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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59137855
· 쪽수 : 359쪽
· 출판일 : 2014-05-12
책 소개
목차
월요일의 루카 007
해설 352
옮긴이의 말 357
리뷰
책속에서
“자네를 채용하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라고 할까, 약속해줘야 할 게 있네.”
“약속이요?”
“꼭 지켜줘야 하는데, 괜찮겠나?”
시급 1500엔.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 그 사람의 과거에 대해서 묻지 말 것. 과거에 대해서 물으면 절대 안 돼. 우리 직원들 누구에게 물어봐도 안 되고.”
“왜죠?”
“어쨌든 관심을 갖지 않으면 되네.”
그는 적당히 대꾸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둘째, 그 사람은 월요일이 되면 예민해지니까 월요일에는 되도록 가만히 내버려둘 것.”
극장에서 일하는 이상, 토요일과 일요일에 예민해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날은 다른 날보다 몇 배나 바쁘니까. 그런데 왜 월요일에 예민해지는 것일까?
“그리고 세 번째가 중요한데…….”
그는 몸을 앞으로 쭉 내밀고 나서 덧붙였다.
“연애는 절대 금지야.”
“예? 영사기사 분, 남자가 아닌가요?”
영사기사는 〈시네마천국〉의 알프레드처럼 관록 있는 중년 남성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니, 여자야. 여자라고 할까, 아직 소녀에 가깝지.”
그는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를 가리켰다. 출근표에 있는 직원들의 이름 사이에서 ‘영사실 스기모토 루카’란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내 이력서를 보며 중얼거렸다.
“루카는 아마 자네와 동갑일 거야.”
“예? 저와 동갑이라고요?”
“그래. 스물한 살이지.”
그가 이력서에서 내 나이를 확인하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동갑인 여자애가 극장의 영사 업무를 혼자 담당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다섯 번째 필름이 걸려 있는 1호기 옆에서 대기했다. 그리고 스크린의 오른쪽 위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교체 타이밍을 알리는 검은 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검은 점은 필름 네 컷에 걸쳐서 찍혀 있다. 한 컷은 24분의 1초니까 스크린에 검은 점이 보이는 것은 겨우 6분의 1초이다. 이것을 놓치면 교체 타이밍이 틀려서 영상이 끊어지기도 하고 겹치기도 한다.
“하루토, 너도 잘 봐.”
검은 점이 나타나면 수동 릴레이 방식으로 영사기를 교체해야 한다. 하루토에게는 미리 그 말을 해두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여.”
하루토는 앞자리 등받이를 두 손으로 잡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나도 필름의 오른쪽 구석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왔다.
내가 1호기 모터의 시작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하루토의 입에서 “나왔다!”라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7초 후, 두 번째 검은 점이 나왔다. 이 타이밍에 영사기를 전환해야 한다. 나는 침착하게 전환 버튼을 눌렀다. 달칵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2호기 램프박스의 셔터가 닫히고, 스크린에 1호기 영상이 나타났다. 나는 재빨리 초점과 음성을 확인했다.
루카가 기분 좋게 말했다.
“완벽해. 이동영사기도 마스터했군.”
“이다음에 같이 출장 상영하러 가자.”
내가 그렇게 말하자 루카는 하루토의 시선에 신경을 쓰면서도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토가 뒤에 다가와서 내 등을 쿡쿡 찔렀다.
“형, 지금 나 보라고 일부러 그런 거지.”
“예전에는 네가 나 보라고 일부러 그랬잖아.”
입술 끝으로 웃으며 대꾸하자 하루토도 나와 똑같이 입술 끝으로 웃었다.
“출장 영사하러 갈 때 같이 가자.”
“나도?”
“별이 반짝이는 하늘 아래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해봐. 상상만 해도 멋있잖아. 야외에서 〈시네마천국〉을 상영하고 싶지 않아?”
하루토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굉장하다!”
처음 만난 날, 오른발을 끌면서 걷던 루카.
나를 야단치던 루카.
극장의 옥상에서 저녁놀에 물든 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르쳐주던 루카.
처음으로 혼자 영화를 상영한 날, 직접 음식을 만들어 축하해주던 루카.
소중한 보물인 디지털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꿈을 말해주던 루카.
괴로운 표정으로 레이지와의 과거를 털어놓았던 루카.
그리고 어젯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알몸의 루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거잖아. 이별은 이별이지만 그것은 기쁨의 이별이야.”
그렇다, 이것은 기쁨의 이별이다. 이별이긴 하지만 기쁨인 것이다. 나는 그녀가 있는 어둠을 향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루카~! 루카~!”
기쁨의 눈물로 눈앞이 흐려졌다. 멀어지는 스크린이 눈물로 인해 커다란 빛의 입자로 바뀌었다. 이윽고 열차는 계곡으로 들어갔다. 나는 무너지듯 주저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열차가 나아가는 동쪽 하늘에서 새로운 빛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