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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세계사 일반
· ISBN : 9788960518469
· 쪽수 : 768쪽
책 소개
목차
1부 통합
1장 신의 이름 아래 하나의 제국을 이루다 ● 로마 제국, 312~330
2장 천명을 다투다 ● 중국, 313~402
3장 마음의 제국 ● 인도, 319~415
4장 페르시아의 위협 ● 로마 제국, 페르시아 제국, 동부 아프리카, 아라비아, 325~361
5장 배교자 ● 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 361~364
6장 지진과 침입 ● 로마 제국, 브리튼섬, 게르만족 영토, 364~376
7장 왕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다 ● 고구려, 백제, 신라, 371~412
8장 가톨릭교회 ● 로마 제국, 378~382
2부 분열
9장 파문 ● 로마 제국, 브리튼섬, 페르시아 제국, 383~392
10장 두 동강이 나다 ● 로마 제국, 392~396
11장 로마 약탈 ●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 396~410
12장 단성론이냐, 이성론이냐 ● 동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 408~431
13장 고향 땅을 찾아서 ● 서로마 제국과 게르만족 영토, 410~418
14장 굽타의 쇠락 ● 인도, 415~480
15장 북방 민족의 야망 ● 중국, 420~464
16장 훈족 ● 서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 게르만족 영토, 훈족 땅, 히스파니아, 북아프리카, 423~450
17장 아틸라 ● 서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 게르만족 영토, 훈족 땅, 450~455
18장 정교 ● 동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 451~454
19장 상왕 ● 브리튼섬, 451~470
20장 로마라는 신화의 종말 ● 서로마 제국과 게르만족 영토, 454~476
3부 신흥 세력들
21장 동고트족 ● 동로마 제국과 이탈리아, 457~493
22장 비잔티움 ● 동로마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 471~518
23장 위대한 포부 ● 중국과 고구려, 백제, 신라 왕국, 471~527
24장 분한 ?恨 ● 중국, 479~534
25장 왕의 선출 ● 프랑크족 왕국들, 서고트족, 반달족, 동고트족, 브리튼인, 481~531
26장 침입과 폭발 ● 인도와 수마트라섬과 자바섬, 497~535
27장 아메리카 대륙 ● 메소아메리카, 500~600년경
28장 위대하고 거룩한 황제 폐하 ● 동아프리카, 아라비아, 페르시아 제국, 비잔티움 제국, 510~529
29장 역병 ● 페르시아 제국, 비잔티움 제국,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532~544
30장 천황 ● 고구려, 백제, 신라와 일본의 야마토 정권, 536~602
31장 재통일 ● 중국과 고구려, 546~612
32장 인도 남부의 왕들 ● 인도, 543~620
33장 두 명의 황제 ● 이탈리아, 서고트 왕국, 동로마 제국,페르시아 제국, 아라비아, 551~579
34장 궁재 ● 프랑크 왕국, 558~656
35장 대그레고리오 ● 이탈리아와 브리튼섬, 572~604
36장 페르시아의 성전 ● 동로마 제국, 페르시아 제국, 슬라브족, 불가르족, 아바르족, 하자르족 왕국들, 589~632
37장 예언자 ● 아라비아, 590~622
38장 당의 패권 ● 중국, 일본, 돌궐, 티베트, 백제, 고구려, 신라 왕국, 622~676
39장 신앙의 부족 ● 아라비아, 622~642
40장 교차 ● 인도와 스리랑카, 640~684
41장 혼란에 빠진 제국 ● 아라비아, 643~661
리뷰
책속에서
1장 신의 이름 아래 하나의 제국을 이루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자신의 황제 권력을 교회의 미래와 더 단단히 결부시키리라 마음먹고 새로운 수도 건설 작업에도 돌입한 참이었다. 새 수도에는 그 초창기부터 로마 신전이 아닌 그리스도교 교회가 곳곳에 들어서게 할 작정이었다. 흑해와 통하는 연안에 위치한 비잔티움의 옛 도시를 그리스도교 도시로 재건해, 로마에서부터 그곳으로 자기 제국의 수도를 공식적으로 옮기고, 로마에 모셔져 있는 신들까지 함께 새 수도로 데려오겠다는 것이 콘스탄티누스가 전부터 죽 품어 온 복안이었다.
