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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1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한국전쟁 이후~현재
· ISBN : 9788959068296
· 쪽수 : 428쪽
· 출판일 : 2026-04-17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한국전쟁 이후~현재
· ISBN : 9788959068296
· 쪽수 : 428쪽
· 출판일 : 2026-04-17
책 소개
우리가 살아왔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현대사는 역사의 출발점이자 결승점이다. 끊임없는 선택 속에 지금 내가 살아가야 하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독보적이다. 지...
우리가 살아왔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현대사는 역사의 출발점이자 결승점이다. 끊임없는 선택 속에 지금 내가 살아가야 하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사는 역사학계에서 찬밥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민감한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논란이 되는 부분은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면서도 그 나름의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참여의 마당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독보적이다. 지금의 ‘나’를 이룬,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한국인의 ‘보물창고’와 같다.
1945년 8월 15일 정오부터 봉준호의 <기생충>까지 75년의 역사를 촘촘히 담아낸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정치·경제·사회는 물론 대중문화·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현대 한국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삶과 역사의 무대를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이를 위해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방대한 주석에 당시의 현장을 포착한 사진, ‘역사 산책’ 코너 등을 통해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전태일과 경부고속도로』 개정증보판은 모두 3권으로 구성되었다. 제1권은 1970~1972년, 제2권은 1973~1975년, 제3권은 1976~1979년의 역사를 담아냈다. 강준만은 한국처럼 현대사가 끊임없이 다시 쓰거나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큰 나라는 없을 것이며, 한국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 나라들의 비밀문서가 해제되고, 비극적인 과거에 대한 진상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배상과 보상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24년 전에 출간된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의 개정증보판을 펴낸다고 말한다.
1945년 8월 15일 정오부터 봉준호의 <기생충>까지 75년의 역사를 촘촘히 담아낸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정치·경제·사회는 물론 대중문화·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그리고 현대 한국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삶과 역사의 무대를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이를 위해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는 방대한 주석에 당시의 현장을 포착한 사진, ‘역사 산책’ 코너 등을 통해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전태일과 경부고속도로』 개정증보판은 모두 3권으로 구성되었다. 제1권은 1970~1972년, 제2권은 1973~1975년, 제3권은 1976~1979년의 역사를 담아냈다. 강준만은 한국처럼 현대사가 끊임없이 다시 쓰거나 수정하거나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큰 나라는 없을 것이며, 한국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 나라들의 비밀문서가 해제되고, 비극적인 과거에 대한 진상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배상과 보상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24년 전에 출간된 『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의 개정증보판을 펴낸다고 말한다.
