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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일본사 > 일본근현대사
· ISBN : 9788963574196
· 쪽수 : 372쪽
· 출판일 : 2014-12-08
책 소개
목차
옮긴이의 말
서장 근세일본사상사의 네 가지 축
1. 안으로부터의 ‘일본인’ 의식 . 2. ‘무위武威’의 국가 . 3. 근세 국가 속의 주자학 . 4. 병영국가 지주로서의 병학
5. 난학과 국학 발생의 사회적 배경 . 6. 난학자의 ‘국익’의식 . 7. 국학자의 ‘황국’의식 . 8. 근대 일본의 내셔널 아이덴티티
1부 병학兵學
1장 병학과 사도론士道論 ─ 병영국가의 사상
1. 병영국가와 병학 . 2. 병학의 국가통치론 . 3. 야마가 소코山鹿素行의 병학 . 4. 야마가 소코의 사도론 . 5. 막말幕末의 병학
- 부론 1 중국 명대의 병가兵家사상과 근대 일본
2부 주자학朱子學
2장 ‘무국武國’ 일본과 유학─ 주자학의 가능성
1. ‘공맹孔孟의 도’와 국가 . 2. 화이관념華夷觀念과 ‘무국’ . 3. ‘무국’ 일본의 주자학 가능성 . 4. 유교문화권 속의 근대 일본
- 부론 1 고가 도안古賀侗庵의 해방론: 주자학이 맡은 개명성
- 부론 2 여성해방을 위한 주자학: 고가 도안의 사상(2)
3부 난학蘭學
3장 공명심과 ‘국익’─ 히라가 겐나이平賀源內를 중심으로
1. ‘국익’론자 히라가 겐나이 . 2. ‘예藝’에 의한 공명 . 3. 겐나이의 ‘일본인’ 의식 . 4. 난학자의 국익 의식 . 5. 겐나이와 노리나가
4부 국학國學
4장 근세 천황 권위의 부상
1. ‘아래로부터’의 천황 권위 . 2. 제1기 유불논쟁과 신국론 . 3. 제2기(1) 마스호 잔코增穗殘口의 ‘일본인’ 의식 . 4. 제2기(2) 스이카垂加 신도의 구제론 . 5. 제3기(1)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의 천황관 . 6. 제3기(2) 히라타平田파 국학의 천황관 . 7. 메이지 국가의 일군만민론
- 부론 1 비몽사몽의 태평에 애가 타는 자: 마스호 잔코의 사상과 그 시대
- 부론 2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한의漢意’ 비판
- 부론 3 다이죠사이大嘗祭의 행방: 의미부여의 변천과 근세사상사
후기/색인
책속에서
일본의 근세는 종교적인 권위와 세력을 억압한 병영국가였다. 그 강고했던 ‘무위武威’와 ‘어위광御威光’ 국가 속에서 사무라이武士·햐쿠쇼百姓·죠닌町人은 각각의 ‘야쿠役’를 다하는 것이 의무였고, 그것을 통해 안정된 종적인 계층질서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겐로쿠기 이후의 상품경제·화폐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안정되었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며 “대대로 내려왔던 가문에 관계없이 다만 금·은이 죠닌의 가계도가 되는 것이다”라고 잘라 말해, 돈이 집안과 신분보다도 중요하다는 관념이 생기고, 예로부터의 인간 관계는 상실되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사무라이·햐쿠쇼·죠닌의 신분을 초월한 ‘일본인’이라는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지향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두 갈래의 길이 나뉘어졌다. 그것은 “경쟁이 도입되어 승자와 패자가 생기는” 사회의 경제화 속에서 승자의 논리와 패자의 그것이다. 전자가 개인의 ‘독립이라는 새로운 감정’을 기반으로 한 난학이고, 후자가 패자·약자의 르상티망에 근거한 불안으로부터 ‘새로운 복종과 강제적 비합리적 활동’을 재촉하는 국학이었다.
다케고시 요사부로가 막부 말[幕末] 페리의 내항으로 ‘일본국’이라는 의식이 용솟음쳤다고 논했을 때, 염두에 두었던 ‘일본인’ 의식이란 주로 국학에 의해 표현된 귀속의식이었을 것이다. 막말 지사志士로 불린 하급 사무라이들과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의 문인들은 ‘마술적 조수助手’인 천황에 대해 격정적으로 복종, 즉 충성함으로써 ‘번’과 ‘사농공상’ 신분이라는 할거의식을 초극超克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학적인 ‘일본인’ 의식이 전면에 나왔던 근본 이유는 병영국가라는 큰 틀이 결국 근세말까지 붕괴되지 않았던 사실에 잠복하고 있다. 막부幕府 말에 일본에 왔던 영국 외교관 얼콕Rutherford Alcock(1809~1897)이 “정부는 봉건적 형태를 유지하고 있고, 행정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그 때까지 기획된 것 중에서 가장 교묘한 간첩조직이다”(<대군의 도시The Capital of the Tycoon>(1863), 야마구치 고사쿠山口光朔 역, 岩波文庫)고 감탄했던 감시제도는, 막부가 쓰러지기 직전까지 살아 있었다. 사회경제사적으로 볼 때 군대와 같은 이런 종적 질서가 최후까지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은, 겐로쿠기에 시작된 상품경제·화폐경제의 미숙함과 자본주의화가 아직 발달하지 않았다는 반증임은 말할 것도 없다. 즉 ‘경쟁이 도입되어 승자와 패자가 생기는’ 사회의 단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발달하지 않음으로써 경쟁이 병영국가의 제약을 받아 오히려 일그러져 있었던 것이다. 현실로 진행되는 빈부격차에 대한 분노는 안으로 공박해 들어가고, 돈이 돈을 낳는 사회 동향에 대한 르상티망ressentiment에 근거한 국학자의 ‘일본인’ 의식이 고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