그리스도교는 일순간에 종교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됐다. 이제 그리스도교는 합법적 정치 세력이었다. 콘스탄티누스가 십자가의 기치를 내걸고 처음 군대를 출정시키고자 했을 때만 해도, 그리스도교는 자신의 이런 모습을 전혀 생각지 못했다. 교회 또한, 콘스탄티누스 1세의 제국이 그랬듯, 처음 얼마간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게 된다. 교회도, 콘스탄티누스가 그랬듯, 장차 자신의 미래를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야 했다.
아리우스는 [제1차] 니케아공의회(325)에서 이단으로 단죄받자 부리나케 달아나 제국 동쪽 언저리 팔레스타인 땅에 몸을 숨겼다. 이로써 아리우스주의가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었다. 자취를 감추기는커녕, 여전히 물밑에는 정통 교설에 만족하지 못하는 아리우스주의의 기류가 거세게 흐르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누이동생 콘스탄티아만 해도 니케아신조를 그리스도교의 유일한 정통 교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오빠의 명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아리우스주의의 제일 강력한 신봉자로 이름을 떨치는 형국이었다.
콘스탄티아가 그렇게까지 된 건 아마도 사무친 원한 때문이었으리라. 니케아공의회가 열린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325년의 어느 날, 남편 리키니우스를 관용을 베풀어 살려 주겠다고 했던 콘스탄티누스 1세가 돌연 약속을 깨고 그를 목매달아 죽였으니 말이다. 황위에 도전하려는 자는 아주 싹부터 잘라 버리려는 듯,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조카이기도 한 누이동생의 열 살짜리 아들도 함께 교수대로 보냈다.
4장 페르시아의 위협
페르시아 정도 되는 큰 제국을 경영하려면 아무래도 칼을 잘 휘두르는 것만으론 부족했다. 탁월한 행정 능력도 반드시 받쳐 주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당시에 새로운 통행 패턴을 발명해 낸 것은 혁신이나 다름없었다. 이렇듯 지적이고 영민한 샤푸르 2세였으니, 눈앞의 세상은 다 지배하고 말겠다는 계획을 세운 콘스탄티누스 1세로서는 정말 제대로 임자를 만난 셈이었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수도를 동쪽의 비잔티움으로 옮긴 것은 페르시아의 동방 패권을 그대로 두고 보지만은 않겠다는 무언의 시위이기도 했다. 그래도 샤푸르 2세에게 처음 다가갈 땐 콘스탄티누스 1세도 꽤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샤푸르 2세가 주변의 섭정들을 깨끗이 털어 내자마자, 콘스탄티누스 1세는 서신을 보내 상대에 대한 존중이 담긴 꽤 분명한 어조로 일렀다. 페르시아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교도들을 더는 박해하지 말라고. “내가 〔그들 앞에서〕 당신을 칭송하는 것은 당신이 그만큼 위대해서요”라고 콘스탄티누스 1세는 아주 약삭빠르게 썼다. “당신이 늘 사람을 아껴 왔던 그 마음으로 부디 그들도 소중히 대해 주길 바라오. 그 까닭은 그 같은 믿음의 표시가 당신 자신만 아니라 우리들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은덕을 베풀어 주기 때문이오.”
샤푸르 2세는 자기 나라 안의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자비를 보이겠다며 순순히 응낙의 뜻을 전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관용을 베풀기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서한이 당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악숨 왕국의 아프리카인 왕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악숨 왕의 그리스도교 개종은 그 자신이 천당에 가고 싶다는 소망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악숨 왕국과 로마 제국의 우정을 보란 듯 만방에 공언하는 행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