목차
머리말 : 1970년대의 두 얼굴
‘한강의 기적’의 이면에 숨은 인권유린 · 5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가 “민주화에 기여했다”? · 7 양자택일의 문제일까? · 9
제1부 1970년 : 도시에 빨려 들어가는 농촌
제1장 수출의 국가 종교화
‘조국 근대화’를 종교로 삼은 박정희 · 27 ‘군사적 성장주의’와 ‘수출의 전쟁화’ · 29 수출은 전쟁이되 성전이었다 · 31 수출 ‘10억 달러’ 고지 점령 · 32 수출 군사작전의 양면성 · 35
제2장 닉슨 독트린과 대미 외교
리처드 닉슨과 샤를 드골 · 37 박정희의 리처드 닉슨 푸대접 · 38 박정희가 닉슨에게 당한 굴욕 · 39 1970년대의 한국을 지배한 주한미군 문제 · 42
제3장 경부고속도로 개통
‘민족사적 금자탑’을 세운 박정희의 ‘원맨쇼’ · 44 가장 싸고 빠른 군사작전식 건설 · 46 77명의 생명이 바쳐진 경부고속도로 · 48 ‘자동차 시대’와 ‘고속도로의 문학’ · 50 고속도로가 농촌에 미친 영향 · 52
역사 산책 1 고층빌딩은 ‘조국 근대화’의 상징 · 56
제4장 경부고속도로와 지역 갈등
지역균형발전을 외면한 경부고속도로 · 59 투표 성향으로 나타난 소외감 · 61 공약이 된 호남선 복선화 · 63 호남인의 호남 탈출 · 65 ‘시장 논리’로 정착된 호남 차별 · 66
제5장 북한에 ‘경제 경쟁’을 제안한 8·15 선언
‘함정 피랍 사건’과 ‘현충문 폭발 사건’ · 69 ‘자력 방위’를 위한 방위산업 육성 · 70 북한 존재를 인정한 8·15 선언 · 71
제6장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김영삼·김대중·이철승 ‘40대 기수들’의 도전 · 74 김영삼의 자만, 김대중의 승리 · 76 박정희를 섬기는 ‘박정희교 신도’의 등장 · 78
제7장 평가교수단과 대통령 특별보좌관 제도
지식인을 경멸한 박정희의 지식인관 · 80 박정희의 지식인 이용 · 82 평가교수단이 누린 특혜 · 83 대통령 특별보좌관 제도의 발족 · 84 박종홍의 박정희 체제 옹호 · 86 함병춘의 군사정권 옹호 · 88 학계에서 존경을 누린 박종홍의 영향력 · 90
제8장 정인숙 살해 사건과 ‘요정 정치’의 천태만상
정인숙의 수첩에서 나온 33장의 명함 · 92 박정희인가, 정일권인가? · 94 국회 대정부 질문 · 95 아직도 진실을 밝힐 때가 아니다? · 97 ‘정성일의 아버지’ 미스터리 · 98 박정희의 놀라운 엽색 행각 · 100 부정부패를 심화시킨 ‘요정 공화국’ · 102 밤낮 구분이 없는 박정희 정권 실세들의 엽색 행각 · 103
제9장 33명이 죽은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인 아파트 건설 · 106 33명의 생명을 앗아간 아파트 붕괴 사고 · 108 부실, 싸구려, 날림공사 · 110 선거 때만 멈춘 판자촌 철거 · 111
제10장 시인 김지하의 ‘오적’
다섯 도둑의 부패상을 풍자한 담시 · 113 부정부패 고발도 반공법 위반 · 114 『사상계』 폐간, 『씨ᄋᆞᆯ의소리』 창간 · 116 정부 고관들이 사는 ‘도둑 마을’ · 118 무엇을 위한 5·16이었는가? · 119 독재와 부정부패는 동전의 양면 · 121
역사 산책 2 일일연속극 <아씨>의 인기 · 124
제11장 청년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 127 왜 전태일이 만든 모임은 ‘바보회’였을까? · 128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참상 · 130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 132 양심을 강타당한 대학생과 지식인 · 134 학생 시위와 기독교인들의 참회 · 135 ‘경부고속도로’와 ‘닭장집’ · 136
역사 산책 3 ‘우리들의 어머니’가 된 이소선 · 139
제2부 1971년 : 박정희 1인 체제의 완성
제1장 ‘언론화형식’과 ‘언론자유수호선언’
이희호와 팻 닉슨의 사진 촬영 논란 · 143 월간지 『다리』 탄압 사건 · 144 편집국장 옆에 앉은 중앙정보부원 · 146 “정상배로 전락한 신문 경영자” · 148 기자들의 ‘언론자유수호선언’ · 149 교련 철폐와 공명선거 운동 · 151
제2장 서승·서준식 형제 ‘간첩’ 조작 사건
