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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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났다. 1975년 〈현대문학〉에 소설이 추천되어 처음에는 소설을 쓰다가 동화를 쓰고, 손녀를 보면서 동시도 쓰게 되었다.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한국기독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오랫동안 신문사에서 일했고, 지금은 잡지 〈시와 동화〉를 내고 있다. 아동문학 전문 계간지 〈시와 동화〉는 시와 동화를 사랑하는 모임인 동심원에서 여러 아동문학가들을 편집위원으로 하여 어린이는 물론 가족들이 함께 보는 잡지를 표방하여 출발했다. 이 책은 〈시와 동화〉 100호를 기념하여 그동안 잡지에 실렸던 글을 모아 기억해야 할 한국 아동문학가 100인의 대표 작품과 작가론, 작품론, 연보 등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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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용묵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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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다. 유년시절에 할아버지인 계창전 밑에서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대학≫, ≪논어≫, ≪맹자≫ 등의 한학을 배운다. 1914년 삼봉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뒤 1919년 졸업한 후 서당에서 공부를 지속한다. 1918년에는 안정옥과 결혼한다. 1921년 조부 몰래 상경해 중동학교에 입학한다. 이때 만난 김억을 통해 염상섭, 남궁벽, 김동인 등과 교유하며 문학에 뜻을 두게 된다. 하지만 조부가 신학문을 반대해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낙향하게 된다. 1922년 4월 다시 조부 몰래 상경해서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6월에 강제로 낙향하게 된다.
17∼18세에 이미 ≪조선일보≫에 논문, 감상문, 시 등을 발표하면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해, 선배들을 누르고 올라서겠다는 욕심에 5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문학 공부를 하게 된다. 이때 이광수가 주재한 ≪조선문단≫으로 ‘최서해, 한설야, 채만식, 임영채, 박화성’ 등이 당선되어 문단에서 대우를 받은 것에 고무된다. 그리하여 1925년 ≪조선문단≫ 제8호에 ‘자아청년(自我靑年)’이라는 필명으로 소설 <상환>을 발표하며 등단한다. 하지만 작품 평이 마음에 들지 않아, 1927년 <최 서방>을 통해 ≪조선문단≫에 재당선된다. 하지만 최서해에 의해 원고가 당선된 것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1928년 3월 일본 도쿄로 건너가 동양대학 동양학과에서 공부하고 야간에는 정칙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 1929년에는 장녀 정원이 출생한다. 1931년 집안이 파산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다. 1932년 차녀 도원이 출생한다. 1935년에는 정비석, 석인해, 전몽수, 김우철, 장기제, 장환, 채정근, 허윤석 등과 함께 동인지 ≪해조(海潮)≫의 발간을 협의했으나 무산되었다. 1938년 5월 조선일보 출판부에 입사했고, ≪매일신문≫에 친일 수필인 <일장기의 당당한 위풍>(1942)을 발표한다. 1943년 8월 일본 천황 불경죄로 구속되었다가 10월에 석방된다. 12월에 방송국에 다시 취직했지만, 일인과의 차별 대우로 사흘 만에 퇴직한다. 징용을 피해 출판 업무를 보다가 ≪조선 전설집≫을 편집해 수만 부를 판매한다.
시골로 낙향했다 해방 이후 상경해서, 1945년 정비석과 함께 종합지 ≪대조(大潮)≫를 창간한다. 1948년 4월에는 김억과 함께 ‘수선사(首善社)’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세운다. 또한 1951년 1·4 후퇴 당시 피난을 갔던 제주도에서 월간 ≪신문화≫를 창간해 3호까지 출간한다. 1954년 서울로 환도하고,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장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1986년 은관문화훈장을 추서받는다.
<최 서방>(1927), <인두지주>(1928), <백치 아다다>(1935), <별을 헨다>(1949) 등 40여 편에 이르는 과작의 소설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적 관점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등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연민이 드러난다. 대표작인 <백치 아다다>(1935)는 벙어리 여성 ‘아다다’의 삶과 죽음을 통해 물욕에 물든 사회의 불합리를 지적하면서, 불구적 조건과 물질적 탐욕으로 인해 비극적 인생을 마감해야 했던 수난당하는 여성상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통해 삶의 비애와 질곡을 담담하게 포착하면서, 물욕에 젖은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대한 회의와 질문을 던진 휴머니스트로 평가된다.
