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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티베트 불교 > 달라이 라마
· ISBN : 9788958830573
· 쪽수 : 456쪽
· 출판일 : 2008-05-15
책 소개
목차
서문 / 머리말
제1부 눈사자의 무대
부다가야의 묀람 대기도회 / 신화와 역사
제2부 달라이 라마라는 한 티베트 승려의 초상
하나의 생, 여러 생 / 다시 찾은 라싸 / 달라이 라마의 하루 / 한 승려의 웃음
고귀한 고독 / 사자좌에 앉은 흰 연꽃의 주 / 세계를 누비며
제3부 삼세와 시방
샴발라 가는 길 / 시간의 완성
옮긴이의 말 / 부록 :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인용문 출처, 참고 문헌
리뷰
책속에서
내게는 현대세계의 전반적 분위기가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에 대해 전반적인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반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외적 압력이나 적대적 상황을 구실로 잘못된 길을 채택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 그것은 확실히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태도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런 태도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는 새 세대에게 커다란 희망을 갖고 있어요. 모든 사람의 목표인 행복을 추구할 때, 그 방법은 대단히 많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선호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신앙생활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고 어떤 정부체제나 이데올로기의 기치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길을 찾고 있으며, 날마다 더 작아지고 있고 우리가 서로에게 갈수록 더 의존하고 있는 우리 세계에서는 보편적 의무감을 향상시키는 것이 몹시 중요해 보입니다.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강한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모든 영적 가치는 진정한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이 분야에서 수행할 큰 역할이 있으며, 맡게 될 특별한 임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평화는 모든 개인의 내적 평화를 거쳐서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샴발라 가는 길> 중에서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바랍니다. 큰 도회에서, 나라의 심장부에서, 외진 마을에서,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무슨 목적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을 성취하려고 애쓰는 것이며, 그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행복을 추구하면서 올바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피상적 수준에 지나치게 열중해서는 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위기와 공포가 우리 주변 도처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을 통해 고도의 물질적 진보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은 필요한 만큼 유용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적 진보를 외적 진보와 비교해보면, 전자가 부족하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여러 나라에서 살인, 암살, 테러 등 위기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도덕의 쇠퇴와 범죄의 증가에 대해 불평합니다. 우리는 물질 영역에서 큰 진보를 이루었고 계속 진보하고 있지만, 내적 발전의 견지에서도 진보를 이룩하는 것은 똑같이 중요합니다.
고대에는 전쟁이 벌어지면 그 영향(파괴의 양)이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바로 그 물질적 진보 때문에 그 영향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나는 히로시마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어난 핵폭발에 대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든, 그것은 그곳에 가서 눈으로 직접 보고 그 괴로움을 이기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무기입니다. 비록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더라도, 더 깊은 수준에서는 적도 인간입니다. 그 역시 행복을 바라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습니다. 히로시마를 보고 그 순간의 그 도시가 어떠했을지를 깊이 생각함으로써 나는 분노와 증오는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훨씬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 <고귀한 고독> 중에서
중국의 국부國父 쑨원孫文이 티베트와 몽골과 만주를 외국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오쩌둥도 1930년대에 아직 권력을 잡지 못하고 한창 싸우고 있을 때는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했습니다. 몇 년 뒤 1954년에 내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마오쩌둥은 내게 우리가 가난하고 후진적인 동안은 중국이 우리를 돕겠지만 그뒤에는 우리가 중국을 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인들은 제국주의자나 식민주의자로 티베트에 간 것이 아니라 ‘해방자’로 갔다고 선전합니다. 한 국민의 권리를, 그들의 운명을 그들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 무슨 해방입니까?
중국의 지배 하에 티베트 인민이 겪은 막대한 물질적 손해는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수세기에 걸쳐 우리의 5천 승원에 축적된 부가 약탈당하고, 중국으로 빼돌려졌습니다.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로 쓰인 귀중한 필사본들이 돌이킬 수 없이 유실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현재 중국인들은 뻔뻔하게도 자기들이 지난 30년 동안 티베트의 발전을 위해 3백억을 썼다고 주장합니다. 자기들이 30만 명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1백70만에 가까운 관리들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왜 말하지 않을까요?
정말로 그들이 떠날 시간이 오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돌아가서 자기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것은 티베트인들은 물론 자신들에게도 가치 있는 결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고, 우리 문화와 우리 기준에 의해 살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민족은 그럴 권리가 있으며, 어떤 민족도 다른 민족을 식민화할 권리는 없습니다.
― <시간의 완성>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