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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2573978
· 쪽수 : 496쪽
· 출판일 : 2024-12-24
책 소개
목차
1부
2부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원봉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교장 선생님 그러면 안중근이라카는 사람은 일본놈한테 재판받아야 합니꺼? 러시아 땅에서 이등박문을 쏘았으면 러시아 법을 따라야 하는 거 아입니꺼?”
“니 말이 맞다. 그러나 일본놈들은 절대로 러시아 법정에 안중근 대장을 맡기지 않을 끼다. 본보기로 보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죽이려고 할끼다. 그런데 안중근 대장은 당당히 대한제국 의병장으로 죽게 해달라고 했다카네. 이 말은 교수형이 아닌 총살형을 시켜달라는 말인 기라. 대한제국의 군인으로 당당하게 죽겠다는 뜻이제.”
“지도 안중근 대장처럼 할낍니더.”
김원봉은 두 주먹을 쥐어 보였다. 옆에 있는 아이들도 원봉을 보며 자기 주먹을 들어 보였다.
“무슨 소린지 알겠다. 그런데 진짜로 사람들이 그리 많더나? ”
“말도 못합니더. ‘대한독립만세’라고 외치는데 천지가 떠나가는 줄 알았습니더. 선생님께서 그 광경을 보셨다면 놀랬을 겁니더.”
“지도 독립선언서를 품속에 넣어 왔는데 그날 현장에 있었던 많은 사람이 저처럼 선언서를 챙겨 갔으니 조만간 전국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날 겁니더. 우리 밀양도 가만있어가 되겠습니꺼?”
“우리도 해야 안 되겠습니꺼? 그래서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이렇게 선생님을 찾아온 겁니더. 말도 안 했는데 동시에 이곳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더.”
“해야제, 우리도 해야제. 이 세월을 우째 견뎠는데. 치형아 세주야! 너들이 모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노? 나는 지역 유지들과 의논해 보마. 어른들이 돈이라도 보태야 물감도 사고 종이도 살 것 아니겠나.”
이불 속에서 세주는 아내에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자신이 자랐던 집을 떠나 시댁에 적응하느라 애쓰는 아내의 노력을 알고 있었으나,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여자의 삶이 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신교육을 받았다고 자부하면서도 집에 있는 머슴과 부엌일을 돕는 사람에게만 평등한 세상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정작 자기 아내가 얼마나 부당한 불평등 속에 살고 있는지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글을 배우려는 마음이 있으리라는 것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는 만큼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여성이 사회적 차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자신보다 더 속 깊은 소악을 가만히 껴안으며 혼잣말로 ‘내 집부터 혁명이 시작되어야겠군.’ 하고는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