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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60902336
· 쪽수 : 436쪽
· 출판일 : 2015-08-10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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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이상하게 오전 내내 조용했다. 파도가 밀려와 스치고 지나갔다. 때로 뱃전에 부딪친 파도는 하얀 물결로 휘돌아와 다시 부서졌다. 길게 뻗은 구름 아래로 말간 하늘이 보였다.
적기敵機 출현을 최초로 알린 곳은 함교였다. 공습경보가 울릴 때 보먼은 구명조끼를 가지러 선실로 뛰어가고 있었다. 모두 다급했다. 그는 도중에 키멀을 봤다. 머리에 비해 너무 커 보이는 헬멧을 쓴 키멀은 철제 계단을 급히 뛰어오르며 외쳤다. “올 것이 왔어!” 발포 명령이 떨어졌다. 배 위의 모든 포가 불을 뿜었다. 주위의 배들도 마찬가지였다. 귀가 먹먹했다. 대공포 포탄이 검은 연기 사이로 날아갔다. 함장은 함교에서 조타수의 팔뚝을 치며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병사들도 있었다. 모든 게 빨리빨리 돌아갔다. 소란하고 황급했다. 그때 하늘에서 새까만 점들이 포화를 뚫고, 운명처럼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 멀어 포탄이 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검은 비행기 한 대가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눈먼 벌레처럼 내려오더니 영락없이 이쪽으로 향했다. 날개에 붉은 기장이 보였고 까만 엔진 덮개가 반짝였다. 일제히 함포 사격을 가했다. 대기하던 부사수들이 바삐 움직이며 서로 부딪치기도 했다. 큰 폭음과 함께 물기둥이 치솟았다. 배가 옆으로 기우뚱했다. 비행기가 충돌했다. 혹은 빗맞은 듯했다. 자욱한 연기와 혼란 속에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옷장에 그의 군복이 걸려 있었다. 위쪽 선반에 군모도 있었다. 그가 하급 장교로서 칭찬받고 존경받던 시절에 착용한 것이었다. 군복은 오래전에 쓸모와 매력을 잃었지만 신기하게 모자에선 아직도 강한 기운이 감돌았다.
오랫동안 자주 꿈을 꿨다. 다시 전장에 있는 꿈. 바다에서 공격을 받았다. 피격된 배가 무릎을 꿇고 죽어가는 말처럼 기울고 있었다. 그는 물이 차오르는 통로를 지나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갑판 위로 올라가려 발버둥 쳤다. 배가 거의 90도로 기울었는데 그는 보일러실 옆에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몰랐다. 더 안전한 곳을 찾아야 했다. 그는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지나가는 배 갑판 뒤편에 뛰어내려야 했다. 꿈결에 뛰어내렸다. 그런데 배가 너무 빨리 지나가서 물에 빠졌다. 그는 헤엄쳤지만 떠나가는 배의 후미가 우르릉거리며 남긴 항적에 밀려 점점 뒤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