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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크림빵

노란 크림빵

이광진 (지은이)
  |  
한솜미디어(띠앗)
2012-10-05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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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크림빵

책 정보

· 제목 : 노란 크림빵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9593279
· 쪽수 : 240쪽

책 소개

<고운님 여의옵고>의 저자 이광진의 에세이로,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 또한 7080세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목차

들어가기 전에 / 5

PART 01
구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_ 14
사랑받기 위한 사람 _ 20
땅에 사는 가치 _ 27
외로운 사냥꾼 _ 33
건설이란 _ 38
술 _ 44
담배 _ 54
오뎅 _ 59
조영남을 읽다 _ 63

PART 02
바람
‘놈’과 ‘분’ _ 94
외연도外煙島 _ 100
남산, 렛잇비 _ 111
노란 크림빵
운주사 가는 길 _ 117
어느 천재의 자명소自明疏 _ 122
휴일을 재미없게 보내는 방법 _ 128
개에게 영혼이 있는가 _ 136
남자의 굳은살 _ 141
내 24살의 상처 _ 148

PART 03

노란 크림빵 _ 156
珍이 _ 163
21세기 빈처 _ 170
노무현, 조광조 _ 176
죽음을 함부로 말하지 마라 _ 181
말코와 짱구 _ 188
우리들의 70년대 _ 192
제갈諸葛과 항우項羽 _ 202
마지막 장강長江 _ 212
福酒가 중국으로 떠난 까닭은 _ 216

저자소개

이광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7년생. (truebokjulee@naver.com) ·이북 실향민 2세로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기계공고, 울산과학대학 졸업. ·40여 년간 전국을 떠돌며 플랜트 건설공사 수행. ·자유주의 보수, 자연주의 건설, 자결주의 인생에 모두 실패. ·지금도 건설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저서> ·역사 기행문『고운 님 여의옵고』2007년. ·수필집『노란 크림빵』2012년. ·독후감『인간실격에서 부활까지』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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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흑백 영화 같은 장면 하나가 있다. 배경은 부산 남포동의 피닉스 호텔 건너편, 지금 남포 사거리의 자갈치 쪽 방향이다. 황량한 시멘트 보도블록 위에는 겨울을 버티고 있는 깡마른 가로수가 차로와 인도의 경계에 줄을 지어 서 있다. 그 한 가로수를 붙들고 있는 초로의 부인이 있다. 청보라 두루마기를 입은 부인은 흐느끼고 있다. 잎새 하나 없는 플라타너스 나무기둥에 얼굴을 묻고 숨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 부인의 등 뒤로 중학교 교복을 입은, 허옇게 버짐 먹은 얼굴에 동상 걸린 귀때기가 시커먼 사내애가 부인의 소매 끝에 매달려 덩달아 울상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 쳐다본다. 사내애는 부인의 소매를 끌어당긴다.
“어머니, 제가 더 열심히 공부해서 내년에 인문계 고등학교 갈게요. 실업계 보내는 게 마음 아프다고 늘 그러셨잖아요.”
그 말에 부인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쪽찐 머리를 끄덕이며 눈물을 참기 위해 입술을 앙다문다. 자갈치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칼날 바람이 가로수 잔가지를 치며 지나간다.

