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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한국전쟁 이후~현재
· ISBN : 9788959068319
· 쪽수 : 444쪽
· 출판일 : 2026-04-17
책 소개
목차
제1부 1976년 : 히스테리와 광기 속에서
제1장 경제개발과 가족계획
피임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 · 19 1인당 GNP를 높이기 위해 · 20 군사작전식 가족계획운동 · 21 결혼 연령의 변화와 공업화의 영향 · 23
제2장 포항 석유 발견 사건
온 국민을 강타한 행복한 충격 · 25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조선일보』의 차이 · 26 한국을 휩쓴 회오리바람과 광풍 · 29 ‘포항 석유 쇼’의 진상 · 30
제3장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언론이 죽어 있는 상황에서의 저항 · 33 이게 ‘정부 전복 선동 사건’이라고? · 35 인권운동 활성화의 계기 · 38 반상회와 상호 감시체제 · 39
역사 산책 1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체제’ · 41
제4장 폭력이 난무한 신민당 내분
‘한국 야당사에서 가장 추악한 작품’ · 44 이철승의 대표최고위원 당선 · 45 이철승의 중도통합론 · 47
제5장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미루나무 가지치기가 부른 북한의 살인극 · 49 북침 가능성에 대한 북한의 신경질적 반응 · 50 ‘음흉한 의도’ 또는 ‘건수 올리기’? · 53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 · 54
제6장 박동선의 ‘코리아게이트’
‘한국 정부, 미국 정치인들에게 뇌물 제공’ · 56 2개월 늦은 한국 언론의 보도 · 58 농촌을 희생으로 한 대미 로비 · 59
제7장 세종대왕 숭배와 외래어 추방 캠페인
세종대왕을 통한 이미지메이킹 · 62 프로그램과 연예인 이름의 국산화 · 63 스포츠 용어의 국산화 · 65 『뿌리깊은 나무』의 창간 · 66 지하철 독서문화의 탄생 · 68
제8장 신문과 TV의 갈등, ‘하이틴 영화’의 성행
‘저속하고 비윤리적인 일일연속극’ · 69 ‘무하마드 알리’ 사건 · 71 신문과 TV의 광고 전쟁 · 72 왜 박정희 정권은 대마초 사건을 뻥튀기했는가? · 73 1년에 25편이나 제작된 ‘하이틴 영화’ · 76 ‘하이틴 영화’의 사회학 · 78
역사 산책 2 ‘호스티스 영화’와 ‘총화 유신 이념의 구현’ · 79
제2부 1977년 : ‘100억 달러’의 빛과 그림자
제1장 프레이저 청문회와 싱글러브 항명 사건
박정희와 지미 카터 사이의 갈등 · 83 프레이저 청문회와 ‘어글리 코리안’ · 85 코리아게이트가 민족주의 문제였는가? · 87 김한조를 어떻게 볼 것인가? · 89 김한조의 박정희에 대한 원망 · 90 김한조의 한 맺힌 삶 · 91 주한미군 참모장 존 싱글러브의 항명 · 93
제2장 충효 교육과 문교부·문공부의 경쟁
‘정신 무장’을 의미한 ‘정신문화’ · 96 “충효 교육을 중심으로 한 도의 교육의 강화” · 98 문교부와의 경쟁에 나선 문공부 · 99 박근혜가 후원한 새마음운동 · 100 ‘박정희 민족주의의 반민족성’ · 101
제3장 리영희 필화 사건
『8억인과의 대화』와 『우상과 이성』 · 103 “검사가 ‘반공법 위반이다’ 하면 위반” · 104 ‘진실을 안다는 것은 괴로운 일’ · 106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활동 · 107
제4장 병영체제하의 민주화 투쟁
‘이심전심 유언비어 유포죄’ · 109 “야 이놈아, 네가 판사냐” · 110 학생들의 ‘가미가제’식 투쟁 · 112 성직자, 해직 교수, 해직 기자들의 투쟁 · 113
제5장 100억 달러 수출 달성
1977년 의료보험 실시 · 115 박정희의 ‘군사작전식 밀어붙이기’의 성공 · 117 세계 17위의 수출국이 되다 · 118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최초 종합우승 · 121 분양만 받으면 1년 내 두 배 장사 · 123 정부의 ‘강남 키우기’와 중동 특수 · 124
역사 산책 3 현대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항만공사 · 127
