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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통사 3

중국통사 3

(오대십국.북송.남송.요.금.원)

중국사학회 (엮은이), 강영매 (옮긴이)
  |  
종합출판범우
2011-10-10
  |  
4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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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통사 3

책 정보

· 제목 : 중국통사 3 (오대십국.북송.남송.요.금.원)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사 일반
· ISBN : 9788963650579
· 쪽수 : 328쪽

책 소개

역사 이전인 중국 선사시대부터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가 멸망하기까지의 역사 과정을 연대순으로 기술한다. 중국 역사는 너무 방대하고 어렵다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수많은 그림과 사진을 삽입하여 누구나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주요 인물 및 사건들을 간략하고도 생생하게 묘사한다.

목차

1권

(선사시대)-인류가 원인에서 현대인으로 점차 진화함/중국 각 지역이 신석기시대로 진입/인류가 정착하여 원시농업에 종사함.
(하)-기원전 2070년. 대우의 아들 계가 선양제를 타파하고 중국 첫번째 왕조 하를 건립.
(상)-기원전 1600년. 건립 후 정권이 끊임없이 강화되고 사유제가 발전, 노예제도가 중요하게 위치를 차지하게 됨. 주나라에 의해 멸망. 갑골문이 출현, 청동기술이 발흥했으며 수공업과 목축업 발전.
(서주)-기원전 1046년. 주 왕조 초기 대규모의 제후 분봉이 있었으며, 정전제를 특징으로 노예제 경제가 번영. 공화 원년(기원전 841)은 중국 현존 사료중 정확한 연대를 표시하기 시작한 해.
(동주)-기원전 770년. 주 평왕이 낙읍으로 천도. 대혼란의 동주시대 시작. 봉건사회의 군주전제 중앙집권제도 형성됨.
(진)-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 중국 역사상 최초의 중앙집권 봉건왕조 건립. 진의 폭정은 진 왕조의 몰락을 가져옴.
(서한)-기원전 206년. 생활을 안정시키는 정책을 펼쳐 사회 및 경제발전이 촉진됨. 무제 통치하에 중국 봉건사회의 첫 황금기를 열다.
(동한)-서기 25년. 유수가 동한 왕조를 건립한 후 중앙집권이 강화됨. 환관과 외척들이 번갈아 정권을 잡고 황건 기의는 동한 왕조를 붕괴시킴. 조조, 유비, 손권이 각기 한 지역을 차지하고 세력 균형을 이루며 대립.


2권

(삼국)-위 촉 오 삼국이 정립의 형세를 형성. 진한의 통일 후 중국 역사는 다시 할거와 동란의 상태에 빠짐.
(서진)-265년. 한나라 말기 이후 근 1세기의 분열된 국면을 타파하고 국가를 통일.
(동진)-317년. 사마의가 남북 지역의 토호와 귀족들의 공동지지를 얻어 중국 남방에 신왕조 동진을 건립.
(남북조)-420년. 동진 정권 멸망 후 우후죽순 건립된 남방의 4개 정권과 북방의 5개 정권의 합칭으로 중국 민족 융합대발전의 기틀을 이룸.
(수)-남북조의 경제 문화 발전으로 통일을 실현. 수양제의 공을 세우기 좋아하고 호전적인 성향으로 급격히 쇠락.
(당)-618년. 국가는 점진적으로 통일, 사회는 안정됨. 여황제 무측천의 통치 역시 정관 치세의 유풍을 간직, 지속적 발전을 가져옴. ‘안사의 난’ 후 쇠퇴로 향함. 후기의 농민 의거는 근본적으로 당의 통치를 흔듦.