보안사가 연출한 반공 드라마 · 153 서승이 당한 잔인한 고문 · 154 선거를 엎기 위한 음모극 · 157
제3장 제7대 대통령 선거
‘김대중 바람’ 대 색깔론 · 159 박정희의 대선 자금은 국가예산의 10% · 162 중앙정보부의 투표 결과 조작 · 164 “이번이 마지막 출마”라는 거짓말 · 165
제4장 4·27 대선과 지역 갈등
“신라 임금을 뽑자”는 선동 · 167 ‘피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선동 · 169 “럭키치약을 사지 말자”는 공작 선동 · 170 박정희의 호남 차별 인사정책 · 172
제5장 제8대 국회의원 선거와 ‘진산 파동’
신민당 당원들의 습격을 받은 유진산 · 174 신민당의 ‘실질적인 대승’ · 175 언론의 김대중 보도 통제 · 177
제6장 사법부 파동과 사법부 탄압 공작
판사들의 자체 정화운동 · 179 박정희 정권의 사법부 탄압 공작 · 180 박정희 정권의 재판권 침해 사례 · 182 박정희 정권의 하부기관으로 종속된 사법부 · 183
제7장 그린벨트와 산림녹화
수도권 인구 억제를 위한 그린벨트 · 186 한국은 20세기의 대표적 녹화 사업 성공 국가 · 187 아무런 대책 없이 철거당한 판자촌 · 189
제8장 광주대단지 폭동 사건
쓰레기처럼 내버려진 사람들 · 191 주민 희망을 유린한 서울시의 배신과 오만 · 194 굶어죽을 정도로 굶주린 사람들 · 196 끝나지 않은 판자촌 빈민 문제 · 198
제9장 실미도 사건의 비극
서울 시내 한복판에 출현한 무장공비? · 200 김일성 암살을 위해 만든 특수부대 · 202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은 특수부대원들 · 204 단지 ‘후진적 인력 관리’의 문제였는가? · 205 동료들에게 맞아 죽은 탈영자 · 206 실미도 부대는 ‘홧김에 만든 부대’ · 207
제10장 공화당 ‘4인 체제’의 몰락
박정희의 ‘소름 끼칠 듯한 무서운 눈매’ · 210 김성곤은 박정희의 정치자금 창구 · 211 내무부 장관 오치성 해임건의안 가결 · 212 공화당 의원들에게 가해진 가혹한 고문 · 215 공화당과 의회정치의 사망 · 216 박정희의 냉혹한 인간관 · 217
제11장 ‘10·15 위수령’과 ‘12·6 국가비상사태’
수경사 병력 고려대 난입 사건 · 221 서울 8개 대학에 무기휴업령을 내린 10·15 위수령 · 222 전 서울대생 4명의 ‘내란예비음모’ 사건 · 224 헌법적 근거가 없는 12·6 국가비상사태 · 224
제12장 프레스카드제와 MBC <뉴스데스크>
민심에 편승한 언론통제 · 226 박정희 정권의 프레스카드제 악용 · 229 신문 산업의 경영 합리화 · 230 앵커가 진행하는 MBC <뉴스데스크> 탄생 · 231 재벌과 박정희 측근에게 넘어간 MBC · 234 MBC 분양 비리와 부작용 · 236 MBC 분양이 보여준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 · 237 범여권계 매체 계열화 · 238
제13장 포크 음악, 라디오 DJ, 미팅
김민기와 양희은의 <아침이슬> · 241 라디오 DJ 프로그램과 음악다방 · 242 교회 갱신 운동에 이용된 포크 음악 · 245 대학생들의 미팅 문화 · 247
역사 산책 4 인스턴트 커피가 변화시킨 다방 문화 · 249
제3부 1972년 : 박정희 영구집권 체제의 완성
제1장 리처드 닉슨의 중공 방문과 남북대화
중공에 초청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 · 255 브레턴우즈 체제의 폐기 · 258 김일성의 남북대화 제의 · 260 닉슨의 중공·소련 방문 · 261 닉슨의 중공 방문이 한반도에 미친 영향 · 263 역사적인 울산 현대조선소 기공식 · 264 기상천외한 ‘정주영 공법’ · 266
제2장 통일 열기를 만들어낸 ‘7·4 남북공동성명’
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을 만나다니! · 269 박정희의 정치적 필요 · 270 남한도 북한에 배울 게 있다 · 273 서두른 30여 명 사상범 사형 집행 · 273 남북적십자회담은 열렸지만 · 274
제3장 사채를 동결한 8·3 긴급경제조치
기업을 위한 사채 동결 · 278 8·3 긴급경제조치로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 · 280 정경유착과 재벌 중심 경제 · 282
제4장 박정희의 ‘10월 유신’ 선포
대통령 종신제를 위하여 · 285 북한도 두려워한 국제 정세 변화 · 287 사쿠라만 활짝 핀 신민당 · 289 ‘악질’ 의원들에게 가해진 고문 · 290 “내가 인간의 세상에 살고 있는가” · 291
제5장 ‘10월 유신’ 국민투표와 ‘체육관 선거’
91.5% 찬성, 강요된 부정선거 · 293 입법부와 사법부의 무력화 · 294 99.99% 지지가 나온 ‘체육관 선거’ · 295 ‘박정희는 유신, 김일성은 유일’ · 297 김일성의 1인 지배체제와 세습 강화 · 299 남북한의 ‘내통 가능성’을 부정한 김종필 · 301
제6장 ‘10월 유신’, 언론과 지식인은 무엇을 했는가?