첫 창작집 ≪병풍에 그린 닭이≫(1943)를 일제 말기에 출간하면서 창작에 대한 욕심과 겸손을 강조하며 부끄러움과 반가움을 토로한다. 해방 후 출간하는 두 번째 단편집 ≪백치 아다다≫(1946)에서는 검열의 탄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임과 동시에 38선 이북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한다. 세 번째 창작집 ≪별을 헨다≫(1949)에서는 해방 이후 창작된 작품들만을 모아 묶어 내면서 작품 창작의 배경을 토로한다. 수필집으로 ≪상아탑≫(1955)이 있으며, 세계 명작 소개집인 ≪여자의 생태≫(1958)를 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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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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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1945년 귀국하여 전남 순천에서 성장했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고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생명연습」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같은 해 김치수, 김현, 최하림 등과 함께 동인지 『산문시대』를 발간하고 「건」 「환상수첩」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등의 단편소설들을 발표했다.
1964년 「역사」 「무진기행」 등을 발표하며 전후 세대를 넘어선 작가로 문단의 인정을 받았고, 1965년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새로운 감수성의 탄생을 알렸다. 1977년에는 단편소설 「서울의 달빛 0장」으로 “현대의 도시 문명 속에서 변질되어 가는 인간관계를 그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제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대학 재학 중 한국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서울경제신문에 만화 〈파고다 영감〉을 연재해 문학뿐만 아니라 그림에서도 탁월한 감각을 선보였고, 「무진기행」을 영화 〈안개〉로 각색하는 한편, 김동인의 「감자」를 각색·연출하고 이어령의 「장군의 수염」을 각색하여 대종상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문화 다방면에 걸쳐 시대를 앞서나가는 재능을 발휘했다.
1980년 장편 『먼지의 방』을 연재하다가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에 창작 의욕을 상실하고 절필했다. 1999년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나 2003년 오랜 친구인 소설가 이문구의 부고를 듣고 뇌졸중이 발병해 교수직을 사임했다. 2010년 순천에 ‘김승옥 문학관’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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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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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인천에서 태어났습니다. 1972년 인천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안성군에서 초등학교 교사, 서울시 목동청소년수련관・과천문인협회 등에서 글짓기 강사를 지냈습니다. 198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강마을 동이> 당선으로 등단하여, 동화집 ≪강마을 동이≫ ≪우리 반 피노키오≫ ≪도토리가 발밑에 떨어졌어요≫ ≪바위 거인≫ ≪겁쟁이 한울이≫ ≪초롱이의 뽀뽀≫ 등 많은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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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광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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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남부 초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40년 가까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역사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동안 쓴 동화가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영어, 스페인어로 번역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낸 책으로는 《친구가 생길 것 같아》, 《동남제도 수호검》, 《강치야, 독도 강치야》, 《물새처럼》, 《상괭이 우리 반쪽이》 등 40여 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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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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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약 40년간 아이와 어른을 위한 ‘좋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2회 계몽사 아동문학상을 받은 아동극 《도깨비 방망이는 어디에 있을까요?》부터 초등학생 필독서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동 서적 시리즈 중 하나인 《반갑다, 논리야》 시리즈, 그리고 100쇄 이상 찍은 베스트셀러 《아홉살 인생》 등 언제나 아이들 가까이에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글을, 때로는 어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글을 써 왔습니다. 동화부터 학습서, 소설까지 ‘위기철 작가의 글’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내며 지금까지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반갑다, 논리야》, 《논리야, 놀자》, 《고맙다, 논리야》, 《아홉살 인생》, 《무기 팔지 마세요!》, 《고슴도치》, 《껌》, 《철학은 내 친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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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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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안동교육대학을 나왔고, 1972년부터 2014년까지 42년 6개월을 대구와 경북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활동하며 ‘교육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더 많은 아이들과 더 재미있게 만날 날을 꿈꾸며 동화를 쓰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교실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쓴 동화 《신나는 교실》 《아이쿠나 호랑이》 《나뭇잎 교실》 《이상한 학교》 《입큰도사 손큰도사》 《똥 선생님》 《내가 내가 잘났어》 《초대받은 마술사》 《도마뱀과 도마뱀》 《똥 누고 학교 갈까, 학교 가서 똥 눌까?》 