역사 산책 4 지방민들을 압도한 대우빌딩의 위용 · 130
제6장 MBC 대학가요제와 그룹사운드 붐
예상을 뒤엎은 뜨거운 열기 · 133 대학가요제의 사회사적 의미 · 135 대학가의 그룹사운드 붐 · 137
제7장 컬러TV 방송 논란과 농촌
삼성전자·금성사가 참여한 1972년 논쟁 · 138 박정희의 컬러TV 방송 반대 이유 · 140 박정희의 농촌에 대한 이중성 · 141 1977년 최고의 TV 스포츠 이벤트 · 143
제3부 1978년 : 동일방직과 현대아파트
제1장 도시산업선교회와 민주노조운동
부의 소수 집중과 상대적 박탈감 · 149 인간적 모독에 저항한 인권운동 · 150 도시산업선교회에 대한 공격 · 151 한국노총의 조직행동대 결성 · 153 “나는 왜 산업선교회원이 되었나?” · 154 산업선교를 방해하기 위한 ‘교양강좌’ · 156
제2장 ‘공순이’에 대한 사회적 폭력
서울의 ‘촌놈 차별’ 또는 ‘촌년 차별’ · 158 ‘공돌이’보다 훨씬 더 당한 ‘공순이’ · 159 공장에서 눈물을 흘리면 안 되는 이유 · 161 학력 이데올로기의 폭력 · 163 ‘상징적 억압에 대한 분노’ · 165
제3장 똥물을 뒤집어쓴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
여성 노동자들의 알몸 저항 · 167 성폭력 형태의 잔인한 보복 · 169 입에까지 똥을 집어넣은 만행 · 170 “우리는 똥 먹고살 수 없다!” · 173 중앙정보부가 조종한 공작 · 174
제4장 언론의 침묵과 부활절 예배 중단
동일방직 똥물 사건에 대한 언론의 침묵 · 177 여성 노동자들이 중단시킨 기독교 방송 · 178 ‘언론의 시선을 잡아보려는 필사적인 시도’ · 179 ‘인권을 강도당한 노동자들의 호소’ · 182 ‘공장의 불빛’으로 승화된 투쟁 · 183
역사 산책 5 교회는 여공들의 진정한 친구였는가? · 186
제5장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악이 선을 가장했던 세상’ · 189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 191 “반드시 독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 191 “너무 아파 나는 피를 토한다” · 192
제6장 서울대 6·12 시위와 ‘교육지표’ 사건
대학생들의 유인물 배포 투쟁 · 195 6·12 시위의 새로운 면모 · 196 ‘국민교육헌장’부터 잘못되었다 · 197 학생을 포섭해야 하는 교수의 비애 · 199
제7장 제9대 대통령 선거
한밤중의 청와대 인근 전차 시위 · 201 파국을 향해 치달은 박정희 정권 · 202 공산주의를 빼닮은 박정희의 선거 · 203 언론은 선전·선동 기관지인가? · 205 박정희의 제9대 대통령 취임과 김대중 가석방 · 206
제8장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
새롭게 창조된 ‘탐욕의 문화’ · 209 교훈을 남기지 못한 현대아파트 사건 · 211 경기 과열에 따른 욕망 과열 · 213 부정부패 비판도 긴급조치 9호 위반 · 215 ‘복부인’과 ‘제비족’의 활약 · 217 ‘한강의 기적’과 강남 개발의 가속화 · 219
역사 산책 6 말죽거리 잔혹사 · 223
제9장 국산 미사일 개발과 미국의 견제
착수 6년 만에 쏘아올린 미사일 · 225 미국의 견제 속에 이루어진 핵개발 시도 · 226 신군부는 ‘핵개발 포기 각서’를 써주었는가? · 228
제10장 ‘함평 고구마’와 ‘영양 감자’ 사건
함평 고구마 피해보상 투쟁 · 230 시국 사건으로 비화된 감자 피해보상 투쟁 · 232 기이한 ‘오원춘 사건’ · 233 농업정책과 새마을운동의 허구성 · 236
제11장 새마을운동과 대중동원 정치
국민 1인당 평균 2회 받은 새마을훈련 · 239 새마을운동의 외화내빈 · 241 ‘돈에 화신 들린 농촌’ · 242 ‘농민을 사람으로 대접한 최초의 지배자’ · 243 ‘농촌 민주주의’의 명암 · 244 새마을부녀회의 명암 · 247 방림방적의 새마을운동 · 249
제12장 민권일지 사건과 신문 판매 전쟁
‘언론은 관민 합작에 의한 악덕 상품’ · 251 은폐·왜곡된 250여 건 기사화 시도 · 253 ‘앵무새 보도원으로 전락한 언론’ · 254 ‘방황하는 농촌’ 기사에 대한 탄압 · 255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100만 부 돌파 · 257 용인자연농원 돼지 분뇨 방류 사건 · 259 삼성조선의 시추선 설계도면 절취 사건 · 260 정주영의 ‘신문 없는 서러움’ · 262