언론의 대대적인 유신 홍보 · 303 이어령의 프랑스 파리 피난 · 304 취재 기능을 거세당한 언론 · 306 박정희와 『조선일보』의 유착 · 307 『조선일보』의 ‘10월 유신’ 지지 · 310 ‘항가리 헌법’으로 불린 유신헌법 · 312 박일경의 ‘한국적 민주주의’론 · 313 갈봉근의 ‘권력의 인격화’ 이론 · 315 강만길이 느낀 배신감 · 316
제7장 통일벼와 절미 운동
박정희의 ‘희’를 딴 ‘희농 1호’의 실패 · 318 ‘진짜 기적의 볍씨’ 통일벼 · 320 절미 운동 위반은 범죄 · 321 학교에서 과잉 단속 · 323 ‘쌀밥=미개’, ‘밀가루=문명’ · 325
제8장 새마을운동과 민족성 개조론
‘시멘트 생산 과잉’에서 비롯된 운동 · 327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변화 · 329 박정희의 민족성 개조론 · 330 새마을운동의 사회개혁운동화 · 332 “유신 이념과 연결된 정치적 국민운동” · 334
역사 산책 5 ‘화투 화형식’과 ‘주부도박단’ · 336
역사 산책 6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 339
역사 산책 7 미신·무속 타파 운동 · 342
제9장 이순신 숭배와 국민의식 개조 사업
국사 교육 강화가 만든 ‘국사 붐’ · 345 박정희의 이순신 성웅화 작업 · 346 이순신 영화 때문에 망한 김진규 · 349 ‘성웅=멸사봉공 정신’ · 350 효도도 ‘국민총화’를 위하여 · 351
제10장 어용 단체로 전락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노동 착취가 최대 경쟁력 · 352 정권에 포섭된 한국노총 · 354 노조 간부들의 귀족화 · 356 한국 노동운동의 이중 구조 · 357
제11장 남진·나훈아와 김추자·신중현의 활약
남진과 나훈아의 경쟁 · 358 경쟁과 상부상조 · 360 <고향역>·<님과 함께>의 사회학적 의미 · 362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 · 364 신중현의 예술가적 근성 · 366 51명이 사망한 서울시민회관 화재 · 368
제12장 정부 주도 축구의 인기
‘실세’ 장덕진의 축구협회장 취임 · 371 메르데카컵·킹스컵 우승이 불러온 ‘축구 열풍’ · 373 1970년 멕시코월드컵 열풍 · 375 ‘박대통령배 아시아축구대회’ 출범 · 377 이회택의 눈물과 삭발 · 380 축구 황제 펠레의 방한 경기 · 381 북한의 올림픽 금메달이 준 자극 · 384
제13장 왜 공중전화 통화시간을 3분으로 제한했는가?
