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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59136124
· 쪽수 : 260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저, 피곤해요. 너무 쓸쓸해요. 아이를 낳든, 안 낳든, 사람의 가치는 똑같아요. 그만큼 남편과 주변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며 살았어요. 그런데 막상 이렇게 되니 제 인생이 아무 한 일도 없고 무력하고 여자로서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견딜 수 없어요.”
“오토미 씨만이 아니라 리본하우스 자체가 테이크오프 보드예요. 하지만 크게 생각하면 사람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요? 부모가 자식을 받쳐주듯이 모두 누군가의 발판이 되어서 다음 세대를 앞으로 날려주죠.”
“저는…….”
받쳐줄 자식이 없다는 말을 하려다가 유리코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하고 그 말을 잇듯이 사토미가 말했다.
“혼자예요. 결혼을 안 했죠. 시설을 맡아줄 일가친척들도 없어요.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인생인지도 모르죠. 그래도 내 일을 테이크오프 보드로 해서 분명히 누군가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잊히는 게 쓸쓸하지 않으세요?”
“쓸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사토미가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요즘에는 이런 생각도 해요. 그건 서로 마찬가지라고. 세상은 수없이 많은 익명의 테이크오프 보드로 이루어졌다…….”
“무슨 뜻인지?”
사토미가 웃으며 연표를 집어 들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이 종이를 만든 사람의 이름을 몰라요. 이걸 운반해 준 사람도 누군지 모르고, 누가 판매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름도 모르는 그 분들 덕에 우리는 이렇게 오토미 씨의 연표를 보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지불한 돈으로 이 종이에 관련된 사람들의 생활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어디나 온통 아주 근사해. 이게 옴마의 인생…… 우리 옴마의 인생이었어.”
유리코가 연표를 끌어안고 울었다.
아쓰타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자신의 시간도 멈출 날이 온다. 유리코의 연표에 그렇게 적힐 날도 머지않아 분명히 올 것이다.
자신이 사라진 다음에 딸은 어떤 내용으로 하얀 종이를 채워갈 것인가.
웃는 얼굴로 있었으면 싶다.
가능하면 행복한 일들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유리코,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했어. 네가 사랑이 뭔지 모른다고 해서, 제대로 대답을 해주고 싶어서 말이지. 그런데 역시 너처럼 잘 모르겠구나.”
유리코는 연표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하지만 네 마음이 얼마나 쓸쓸한지는 잘 알아. 하지만 그건 다른 누구도 채워주지 못하는 거야. 네 연표의 빈 곳은 네가 움직이지 않으면 메우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