제4부 1979년 : 박정희 시대의 종말
제1장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
‘중간집단운동’에 대한 탄압 · 267 고문의 상습화·생활화 · 269 박정희 정권은 ‘야수의 정권’ · 271
제2장 김영삼의 신민당 총재 복귀
1978년 12·12 총선과 여야 역전 · 274 백두진 파동과 이철승의 ‘사쿠라’ 정치 · 275 김대중과 김재규의 지원 · 276
제3장 지미 카터의 한국 방문
카터의 방한 반대운동 · 280 양심범가족협의회와 동아투위의 성명 · 282 ‘김일성 면담 용의’ 발언 파동 · 282 박정희와 카터의 갈등 · 283 주한미군 철수 시한부 중지 발표 · 286 ‘어깨에 힘이 들어간 박정희의 착각’ · 288
역사 산책 7 문인들의 시위 투쟁과 옥중 권리 투쟁 · 290
제4장 YH 노동자 폭력 진압 사건
“근대화의 역군을 윤락가로 내몰지 말라” · 292 “동생들의 학비와 부모님들 약값은 어떻게 하나?” · 293 ‘미필적 고의살인’과 무차별 폭행 · 295 언론의 ‘마녀 사냥’ · 297 강제 귀향 여성 노동자들의 운명 · 298 ‘정신질환적인 편집광 증세의 극치’ · 300
제5장 김영삼 의원직 제명
‘박정희 정권 타도를 위한 범국민적 항쟁’ 선언 · 302 31년 만에 처음으로 발동된 국회 경호권 · 303 신민당 의원 전원 의원직 사퇴 · 305
제6장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실종 사건
‘용도 폐기’된 김형욱의 운명 · 307 박정희의 “나는 모른다”는 주장 · 308 누가 김형욱을 죽였는가? · 309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 312
제7장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
아직도 평가가 어려운 남민전 사건 · 314 꼭 ‘남조선’이라는 말을 써야 했는가? · 317 이게 인간이 사는 세상인가? · 317 김남주와 홍세화의 활동 · 319 남민전 사건의 영향과 의의 · 321 대구는 왜 보수적인 도시가 되었는가? · 322
제8장 부마 민주항쟁
경제에 손을 든 박정희 · 325 박정희의 해결 능력을 넘어선 위기 · 326 박정희의 통제를 벗어난 대자본 · 327 ‘10·16 항쟁’ 또는 ‘부마 민주항쟁’ · 329 항쟁의 뇌관을 건드린 경제 · 331 ‘새로운 힘의 센터’의 등장 · 333
제9장 10·26 사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 334 차지철과 김재규의 엽기적 경쟁 관계 · 336 계획적인가, 우발적인가? · 338 보안사에 넘어간 정국 주도권 · 339 김재규 평가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 · 341 1970년대 한국인의 삶의 일부였던 박정희 · 343
역사 산책 8 혈서는 살아 있다 · 345
제10장 박정희의 엽색 행각
손찌검까지 동원된 육박전 · 348 압구정동 H 아파트 사건 · 350 사흘에 한 번씩 연예인 100명 섭렵 · 351 박정희의 가학적 섹스관 · 353 사무라이를 꿈꾼 ‘대일본 제국 최후의 군인’ · 355
제11장 박정희의 용인술과 부정부패
박정희의 이간책 수법 · 357 박정희의 독심술과 두 얼굴 · 359 용인술과 부정부패는 동전의 양면 · 361 ‘한강의 기적’의 비용인가? · 364 “인간이란 어차피 다 이중인격자야” · 366 박정희의 촌지 봉투 대량 살포 · 367
제12장 명동 YWCA 위장 결혼식 사건
‘거국중립내각구성’과 ‘조기 총선’ 주장 · 369 ‘해빙 무드’와 사태의 급반전 · 371 신군부의 악랄한 고문 · 372 민주화 의제 변화와 윤보선의 변절 · 373 신군부의 ‘김대중 죽이기’ 음모 · 375
제13장 12·12 군사반란
제10대 대통령 최규하의 변심 · 377 신군부가 저지른 12·12 군사반란 · 379 장태완과 정승화의 비극 · 381 하나회가 주도한 12·14 군 숙청 · 384 영관급 육사 출신들의 인사 정체에 대한 불만 · 385 전두환의 ‘뜸 들이기’ 작전 · 387 새로운 파시즘의 재기 예고 · 388
제14장 축구의 남북 대결과 한일전
TV 중계방송을 하지 않은 남북 대결 · 392 방콕아시안게임 남북 공동우승 · 394 남북 선수들간의 뜨거운 신경전 · 395 다시 불붙은 한일전 · 397
역사 산책 9 ‘축구 영웅’ 차범근의 활약 · 399
맺는말 : 두 얼굴을 가진 사람들