전화기 50만 대로 34번째 중진국 · 386 ‘청색전화’와 ‘백색전화’의 차이 · 388 1971년 서울-부산 간 장거리자동전화 개통 · 390 1972년 공중전화 3분 제한제 · 391
주 · 393
‘한강의 기적’의 이면에 숨은 인권유린 · 5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가 “민주화에 기여했다”? · 7 양자택일의 문제일까? · 9
제1부 1970년 : 도시에 빨려 들어가는 농촌
제1장 수출의 국가 종교화
‘조국 근대화’를 종교로 삼은 박정희 · 27 ‘군사적 성장주의’와 ‘수출의 전쟁화’ · 29 수출은 전쟁이되 성전이었다 · 31 수출 ‘10억 달러’ 고지 점령 · 32 수출 군사작전의 양면성 · 35
제2장 닉슨 독트린과 대미 외교
리처드 닉슨과 샤를 드골 · 37 박정희의 리처드 닉슨 푸대접 · 38 박정희가 닉슨에게 당한 굴욕 · 39 1970년대의 한국을 지배한 주한미군 문제 · 42
제3장 경부고속도로 개통
‘민족사적 금자탑’을 세운 박정희의 ‘원맨쇼’ · 44 가장 싸고 빠른 군사작전식 건설 · 46 77명의 생명이 바쳐진 경부고속도로 · 48 ‘자동차 시대’와 ‘고속도로의 문학’ · 50 고속도로가 농촌에 미친 영향 · 52
역사 산책 1 고층빌딩은 ‘조국 근대화’의 상징 · 56
제4장 경부고속도로와 지역 갈등
지역균형발전을 외면한 경부고속도로 · 59 투표 성향으로 나타난 소외감 · 61 공약이 된 호남선 복선화 · 63 호남인의 호남 탈출 · 65 ‘시장 논리’로 정착된 호남 차별 · 66
제5장 북한에 ‘경제 경쟁’을 제안한 8·15 선언
‘함정 피랍 사건’과 ‘현충문 폭발 사건’ · 69 ‘자력 방위’를 위한 방위산업 육성 · 70 북한 존재를 인정한 8·15 선언 · 71
제6장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김영삼·김대중·이철승 ‘40대 기수들’의 도전 · 74 김영삼의 자만, 김대중의 승리 · 76 박정희를 섬기는 ‘박정희교 신도’의 등장 · 78
제7장 평가교수단과 대통령 특별보좌관 제도
지식인을 경멸한 박정희의 지식인관 · 80 박정희의 지식인 이용 · 82 평가교수단이 누린 특혜 · 83 대통령 특별보좌관 제도의 발족 · 84 박종홍의 박정희 체제 옹호 · 86 함병춘의 군사정권 옹호 · 88 학계에서 존경을 누린 박종홍의 영향력 · 90
제8장 정인숙 살해 사건과 ‘요정 정치’의 천태만상
정인숙의 수첩에서 나온 33장의 명함 · 92 박정희인가, 정일권인가? · 94 국회 대정부 질문 · 95 아직도 진실을 밝힐 때가 아니다? · 97 ‘정성일의 아버지’ 미스터리 · 98 박정희의 놀라운 엽색 행각 · 100 부정부패를 심화시킨 ‘요정 공화국’ · 102 밤낮 구분이 없는 박정희 정권 실세들의 엽색 행각 · 103
제9장 33명이 죽은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인 아파트 건설 · 106 33명의 생명을 앗아간 아파트 붕괴 사고 · 108 부실, 싸구려, 날림공사 · 110 선거 때만 멈춘 판자촌 철거 · 111
제10장 시인 김지하의 ‘오적’
다섯 도둑의 부패상을 풍자한 담시 · 113 부정부패 고발도 반공법 위반 · 114 『사상계』 폐간, 『씨ᄋᆞᆯ의소리』 창간 · 116 정부 고관들이 사는 ‘도둑 마을’ · 118 무엇을 위한 5·16이었는가? · 119 독재와 부정부패는 동전의 양면 · 121
역사 산책 2 일일연속극 <아씨>의 인기 · 124
제11장 청년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 127 왜 전태일이 만든 모임은 ‘바보회’였을까? · 128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참상 · 130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 132 양심을 강타당한 대학생과 지식인 · 134 학생 시위와 기독교인들의 참회 · 135 ‘경부고속도로’와 ‘닭장집’ · 136
역사 산책 3 ‘우리들의 어머니’가 된 이소선 · 139
제2부 1971년 : 박정희 1인 체제의 완성
제1장 ‘언론화형식’과 ‘언론자유수호선언’
이희호와 팻 닉슨의 사진 촬영 논란 · 143 월간지 『다리』 탄압 사건 · 144 편집국장 옆에 앉은 중앙정보부원 · 146 “정상배로 전락한 신문 경영자” · 148 기자들의 ‘언론자유수호선언’ · 149 교련 철폐와 공명선거 운동 · 151
제2장 서승·서준식 형제 ‘간첩’ 조작 사건
보안사가 연출한 반공 드라마 · 153 서승이 당한 잔인한 고문 · 154 선거를 엎기 위한 음모극 · 157
제3장 제7대 대통령 선거
‘김대중 바람’ 대 색깔론 · 159 박정희의 대선 자금은 국가예산의 10% · 162 중앙정보부의 투표 결과 조작 · 164 “이번이 마지막 출마”라는 거짓말 · 165
