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한국전쟁 이후~현재
· ISBN : 9788959068067
· 쪽수 : 388쪽
· 출판일 : 2025-08-18
책 소개
목차
머리말 : 소름 돋게 닮은 해방정국과 지금
“지금의 대한민국은 해방 직후보다 더 위험하다” · 4 “그날이 오면” · 6 과연 이데올로기 투쟁이었는가? · 8 ‘기득권 투쟁’과 ‘면죄부 투쟁’ · 10 이데올로기라는 포장술 · 13 아직 진실의 값은 싸다· 15 진정한 ‘낙관과 긍정’을 위해 · 17
제1부 1945년: 36년 묵은 한의 분출
제1장 도둑같이 찾아온 8·15 해방
거짓말같이 오고 만 해방 · 31 해방의 감격과 환희 · 33 대폭발을 위해 걸린 4~5시간 · 35 ‘해방의 날’이 아닌 ‘분단의 날’이었는가? · 36 조선총독부와 여운형의 교섭 · 38 건국준비위원회의 발족 · 41 “해방은 16일 하루뿐이었다” · 43 송진우의 건준 불참 이유 · 45
제2장 38선은 정말 30분 만에 그어졌는가?
카이로 회담과 테헤란 회담 · 47 미·영·소 3국 정상의 얄타 회담 · 50 미국은 얄타에서 한국을 소련에 팔아넘겼는가? · 52 루스벨트에서 트루먼으로 · 54 일본 분단의 대용품이 된 한국 · 57 “행복은 당신들의 수중에 있다” · 59 소련군에 대한 경계심과 경멸 · 62 소련군의 강간과 약탈 · 63
역사 산책 1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 · 67
제3장 조선인민공화국 선포, 미군의 서울 진주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재건 · 69 안재홍이 떠난 건준의 좌경화 · 71 공산당의 좌경 헤게모니 의식 · 72 미군의 ‘친(親)일본, 반(反)조선’ 자세 · 74 내려진 일장기 자리엔 성조기 게양 · 76 점령군 사령관 존 하지 · 78 ‘준비 부족론’ 논쟁 · 80 미군의 한국인 모욕 · 82 미군의 옷을 갈아입은 일제 통치 · 83 미군의 인종차별주의 · 85 DDT의 무차별 살포 · 87
제4장 한국민주당 창당과 ‘통역 정치’
“인공을 타도하라” · 90 “점화하면 즉각 폭발할 화약통” · 91 한국민주당의 창당 · 92 한민당=『동아일보』 · 94 한민당의 군정 행정고문 독식 · 95 ‘통역 정치’의 폐해 · 96 미군정의 인공 부인 · 98 미군정의 목표는 ‘인공 분쇄’ · 99 정치에 대한 굶주림 · 101 조병옥과 장택상의 경찰 장악 · 103 조병옥이 일제 경찰을 등용한 이유 · 104 ‘능률적인 폭정의 도구’ · 106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 · 107 ‘수사=고문’이라는 관행 · 108
역사 산책 2 ‘적산’과 90만 일본인의 귀환 · 110
제5장 가짜 김일성의 등장 논란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설치 · 113 33세 청년 김일성의 등장 · 115 과연 김일성은 가짜였는가? · 117 하지의 이승만 환대 · 119 이승만의 인기와 정치자금 · 122 독립촉성중앙협의회의 조직 · 124 이승만의 공산당 공격 · 125 자주관리운동과 전평의 결성 · 127 미군정의 자주관리운동 금지령 · 129 여운형의 조선인민당 창당 · 130 임시정부 추대 논란 · 131
제6장 김구의 귀국, 임시정부의 분열
충칭 임시정부의 개인 자격 귀국 · 133 김구는 ‘스튜에 필요한 소금’ · 136 임정의 인공과 조공 거부 · 140 임정과 한민당의 관계 · 142 임정의 내분, 장준하의 ‘말 폭탄’ · 145 ‘임정=한독당=김구’ 전략 · 147 민생을 외면한 보상 욕구 · 149 ‘신의주 사건’과 김일성의 ‘민주 기지론’ · 150
제7장 ‘신탁통치’ 갈등과 투쟁
미군정의 공적이 된 인공 · 153 수면 위로 떠오른 신탁통치 논란 · 154 모스크바 결정의 왜곡 · 155 언론의 비분강개형 선동 · 157 “탁치 순종자는 반역자로 처단한다” · 159 임시정부파와 한민당파의 방법론 격돌 · 161 한민당 수석 총무 송진우 암살 · 162 실패한 임정 쿠데타 계획 · 164 75년간 지속된 ‘왜곡’ 보도 논란 · 166
역사 산책 3 영어는 최대의 생존 무기 · 168
제8장 “언론의 둑은 터졌다”