《똥 부자 오줌 부자》가 있고, 그림책 《하나가 된 사랑나무》 《채은이의 공》에 글을 썼습니다. 교실에서 실천한 사례를 기록한 《일기 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초등 1학년 교실 이야기》 《우리 아이들, 안녕한가요》와 1학년 아이들이 쓴 일기 모음집 《내가 처음 쓴 일기》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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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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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고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습니다. 한국아동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한국어린이도서상, 대한민국문학상 본상, 방정환문학상, 이주홍아동문학상, 어린이문화대상, 한국동화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많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인형이 가져 온 편지』, 『마음의 꽃다발』, 『지워지지 않는 일기』, 『바람을 파는 소년』, 『거꾸로 나라 임금님』, 『세 발 강아지』, 『밤에 온 눈사람』, 『별이 보이는 수수깡 안경』, 『가을 나비』, 『도깨비가 된 허수아비』 등 400여 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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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옥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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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함북 길주 출생.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일본 나라여자사범학교 졸업한 뒤 귀국하여 함흥영생여자고보, 원산 루씨여고보에서 교원으로 일하였다. 《문장》에 투고한 '봉선화'가 이태준에 의해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고영', '후처기'로 추천이 완료되었다. 해방 후 혜산진에 대오천가정여학교를 설립하고 농촌부녀계몽운동에 헌신하다가 1946년 4월 월남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건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대한민국 예술원상 문학공로상, 대한민국보관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크리스천 문학가협회 회장,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을 지냈다. <힘의 서정>, <일상의 모험> 등의 장편을 발표하였고, <후처기> 등의 창작집을 남겼다. 1995년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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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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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황해도 해주 출생
· 1946년 해주사범학교 2학년 때 월남
· 1950년 고려대 법학과 입학, 6·25전쟁 일어남
· 1957년 연세대 대학원 졸업(신학 석사)
·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 데뷔
· 1969년 소천아동문학상 수상(열두 개의 나무인형)
· 2007년 방정환문학상 수상(금순이와 백설공주)
· 2010년 박경종아동문학상 수상(뚱보 도깨비와 수퍼 쥐)
· 창작 동화집 23권, 소년소녀 소설집 9권 출판
· 배화여중·고 교목·감리교 교육국 간사
· 시청각 교육국 TV부장
· 1972년 미국 이민
· 1980년 뉴욕신학대학교 목회학 박사
· 뉴욕한인교회·남부뉴저지교회 등에서 목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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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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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11월 4일에 경북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에서 태어나 2003년 8월 25일 충북 충주시 신니면 무너미 마을에서 세상을 떠났다.
열아홉 살에 경북 부동공립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해 예순한 살이던 1986년 2월까지 마흔두 해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스물아홉 살이던 1954년에 이원수를 처음 만났고, 다음 해에 이원수가 펴내던 <소년세계>에 동시 ‘진달래’를 발표하며 아동문학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 뒤 이원수의 권유로 어린이문학 평론을 쓰게 된다. 1973년에는 권정생을 만나 평생 동무로 지냈다.
우리 어린이문학이 나아갈 길을 밝히기 위해 1977년에 어린이문학 평론집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펴냈다. 이 책에서 절대 자유의 창조적 정신을 발휘한 어린이문학 정신을 ‘시정신’, 그에 반하는 동심천사주의 어린이문학 창작 태도를 ‘유희정신’이라 했으며,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의 눈과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어린이문학의 ‘서민성’을 강조했다. 또한 모든 어린이문학인이 새로운 문명관과 자연관, 아동관에 서지 않고서는 진정한 어린이문학을 창조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어린이문학의 발전을 위해 작가들과 함께 어린이문학협의회를 만들었으며, 어린이도서연구회를 만드는 데도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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