제4장 4·27 대선과 지역 갈등
“신라 임금을 뽑자”는 선동 · 167 ‘피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선동 · 169 “럭키치약을 사지 말자”는 공작 선동 · 170 박정희의 호남 차별 인사정책 · 172
제5장 제8대 국회의원 선거와 ‘진산 파동’
신민당 당원들의 습격을 받은 유진산 · 174 신민당의 ‘실질적인 대승’ · 175 언론의 김대중 보도 통제 · 177
제6장 사법부 파동과 사법부 탄압 공작
판사들의 자체 정화운동 · 179 박정희 정권의 사법부 탄압 공작 · 180 박정희 정권의 재판권 침해 사례 · 182 박정희 정권의 하부기관으로 종속된 사법부 · 183
제7장 그린벨트와 산림녹화
수도권 인구 억제를 위한 그린벨트 · 186 한국은 20세기의 대표적 녹화 사업 성공 국가 · 187 아무런 대책 없이 철거당한 판자촌 · 189
제8장 광주대단지 폭동 사건
쓰레기처럼 내버려진 사람들 · 191 주민 희망을 유린한 서울시의 배신과 오만 · 194 굶어죽을 정도로 굶주린 사람들 · 196 끝나지 않은 판자촌 빈민 문제 · 198
제9장 실미도 사건의 비극
서울 시내 한복판에 출현한 무장공비? · 200 김일성 암살을 위해 만든 특수부대 · 202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은 특수부대원들 · 204 단지 ‘후진적 인력 관리’의 문제였는가? · 205 동료들에게 맞아 죽은 탈영자 · 206 실미도 부대는 ‘홧김에 만든 부대’ · 207
제10장 공화당 ‘4인 체제’의 몰락
박정희의 ‘소름 끼칠 듯한 무서운 눈매’ · 210 김성곤은 박정희의 정치자금 창구 · 211 내무부 장관 오치성 해임건의안 가결 · 212 공화당 의원들에게 가해진 가혹한 고문 · 215 공화당과 의회정치의 사망 · 216 박정희의 냉혹한 인간관 · 217
제11장 ‘10·15 위수령’과 ‘12·6 국가비상사태’
수경사 병력 고려대 난입 사건 · 221 서울 8개 대학에 무기휴업령을 내린 10·15 위수령 · 222 전 서울대생 4명의 ‘내란예비음모’ 사건 · 224 헌법적 근거가 없는 12·6 국가비상사태 · 224
제12장 프레스카드제와 MBC <뉴스데스크>
민심에 편승한 언론통제 · 226 박정희 정권의 프레스카드제 악용 · 229 신문 산업의 경영 합리화 · 230 앵커가 진행하는 MBC <뉴스데스크> 탄생 · 231 재벌과 박정희 측근에게 넘어간 MBC · 234 MBC 분양 비리와 부작용 · 236 MBC 분양이 보여준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 · 237 범여권계 매체 계열화 · 238
제13장 포크 음악, 라디오 DJ, 미팅
김민기와 양희은의 <아침이슬> · 241 라디오 DJ 프로그램과 음악다방 · 242 교회 갱신 운동에 이용된 포크 음악 · 245 대학생들의 미팅 문화 · 247
역사 산책 4 인스턴트 커피가 변화시킨 다방 문화 · 249
제3부 1972년 : 박정희 영구집권 체제의 완성
제1장 리처드 닉슨의 중공 방문과 남북대화
중공에 초청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 · 255 브레턴우즈 체제의 폐기 · 258 김일성의 남북대화 제의 · 260 닉슨의 중공·소련 방문 · 261 닉슨의 중공 방문이 한반도에 미친 영향 · 263 역사적인 울산 현대조선소 기공식 · 264 기상천외한 ‘정주영 공법’ · 266
제2장 통일 열기를 만들어낸 ‘7·4 남북공동성명’
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을 만나다니! · 269 박정희의 정치적 필요 · 270 남한도 북한에 배울 게 있다 · 273 서두른 30여 명 사상범 사형 집행 · 273 남북적십자회담은 열렸지만 · 274
제3장 사채를 동결한 8·3 긴급경제조치
기업을 위한 사채 동결 · 278 8·3 긴급경제조치로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 · 280 정경유착과 재벌 중심 경제 · 282
제4장 박정희의 ‘10월 유신’ 선포
대통령 종신제를 위하여 · 285 북한도 두려워한 국제 정세 변화 · 287 사쿠라만 활짝 핀 신민당 · 289 ‘악질’ 의원들에게 가해진 고문 · 290 “내가 인간의 세상에 살고 있는가” · 291
제5장 ‘10월 유신’ 국민투표와 ‘체육관 선거’
91.5% 찬성, 강요된 부정선거 · 293 입법부와 사법부의 무력화 · 294 99.99% 지지가 나온 ‘체육관 선거’ · 295 ‘박정희는 유신, 김일성은 유일’ · 297 김일성의 1인 지배체제와 세습 강화 · 299 남북한의 ‘내통 가능성’을 부정한 김종필 · 301
제6장 ‘10월 유신’, 언론과 지식인은 무엇을 했는가?
