낸 딸도 중학생이 되면 우뭇가사리나 미역 채취하는 날에는 조퇴하고 총총걸음으로 바삐 교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이러한 딸은 복 받은 딸이다. 부러운 눈으로 교문을 바라볼 뿐 운동장을 밟지 못한 여자가 더 많았다.
시집갈 혼수를 마련하기 위해서 물설고 낯선 육지로 바깥 물질을 갔다.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춘 3월에 갔다가 추석이 가까워지면 귀향하는데 육지 총각과 눈이 맞아 귀향을 포기하고 눌러앉아 현지 해녀가 되기도 했는데, 육지 곳곳에는 아직도 해녀 일을 하는 고령 해녀가 되었거나 맥을 이어가는 전설이 되었다. 관광 중에 바닷가에서 이들을 만나면 ‘나 땅 까마귀’라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1960년대까지는 물질 잘하는 처녀가 최고의 신붓감이었다. 당시 해녀 수가 23,000명이 넘었는데 1986년 통계를 보면 6,627명으로 급감한다. 2022년도는 겨우 3,000명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전설이 될 것만 같다. 이는 교육 수준의 향상과 힘든 해녀 질을 전승시키지 않겠다는 해녀 어머니의 소망이고 결실이다.
- <퇴직 해녀의 연금수당>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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