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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문화/문화이론 > 문화사
· ISBN : 9788958623083
· 쪽수 : 361쪽
· 출판일 : 2010-04-12
책 소개
목차
옮긴이의 글
1장 시간의 탄생 시간을 처음 측정하다 /스튜어트 매크리디
2장 인간의 내적 리듬, 하루시계 하루가 24시간인 이유 /랠프 미슬버거
3장 선사시대 사람들의 시간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 /클라이브 러글스
4장 해, 달, 별의 움직임 365일의 의미 /로버트 한나
5장 고대의 다양한 시간 개념 색다른 달력들 /클라이브 러글스
6장 태양이 지배한 시간 해시계와 하루 /새러 셰크너
7장 하늘의 나침반 시계 없이 항해하는 법 /스튜어트 매크리디
8장 시간을 조각낸 시계공들 분과 초의 계산 /스튜어트 매크리디
9장 먼 시간으로의 여행 지구의 나이를 수정하다 /마이클 로버츠
10장 심리적 시간, 생체시계 1분이 한 시간 같은 순간 /존 웨어든
11장 시간에 관한 수수께끼 3천 년 동안 철학자들을 난감하게 만든 질문들 /로빈 르 푸아드뱅
필자 소개
용어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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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기계식 시계가 출현하면서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 일어난 즉각적인 변화는 하루를 측정하는 방식이 균등한 24시간으로 고정된 것이었다. 일부 공중시계(public clock,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리는 시계의 일반적 명칭: 옮긴이)는 330년 무렵부터 24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한 도시에 시계가 여러 개이고 작동 방식도 각기 다르다면 혼란을 빚을 수 있었으므로 1370년에 파리에서는 시의 시계 종소리를 모두 24시간으로 통일시키라는 왕명을 내리기도 했다.
시간을 균등화하게 된 원인은 새 기계식 시계가 해시계보다 더 정밀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물시계와 마찬가지로 추를 이용한 시계도 자주 시각을 조정해주어야 했다. …… 시간 균등화의 진정한 원인은 상업의 발달에 있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섬유 제조업자가 노동자들을 일당으로 고용할 경우, 낮이 짧은 겨울에는 임금이 오르고 생산량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했다. 1330년대부터 산업계는 노동자들을 시간(60분) 단위로 고용하기 시작했고, 시간을 알리기 위해 종루도 건설되었다. 그 덕분에 노동자들은 일출이나 일몰을 시간 신호로 삼지 않아도 되었다.
도시 생활에서는 수도원에서 종이 울리는 기도 시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또한 계절마다 달라지는 해시계의 시간이 처음으로 사라졌다. 도시는 상업과 제조업으로 점점 부유해져서 시계탑과 같은 웅장한 공공건물을 세울 수 있을 만큼 재정이 풍부했다. 실제로 시계탑의 건설비를 제공한 사람들은 시간을 새롭게 평가하게 된 상인들과 제조업자들이었다. 그들은 시간을 일관적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된 데 만족했다.…… 이제 유럽 대부분 지역의 도시 주민들은 종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문자반을 보고 방금 들은 종소리가 몇 시를 가리키는지, 다음 시간이 되려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시골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이 시계에 맞춰 살아가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기 시작했다.
…… 이 무렵이면 일반 사람들도 상당히 정밀한 용수철식 휴대용 시계를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었으며, 그에 따라 일상생활은 점점 더 동시성의 세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영국 우편마차의 호위병들은 우편마차가 일정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780년대에 각자 시계를 지급받았다. 이 시계는 우편마차가 동쪽으로 가느냐, 서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조금씩 빠르거나 늦게 조정되었다. 이런 식으로 우편마차의 시간은 늘 현지 시각과 동시성을 유지했다. 1844년에는 직원의 도착 시간과 출발 시간을 기록하는 시계에 처음으로 면허가 부여되었다. 프랑스의 장교들은 1855년 크림 전쟁에서 말라코프를 공격하기 전에 역사상 최초로 서로 시계를 맞춘 다음 전투를 개시했다.
…… 미국과 캐나다의 철도회사들은 대륙을 횡단하면서 곧 시간대를 식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전세계의 산업국가들은 1884년 워싱턴 D.C.에 모여 본초 자오선 회의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GMT가 세계 표준시로 확정되었고, 지구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여러 시간대로 나누어졌다. 이로 인해 처음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나 시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해양시계는 사용된 지 100년도 채 되기 전에 용도 폐기되었다. 미국 해군천문대가 1905년부터 매일 시보를 방송하기 시작한 것이다. 궤도 위성들의 통신망을 이용하는 오늘날의 위성항법장치(GPS)는 지구상의 어느 대상이든 그 경도와 위도를 초의 단위까지 정확히 찾아낼 수 있다. 1980년대에는 무선으로 통제되는 손목시계가 출시되었는데, 소형 배터리로 동력을 공급받는 이 시계는 수정 결정의 진동에 의해 장치가 작동하고 무선신호를 받아 시간 조정을 한다. ……과학은 늘 정밀성을 추구해왔다. 지구의 자전은 한 세기당 0.0015초가량 늦어지는 변동이 있기 때문에 1955년에는 지구 자전을 과학적 표준으로 대체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표준으로 탄생한 역표시(曆表時, Ephemeris Time)는 1년의 길이를 기준으로 했다. 그러나 이것은 1967년에 천문 관측과 무관하고 1만 년에 1초밖에 틀리지 않는 세슘이온 원자시계로 바뀌었다. 현재 세계 표준시는 파리의 국제시간국이 24개국에 있는 여덟 개의 원자시계에서 나온 시간 신호를 평균화한 협정세계시(Coordinated Universal Time)다. 하지만 만족을 모르는 과학자들은 21세기 초에 들어서도, 우주의 나이에 맞먹는 100억 년에 1초의 오차밖에 나지 않는 ‘이온 트랩(ion trap)’ 시계를 개발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그의 저작은 생물학, 천문학, 물리학, 음악, 미술, 철학 등 대단히 광범위하다(하지만 그의 저작에는 우리가 지금 ‘철학’과 ‘과학’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명확한 구분이 없다). 다방면에 걸친 그의 사상, 그 중에서도 특히 물리학과 천문학은 16세기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가 살았던 시기에는 그의 영향력이 더욱 컸다. 그는 기원전 384년 그리스 북부의 스타기라에서 태어났다. 367년에서 347년까지 그는 아카데메이아라는 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이는 오늘날의 대학과 비슷하지만 규모는 훨씬 작은 학교였다. 당시 아카데메이아는 그리스 철학의 또 다른 태두인 플라톤이 이끌고 있었다. 342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의 초청을 받아 후일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되는 알렉산드로스 왕자의 스승이 되었다. 아테네에 돌아온 뒤 그는 한동안 자신의 아카데미이아를 운영했는데, 이 시기 그의 저작들은 대부분 강의록이지만 단순한 초고라기보다는 훨씬 상세하고 세련된 저술이었다. 특히 시간의 본질에 관한 그의 견해는 대단히 발달한 것이었으며, 당시의 논의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그는 시간의 무한한 분할 가능성이라는 관념을 정립했고, 제논의 역설(‘화살’을 포함한다)에서 전제가 의문시된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그 역설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가 제기하고 해결하려 했던 한 가지 문제는 운동(혹은 변화나 존재)을 시작하는 모든 사물에 새로운 상태의 첫 순간과 예전 상태의 마지막 순간이 있느냐는 것이었다(우리는 이 문제를 ‘열차는 언제 떠날까?’에서 다루었다). 그는 또한 여러 가지 논거를 들어 세계에 시작이 있다는 생각을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