“뉴스에 굶주려 종이에 빨려들어가다” · 171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속간 · 173 노골적 정파성과 신문 테러 · 176 신문의 좌익 우세 · 177 방송과 미군정 홍보 · 179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 182 한글에 대한 갈증과 ‘38선의 밀수품’ · 184 6-3-3-4 학제의 도입 · 185 미군의 교육 시설 점유 · 186
제9장 ‘문화의 둑’도 터졌다
미군의 댄스파티와 ‘춤바람’ 문화 · 188 “서울 거리를 더럽히는 국치랑”? · 191 “이 땅의 사나이 목메어 운다” · 193 인구 폭발과 물가 폭등 · 195 일본인의 화폐 남발 · 196 남한 경제의 기형적인 구조 · 198 경제를 외면한 정치의 과잉 · 199
역사 산책 4 해방정국의 여성운동 · 202
제2부 1946년 : 좌우 갈등의 폭발
제1장 ‘신탁통치’ 갈등은 전쟁이었다
‘민족을 배신한 완전 반역행위’ · 207 박헌영 발언 파동 · 210 한민당·국민당·공산당·조선인민당 4당 합의 · 212 좌우 학생 충돌 · 214 소련의 ‘언론 왜곡 보도’에 대한 반격 · 217 ‘찬탁=매국, 반탁=애국’ · 218
제2장 국방경비대 창설, 자유시장제의 파탄
조선국군준비대의 해산 · 221 군사영어학교의 개설 · 223 국방경비대는 경찰예비대? · 224 미군정의 자유시장제의 파탄 · 225 소작농에 대한 가혹한 대응 · 227 ‘쌀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 229
제3장 민주의원과 민주주의민족전선 출범
굿펠로와 이승만의 ‘재치 있는 공작’ · 232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마라” · 235 민주주의민족전선의 결성 · 236 좌우익 따로 치른 3·1절 기념행사 · 237
제4장 김일성 암살 미수, 미소공동위원회
임정의 김일성 암살 미수 · 239 토지개혁과 공산당 강화 · 241 미소공동위원회를 앞둔 반소반공 선전 · 243 미소공동위원회의 실패 · 245 소련군의 약탈과 강간? · 247 “여러분도 나와 같이 싸움꾼이 됩시다” · 248
역사 산책 5 마지막 경평전 축구 · 251
제5장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과 좌익의 ‘지하화’
미군방첩대의 ‘인천 공작’ · 253 조선공산당은 위조지폐 1,200만 원을 찍었는가? · 254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은 ‘정치적 사건’인가? · 256 신문 발행 허가제로 좌익 언론 통제 · 258
제6장 김규식·여운형의 좌우합작운동, 이승만의 단정론
김규식의 ‘좌익 기피증’ · 259 김규식 설득에 나선 이승만 · 261 버치의 여운형 설득 공작 · 262 이승만의 정읍 발언 · 264 이승만과 미군정의 갈등 · 266 김구의 개인적 의리 때문인가? · 268
역사 산책 6 종이가 없어 신문이 휴간하다 · 271
제7장 우익 청년단체의 전성시대
대한민주청년동맹, 김두한, 염동진 · 273 일제가 뿌린 테러의 씨앗 · 275 전국학생총연맹과 이철승 · 276 서북청년회와 선우기성 · 277 선우휘의 서청 옹호론 · 279 조선민족청년단과 이범석 · 280 정치지도자들과 우익 청년단체의 유착 · 282 왜 경찰서엔 이승만 사진이 나붙었는가? · 284
제8장 ‘국립서울종합대학안’ 파동과 ‘교육출세론’ 확산
교육 영역의 정치화 · 286 국대안에 대한 반대 논리 · 288 김두한의 ‘국대안 살리기’ 조작 음모 · 290 서청 대원 3,600명의 학교 유입 · 292 ‘교육이 출세의 지름길’ · 294
역사 산책 7 재생 종이에 고춧가루가 박혀 있는 이유 · 297
제9장 좌우 합작, 전평의 총파업, 대구 항쟁
북조선노동당 창당 · 299 박헌영의 좌우 합작 반대 · 301 좌측 5원칙과 우측 8원칙 · 302 남조선노동당 창당 합의 · 304 “쌀이 없으면 고기를 먹어라” · 305 “파업 진압은 전쟁이었다” · 307 “김두한 동지! 당신이 나라를 구했소” · 308 ‘대한노총은 테러리스트 조직’ · 310 ‘해방의 선물은 기근’ · 311 대구에 분 피바람 · 313 ‘내쟁에만 용감한 백성’ · 316 농민의 보수화 시작 · 318
역사 산책 8 신불출의 ‘태극기 모독’과 ‘똘똘이의 모험’ · 320
제10장 과도입법의원, 여운형·김규식의 좌절, 이승만의 방미