어머니 고향은 함경남도 원산元山이다. 전쟁으로 실향민이 되셨고 피난지 부산에서 같은 처지의 아버지를 만나 나를 낳으셨다. 어머니는 좋은 집안에서 막내딸로 태어나 넉넉한 생활을 하셨던 모양이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전쟁이 허물어놓은 어머니의 인생 후반기는―실향민의 대부분이 그러했지만―인고의 나날이었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집안에서 한복 짓는 일을 맡아 하셨다. 좁은 방 안에는 늘 치마저고리의 화사한 옷감이 펼쳐져 있었고, 발로 젓는 재봉틀 소리가 탈그닥거렸다. 나는 재봉틀 아래서 알록달록한 옷감자투리를 만지며 놀았다. 가끔 내가 어머니를 도울 수 있는 일은 바늘귀에 실을 꿰어 드리는 일이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자랑스러웠고 가슴이 뿌듯하였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백내장 수술을 받으셨다. 눈이 나빠지신 어머니는 수술 후에도 가끔 한복을 지을 때가 있었으나 그저 용돈벌이 정도에 그쳤다. 살림이 쪼들렸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하시는 구멍가게의 한편을 쪼개 빈대떡을 부치기 시작하셨다. 빈대떡은 제법 인기가 있었는데, 손님이 앉을 수 있는 식탁은 하나뿐이어서 대부분 저녁에 안주로 사가는 사람이 많았다. 어머니는 손수건만 한 유리창 앞에 앉아 늦게까지 빈대떡을 부치셨다. 그 당시 우리 집 방바닥에는 크고 작은 그릇들이 늘 펼쳐져 있었고, 해가 지면 맷돌 돌아가는 소리가 밤늦도록 드르륵거렸다. 마른 녹두껍질을 벗기기 위해 한 번을 갈고, 물에 불린 녹두를 죽처럼 만들기 위해 다시 한 번을 갈았다.
나는 학교를 다녀와 주로 밤중에 어머니와 마주 앉아 맷돌을 돌렸다. 막대 손잡이를 아래위로 같이 쥐고 어머니와 호흡을 맞춰가며 돌렸다. 어머니의 손은 맷돌도 돌리고 맷돌 구멍에 녹두도 집어넣느라 쉴 틈이 없었다. 그때 어머니와 아들은 마주 앉아 무슨 이야기를 하였을까. 늦은 밤까지 도란도란 말이 아주 많았었는데….

아버지의 가게는 갈수록 어려워졌고 우린 이삿짐을 두 번이나 쌌다. 어머니가 가장 아끼던 재봉틀도 팔아치웠다. 아버지는 남은 돈을 털어 양계養鷄를 시작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경험이 없어서 사들인 어린 닭의 절반이 죽어나갔다. 주로 압사였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해 겨울은 매우 추웠는데 우리 식구에게는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닭장 속에는 연탄난로를 피웠다. 어린 닭들은 서로 난로 가까이에 몸을 들이밀었다. 난롯가에 닭들이 층을 쌓으면 재빨리 작대기로 닭들을 흩어놓아야 했다. 새벽에 언 몸을 녹이며 잠시 졸다가 닭장을 나가 보면 어느새 닭들은 난롯가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닭들을 흩어놓고 보면 맨 밑에 깔린 닭들은 납작하게 죽어 있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깔려죽은 닭들이 아까워서 한두 마리를 골라내 소주 안주를 하셨다. 방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앉아 한숨과 함께 뜯는 그 닭은 어떤 맛이었을까. 병아리 티를 겨우 벗어난, 차라리 병아리에 가까운 닭이었다. 그런 혹독한 겨울에 내가 고등학교 진학을 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인문계로 보내겠다고 입버릇처럼 뇌시었다. 그래야 대학도 가고 장래가 보장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그런 실력이 되질 못했다. 어머니는 재수를 해서라도 인문계에 가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들은 학비가 면제되는 국립고등학교를 택했다. 어머니는 “재수를 해서라도…” 하셨지만 이미 목소리에 힘이 빠지셨다.
입학금 등록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국립이라 입학금도 저렴하였다. 실습비와 교재비가 전부였다. 그러나 숨 막히게 살기가 힘든 때이니 부모님은 서로를 믿고만 계셨나 보다. 내가 달력을 가리키며 내일이 마감이라고 하였을 때, 두 분은 난감한 얼굴로 서로를 피하셨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나를 앞세워 고향인 원산서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을 찾아갔다. 남포동 영도다리 아래에서 건어물 도매사업으로 성공한 부잣집이었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 동생이라 불리던 아주머니는 방안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흑백 TV화면은 무지하게 컸다. 어머니는 마치 TV를 처음 본 듯이 부러운 찬탄을 연발하셨다. 돈 많은 집은 확실히 다르다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띄워졌을 때, 어머니는 조심스레 본론을 끄집어냈다.
“동생, 아이 입학금 아닌가. 금방 갚을 테니 좀 빌려주게나.”
<이하 생략>

- 본문 <노란 크림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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