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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필름

녹색 필름

김금아 (지은이)
한국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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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필름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녹색 필름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1042581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19-12-16

책 소개

현대시 시인선 217권. 김금아 시집. 시인의 말에서 김금아는 "팔레트를 열었다"라고 쓰고 있다. 그 말대로 시집에는 모든 감각들을 동원하고 공감각을 발생시키는 초현실적인 그림들이 출현한다.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경고등 ————— 12
2호 승강기 ————— 13
12월의 티켓 ————— 14
검은 문 ————— 16
궤도 이탈 ————— 18
기해년 축사 ————— 20
깨어진 우주 ————— 22
녹색 필름 ————— 24
뇌성 ————— 26
리모컨에 걸린 해협 ————— 28
마일리지 ————— 30
무인역에서 ————— 32
드라비다의 미소 ————— 34
바캉스 ————— 35
밤에 뜨는 태양 ————— 36

제2부

빨간 사이렌 ————— 38
백납 빛 하늘 ————— 40
북극의 원탁 ————— 42
불새 ————— 44
빨간 빗방울 ————— 46
사운드 트랙 ————— 47
사각 반사경 ————— 48
샐비어의 초록 슈즈 ————— 50
손톱 안의 눈 ————— 52
애플민트의 눈 ————— 53
수직계단 ————— 54
슬라브 무곡 ————— 56
얼음 낮달 ————— 58
유레일패스 1 ————— 60
유레일패스 3 ————— 62

제3부

유레일패스 4 ————— 64
유레일패스 5 ————— 66
유레일패스 6 ————— 67
유레일패스 7 ————— 68
유레일패스 8 ————— 70
유레일패스 9 ————— 72
인치는 시시포스 ————— 73
유리 불꽃 ————— 74
차이콥스키의 겨울 ————— 76
이탈 ————— 78
자코메티의 안개 상자 ————— 79
착시 ————— 80
철책선에 뜬 별 ————— 82
칸타타 ————— 84

제4부

티베트 기행 ————— 86
토파즈 ————— 88
틴들현상 ————— 90
핏발선 진눈깨비 ————— 91
파스텔 카페 ————— 92
페르시아 기행 ————— 94
프린트된 사마리아인 ————— 96
필라멘트 ————— 98
하늘 발톱 ————— 100
하얀 사막 ————— 102
하얀 새 ————— 104
회전 액자 ————— 106
황금레일 ————— 108

▨ 김금아의 시세계 | 신수진 ————— 110

저자소개

김금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울산광역시 울주에서 태어나 2008년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라파즈에서 한 시간> <미로 프로젝트> <나는 흰 벽이다>가 있으며, 현재 부산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펼치기

책속에서

녹색 필름

아버지의 신발에 우물이 고여 있다.
물그림자에 떠 있는 발자국에
유백색의 필름이 돌아간다.
두레박이 열리고
다급한 바리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마흔아홉 살의 아이,
하늘이 허리를 낮추자
나의 동공에 흰 광야가 어른거린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모래무지에
젖무덤은 자란다.

검은 신발 속으로 해가 잠기면
그림자는 남은 불빛을 뜯어먹는다.
나는 두레박에 은하수를 잠그고
길이 보일 때까지 이사야서를 펼친다.
옷섶 가득 논이랑을 매달고
걸어오는 아버지,
16장 책갈피에서 폭포수 소리가 들리고
육신에는 수십 개의 풍경화가 돋아난다.
나를 에워싸는 백팔십도의 우물,
핏기 한 점 없는 물 깊이에
나는 아버지를 건져내고 있다.

수채화에서 상현달이 펄럭이며
끊임없이 흐르는 하늘을 항해하고 있다.


경고등

녹색 스크린 안에 여자가 깊이 잠들어 있다.
침대를 끌고 가는 초원으로 테마 기차가 달린다.
창문마다 빨간 입술이 매달려 있다.
남자는 입술에 걸터앉아 리모컨을 켠다.
머리에 돋아난 메타세쿼이아 숲을 지나서
똬리를 틀고 있던 꽃뱀이 촛대를 타고 오른다.
사람들이 조각칼을 들고
여자의 생식기를 오려내어 상자에 담는다.
여자를 실은 열차가 피를 흘리며
브라운관 밖으로 탈선한다.

나는 얼굴을 떼어
시속 85킬로미터 초원으로 던진다.
부메랑이 된 입술이 창에 루주 자국을 찍는다.
나는 여자의 손톱에 노란 램프 등 걸어놓고
침대를 클릭한 후
거웃을 울타리처럼 진열한다.


무인역에서

빗줄기가 쏟아지는 PC 홈 화면 속으로
완행열차가 휩쓸려간다.
사진틀에 걸터앉은 역무원이
물에 젖은 소식을 건져내어
점멸등에 걸어둔다.
나는 안내판을 열고 들어선다.
트랩을 매단 환승 표가
빗물을 빨아올릴 때마다 쇳소리를 낸다.
좁은 철길을 누비는 캠코더,
나는 #6호 팔레트를 열어 물방울무늬 우산을 그린다.
우산이 하늘을 끌어당긴다.
태풍 11호를 뿌리는 사이클리스트들이
톱날 같은 빗줄기를 튕겨낼 때마다
액자 속 초상화가 부르르 떤다.
텅 빈 승강장에
강수량 그래프가 위험수위를 넘나들자
나는 &일람표를 펼쳐놓고 피아노를 친다.
멜로디가 한 옥타브씩 올라가면서
빗방울을 지운다.
땅딸막한 사내가
소매에 붙은 멜로디를 털어내며
내일의 하이라이트를 뽑아 든다.
사내는 적색 강수량에 파란 눈금을 긋고
모바일 창을 닫는다.

우산 속에 든 모형 집이 따뜻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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