좌우 합작 7원칙 · 323 경찰 개혁의 무산 · 324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선거 · 326 좌파와 중도좌파가 빠진 입법의원 · 328 남조선노동당 창당 · 329 ‘공산당’에서 ‘노동당’으로 간판 바꾸기 · 331 “좌우는 싸움으로 세월을 허비하고 있다” · 332 이승만과 하지의 동상이몽 · 335 이승만의 여행 경비 징수 파동 · 337 ‘하지는 공산주의자의 도구’ · 338
역사 산책 9 악극의 인기와 흥행 모리배들의 횡포 · 340
주 · 343
저자소개
책속에서
1945년 8월 15일 아침 서울 시내 각처에는 ‘금일 정오 중대 방송, 1억 국민 필청(必聽)’이라는 벽보가 나붙었다. 정오,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고하는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떨리는 목소리는 경성중앙방송국의 중계로 라디오를 통해 4분 10초 간 국내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히로히토는 ‘항복’이란 말은 쓰지 않았지만,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소·중 4국에 대하여 그 공동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케 했다”는 말이 곧 항복 선언이었다. 일본에서는 전날부터 항복 선언이 담긴 일왕의 녹음판을 빼앗으려고 난동을 부렸던 결사항전파와 극우파들의 할복 자살이 잇따랐다. 육군대장 아나미 고레치카(阿南惟幾, 1887~1945)는 이미 새벽에 배를 가르고 죽어 있었으며, 대장 5명이 할복하고 장교 100명 이상, 민간인 30여 명이 패전(敗戰) 자살의 길로 뛰어들었다. 「제1부 제1장 도둑같이 찾아온 8·15 해방」
1945년 9월 16일, 이미 미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한민당이 천도교 강당에서 1,600여 명의 발기인이 참석한 가운데 창당 대회를 열었다. 창당 대회가 열리던 대회장 밖에서는 농민들이 곡괭이와 삽을 든 채 “땅마지기나 가진 것들이 대대로 착취하더니 오늘 또 당을 만든다고 하니 말도 안 된다”고 분개했다고 한다. 한민당은 창당 선언을 통해 충칭 임시정부를 ‘정식 정부’로 맞이할 것을 다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김재명은 “뾰족이 내세울 만한 항일 경력의 인물이 없는 한민당으로서는 좌익이 기세를 올리고 ‘친일파 숙청’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와 임시정부를 연결시킬 필요를 느끼는 것이 자연스런 요구였다”고 말한다. 한민당도 인공처럼 당사자의 허락도 없이 임시정부 간부와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영수로 추대했다. 이승만, 서재필, 김구, 이시영, 문창범, 권동진, 오세창 등이 그들이다. 5인은 아직 해외에 있었고 국내에 있던 권동진과 오세창은 영수직을 수락하지 않았다. 「제1부 제4장 한국민주당 창당과 ‘통역 정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속간을 전후로 여러 신문이 창간되었다. 1945년 11월 25일엔 이종형(李鍾滎)을 중심으로 한 『대동신문』이 창간되었고, 1946년 2월 26일엔 안재홍을 중심으로 한 『한성일보』, 3월 25일엔 『현대일보』, 4월 19일엔 『중외신보』, 5월 1일엔 『독립신보』가 창간되었다. ‘찬·반탁’을 둘러싸고 극도로 혼란한 정치 상황에서 신문들이 노골적인 정파성을 드러냄에 따라 폭력 사태가 자주 발생했다. 이 당시엔 무슨 시위만 했다 하면 주로 신문사들이 테러의 대상이 되었다. 1945년 12월 31일 우익 청년들은 『조선인민보』 사옥을 습격해 공무국원 20여 명을 구타했으며, 1946년 1월 2일엔 『조선인민보』 사옥에 수류탄을 던져 시설 일부를 파괴했다. 『조선인민보』는 1월 20일자로 신문을 다시 내면서 「무지한 백색 테로에 너털우슴: 한야폐허(寒夜廢墟) 속에 윤전기는 돈다」는 제목으로 사건의 전말을 보도했다. 「제1부 제8장 “언론의 둑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