언론의 대대적인 유신 홍보 · 303 이어령의 프랑스 파리 피난 · 304 취재 기능을 거세당한 언론 · 306 박정희와 『조선일보』의 유착 · 307 『조선일보』의 ‘10월 유신’ 지지 · 310 ‘항가리 헌법’으로 불린 유신헌법 · 312 박일경의 ‘한국적 민주주의’론 · 313 갈봉근의 ‘권력의 인격화’ 이론 · 315 강만길이 느낀 배신감 · 316
제7장 통일벼와 절미 운동
박정희의 ‘희’를 딴 ‘희농 1호’의 실패 · 318 ‘진짜 기적의 볍씨’ 통일벼 · 320 절미 운동 위반은 범죄 · 321 학교에서 과잉 단속 · 323 ‘쌀밥=미개’, ‘밀가루=문명’ · 325
제8장 새마을운동과 민족성 개조론
‘시멘트 생산 과잉’에서 비롯된 운동 · 327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변화 · 329 박정희의 민족성 개조론 · 330 새마을운동의 사회개혁운동화 · 332 “유신 이념과 연결된 정치적 국민운동” · 334
역사 산책 5 ‘화투 화형식’과 ‘주부도박단’ · 336
역사 산책 6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 339
역사 산책 7 미신·무속 타파 운동 · 342
제9장 이순신 숭배와 국민의식 개조 사업
국사 교육 강화가 만든 ‘국사 붐’ · 345 박정희의 이순신 성웅화 작업 · 346 이순신 영화 때문에 망한 김진규 · 349 ‘성웅=멸사봉공 정신’ · 350 효도도 ‘국민총화’를 위하여 · 351
제10장 어용 단체로 전락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노동 착취가 최대 경쟁력 · 352 정권에 포섭된 한국노총 · 354 노조 간부들의 귀족화 · 356 한국 노동운동의 이중 구조 · 357
제11장 남진·나훈아와 김추자·신중현의 활약
남진과 나훈아의 경쟁 · 358 경쟁과 상부상조 · 360 <고향역>·<님과 함께>의 사회학적 의미 · 362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 · 364 신중현의 예술가적 근성 · 366 51명이 사망한 서울시민회관 화재 · 368
제12장 정부 주도 축구의 인기
‘실세’ 장덕진의 축구협회장 취임 · 371 메르데카컵·킹스컵 우승이 불러온 ‘축구 열풍’ · 373 1970년 멕시코월드컵 열풍 · 375 ‘박대통령배 아시아축구대회’ 출범 · 377 이회택의 눈물과 삭발 · 380 축구 황제 펠레의 방한 경기 · 381 북한의 올림픽 금메달이 준 자극 · 384
제13장 왜 공중전화 통화시간을 3분으로 제한했는가?
전화기 50만 대로 34번째 중진국 · 386 ‘청색전화’와 ‘백색전화’의 차이 · 388 1971년 서울-부산 간 장거리자동전화 개통 · 390 1972년 공중전화 3분 제한제 · 391
주 ·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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