경부고속도로가 낳은 ‘번영과 소외’ · 402 ‘국가주의적 지도자 숭배의 문화’ · 404 과연 ‘인간의 얼굴을 가진 온건한 파시즘’이었는가? · 406 개발독재가 낳은 신민 문화 · 408 상호 갈등 해소와 화합은 불가능한가? · 410
주 · 413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1976년 10월 24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한국 정부의 기관 요원인 박동선 씨가 1970년대 연간 50만 내지 100만 달러 상당의 뇌물로 90여 명의 의원과 공직자를 매수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한국 정부, 미국 정치인들에게 수백만 달러 뇌물 제공’이라는 톱기사 제목과 함께 무려 10면에 걸쳐 내보냈다. 이 기사는 한미 양국의 정관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으며 이 논란은 이후 2년간이나 지속되었다. 일명 ‘코리아게이트’로 불린 이 사건의 핵심 내용은 박정희가 박동선이라는 로비스트를 통해 주한미군 철수 등과 같은 한미간 현안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미국 의원들을 상대로 돈뭉치를 뿌렸다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가 10월 26일 박동선은 한국과 무관하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자, 『워싱턴포스트』는 10월 27일 미 중앙정보국(CIA)이 코리아게이트의 단서를 잡은 것은, 전자장치로 청와대를 도청했기 때문이라 는 기사를 내보냈다. 「제1부 제6장 박동선의 ‘코리아게이트’」
1977년 12월 22일 100억 달러 수출 달성을 기념하는 수출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박정희는 “민족중흥의 창업 도전에 획기적 이정표가 될 자랑스러운 이 금자탑”이라고 선언했다. 100억 달러를 수출함으로써 한국은 세계 17위(산유국 포함 26위)의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수출의 날은 11월 30일이지만, 100억 달러 수출에 맞추기 위해 기념식을 연기했다. 박정희는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당초 목표를 4년이나 앞당겨 100억 달러 수출을 무난히 실현한 것은 우리가 일찍이 ‘수출입국’의 목표 아래 굳게 뭉쳐서 국력 배양에 노력해온 성과”라고 말하고 “비록 100억 달러 수출의 고비를 넘어섰다 할지라도 오늘의 이 시점은 자립 경제를 달성하기 위한 ‘수출 한국’의 또 하나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모두 명심해야 하겠다”고 말했다. 「제2부 제5장 100억 달러 수출 달성」
1978년 6월 10일에 나온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집은 6개월 동안에 8만 4,000부, 1979년에 7만 부, 1980년에 2만 부 판매를 기록하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이 소설은 우화적이긴 하지만 당시로선 금기시되던 경제성장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 것이라 그러한 기록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문학평론가 이동하에 따르면, 이 소설은 “70년대의 거대한 사회적 변동 가운데서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고난에 찬 삶을 지속해야 했던가를 말하고 그들의 이상과 존엄성이 어떻게 부당하게 훼손되어갔는가를 탁월하게 증언”했다. 줄여서 ‘난쏘공’이라 불렸던 이 소설은 연작소설집으로 1975년부터 1978년까지 『문학과지성』을 비롯한 여러 잡지에 게재된 것으로 조세희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었다. 조세희는 산동네 철거민촌을 찾아다니며 취재를 했고, 자신이 직접 살기도 하면서 빈곤층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었는데……. 「제3부 제5장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