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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중기(임진왜란~경종)
· ISBN : 9788962464252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20-09-17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서(序) - 서애 유성룡의 부음
- 한양 묵사동에 울리는 백성들의 통곡 소리
1부. 전란의 먹구름
1. 1587년(정해년) 손죽도 왜변, 두 장수의 상반된 죽음
- 오만한 일본 사신 다치바나
2. 1589년(기축년) 압송되는 조선 어민, 사을배동
- 정여립 역모 사건, 유성룡의 승부수
3. 1590년(경인년) 일본으로 가는 조선 통신사
- 도요토미의 선전 포고
4. 1591년(신묘년) 정사와 부사의 엇갈린 판단, 국방 개혁의 좌초
- 서인 정철의 실각, 남북으로 갈리는 동인
5. 1592년(임진년 초봄), 허술한 국방, 안이한 장수들 - 폭풍 전야, 쓰시마의 침묵
2부. 토붕와해(土崩瓦解)의 조선
1. 1592년(임진년 봄) 잔인한 봄, 전란이 터지다.
- 한양을 버린 선조
2. (임진년 여름) 벼랑 끝 조정
- 전라좌수사 이순신, 해로(海路)를 틀어막다.
3. (임진년 가을) 백성의 피로 물든 낙엽
- 진주성이 살려낸 조선의 기맥(氣脈)
3부. 3국 전쟁, 한양성 수복
1. 1592년(임진년 겨울) ∼ 1993년(계사년 초) 평양성 수복
- 일진일퇴의 공방전
2. 1593년(계사년 봄), 폐허가 된 한양성
- 명나라 군대의 양면성, 시산혈해(屍山血海)의 산하
3. (계사년 여름), 진주 남강의 장례식
- 남녘땅을 동여맨 뱀의 똬리
4부. 교착상태, 이중 협상과 외로운 명의(名醫) 유성룡
1. 1593년(계사년) ∼ 1595년(을미년), 조선을 살리는 제도의 정비
- 군역과 세제의 개혁
2. 1596년(병신년) 강화 협상의 결렬과 도요토미의 복심
- 조선, 명, 일본의 동상이몽(同床異夢)
5부. 전란의 재발, 7년 재앙의 막바지
1. 1597년(정유년 봄∼여름) 이순신과 원균, 선조의 자충수(自充手)
- 조선 수군의 궤멸
2. (정유년 가을∼겨울) 남원성 시신을 비추는 한가위 보름달
- 기적처럼 부활한 조선 수군
3. 1598년(무술년) 이순신의 전사와 파직된 유성룡
- 유성룡 낙향하다.
결(結) - 징비록을 남기고
- 후세를 경계하는 선비의 마지막 책임
저자소개
책속에서
- 유성룡의 생애와 징비록에 대한 기자 시각의 해석에 부쳐
유성룡은 기자들에게도 많은 글쓰기 교훈을 준다. 철저히 두괄식이고, 사실을 덧붙이며, 이순신에 대한 일부 평가를 제외하면 교감을 강요하지 않는다. 해석을 내세우며, 이후 사실을 짜깁기하는 다른 신료들의 상소문과는 차원이 달랐다. 물론 징비록도 정치적인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무엇보다 선조에 대한 정면 비판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선조실록에 따르면, 유성룡은 군왕에게 ‘필부(匹夫)’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선비였다. 그래서 행간을 거듭 곱씹으며 감정을 이입해 보았으며, 하필이면 왜 그 사실을 기록했는지도 고민하는 과정에서, 사실을 둘러싼 주변 이야기를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역사서에는 권위가 고드름처럼 피어난다. 이러한 고드름이 엉키면서 자구(字句)에 대한 지엽적인 해석이 지붕을 덮어버린다. 문헌과 고증에 대한 잘잘못을 내세우며 권위를 내세우면 정작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에 대한 이해는 일정한 틀에 갇히고 만다. 기록과 텍스트만으로 채워진, 역사박물관이 과거를 통해 현실을 되새기려는 갈증을 채울 리 만무하다. 그래서 이 고드름을 제거하고 역사속 삶을 우선 조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기자시절, 출입처가 바뀌면 오래지 않아 용기를 내 기사를 쓰고는 했다. 기자는 행정 관료의 전문성을 갖추지 않아도, 그들의 일이 독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결과는 충분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징비록을 보완하는 산더미 같은 사료 앞에서 때로 좌절했지만 사료를 출입처로 삼아 기자의 논리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개별 사료의 가치를 과감하게 판단하고, 상식적인 직관을 동원해 기사로 풀어보았다. 어쩌면 궁궐 출입 기자를 해보고 싶은 인문학적 상상력이 이 책을 쓰는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2020년, 타국에서 창궐한 코로나로 대한민국은 감염의 공포와 일상이 멈추는 집단적 시련을 겪었고, 슬기롭게 고비를 헤쳐 나갔다. 그러나 이 체험은 임진년에 터진 전란과는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1592년부터 7년 동안, 선조들이 견디어 낸 전란의 고통과 공포, 매일매일 생사를 오가던 참혹한 삶은 상상조차 두렵다.
- 머리말 중에서
3월 들어 무르익은 봄볕이 따사롭다. 이 봄기운이 전란중의 백성들에게 잔인한 보릿고개의 서막을 알린다. 전란 없는 평화시절에도, 지난해 추수한 곡식이 떨어지면 백성들은 유랑민으로 전락, 초근목피와 구걸한 음식으로 연명했다. 파종조차 못하고 버려진 논밭에는 잡초만 군데군데 머리를 내민다.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한 공출과 부역은 그칠 새 없어 굶주림과 죽음이 일상을 지배한다. 산 자의 낯빛과 죽은 자의 그것을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다. 오늘 붙은 숨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하루살이’에게 내일은 미지의 공포에 불과하다. 누더기 같은 상복 차림의 피란민들이 우르르 떼를 지어 유성룡이 사령부를 꾸린 동파역 인근에 모여든다. 퀭한 눈빛으로 혹시 모를 한 줌 곡식을 애처롭게 구걸한다. 부총병 사대수가 파주 역마 길가에서 말을 멈추고, 갓난아이를 가슴에 품어 군영에 들어온다. 죽은 어미의 빈 젖을 빨고 있었다. 요행히 연민의 눈을 가진 사대수에게 띄면서 전란의 처절한 고통에서 한 아이가 살아남았다. 군중에 맡겨 미음을 먹이라고 지시한다. 명나라 진중에서 조선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이유였다. 유성룡이 고개를 숙인다. 담대하던 얼굴이 일그러지며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한양성에 도사린 왜적은 날을 세우며 백성들을 도륙한다. 삶과 죽음의 거리가 좁혀질 대로 좁혀져 ‘백지 한 장’에 불과했다.
- 계사년 기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