3권

오대십국五代十國·8

|907~960년|·12
오대십국은 위진남북조 이후 중국이 또다시 분열에 빠져든 혼란기. 북방에서는 전란이 빈번히 일어났지만 남방은 상대적으로 안정됨. 전국의 경제 중심이 황하 유역에서 양자강 유역으로 이동

북송北宋·26

|960~1022년|·30
진교병변 이후 조광윤이 송나라를 건립하고 그 후 몇십 년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당말 이래 계속된 분열 및 할거 국면은 종결되었지만, 송나라와 요나라 간 대치 국면 형성

|1022~1067년|·53
송나라와 요나라의 전쟁이 일단락되었으나 서하의 출현으로 북송이 또 해마다 전쟁 속에 빠져듦

|1067~1100년|·75
북송에서 내우외환이 연달아 발생하고, 비록 왕안석의 변법이 효과를 보기는 했지만 갖가지 장애 요소로 인해 결국 실패로 돌아감. 이 기간 중에 문학예술이 공전의 번영을 구가하고, 과학기술 역시 크게 발전함

|1100~1127년|·101
송 휘종의 즉위에서 정강의 변 및 북송의 멸망까지로 북송 왕조의 최후 단계. 부패한 정권이 백성들의 기의에 타격을 받아 무너질 듯 흔들리다가 마침내 금나라의 쇠발굽 아래 패망함

남송南宋·122

|1127~1189년|·126
건국 초기는 금나라 정권과 대치하며 때로는 전쟁을 하고 때로는 화의를 하였기 때문에, 남송 정권은 줄곧 위태롭고 불안정함

|1189~1279년|·150
남송이 강남에 안거하는 데 만족하며 경제 문화를 일정 정도 발전시켰지만, 어리석고 무도한 통치로는 이미 점점 더 나빠져 가는 형세를 만회할 방법이 없었음. 몽골과 연합하여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40여 년이 지난 뒤 남송도 원나라의 수중에 들어감

요遼·184

|916~1031년|·188
거란족의 수령 야율아보기가 각 부족을 통일한 뒤 거란국을 건립하고, 30년이 지난 뒤에 야율덕광이 국호를 요로 개칭함. 이들은 한족의 선진기술을 흡수하여 독특하고 특색 있는 정치와 문화를 창조함

|1031~1218년|·197
장기간의 흥성과 평화 국면으로 거란 귀족들의 사치가 극에 다다르고 사회계급 간의 갈등이 날로 첨예화되어, 200여 년 역사의 요나라가 쇠망의 길로 들어서게 됨

금金·222

|1115~1189년|·226
완안아골타가 황제를 칭하며 금나라를 건국한 후 일련의 정치·군사제도 개혁을 단행하자 나라가 신속히 강대해짐. 역사에서 ‘소요순’이라 불리는 금나라 세종의 재위기간은 금나라 사회가 가장 안정적이고 번영했던 시기

|1189~1234년|·242
금나라 후기에 정치 부패와 통치자들의 중원 백성 및 여진족 하층민들에 대한 약탈과 압박이 극에 달하며 거센 반항을 불러일으킴. 끊임없는 기의로 금나라의 통치권이 극도로 동요됨. 새롭게 흥기한 몽골의 대군이 금나라를 멸망시킴

원元·258

|1206~1259년|·262
‘일대 영웅’인 칭기즈칸이 건립한 대몽골제국이 급속히 확장되어 중국 북부의 통치권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중앙 아시아와 유럽의 일부 지역까지도 정복함

|1260~1294년|·274
쿠빌라이가 국호를 대원으로 개칭하고 통치권이 나날이 공고해짐. 1279년에 남송을 멸망시키고 대통일을 이룸으로써 중국이 이후 수백 년간의 통일의 기초를 다지게 됨

|1294~1368년|·295
통치집단 내부의 투쟁으로 원나라의 통치 기반과 국력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장기간에 걸쳐 널리 시행되어 온 계급 억압 및 민족 억압 정책이 결국 공공연한 사회갈등의 격화를 초래해, 홍건군의 대기의로 원나라가 패망의 종을 울리게 됨

4권
명明·8

|1368~1398년|·12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립하고 전국통일을 실현함. 주원장은 중서성을 폐지하고 승상제도를 철폐하여 중앙집권통치를 강화함. 경제적으로는 국민들의 부담을 줄이고 생활을 안정시키며, 생산을 발전시키는 정책을 추진. 부역제도를 개혁하여 농업·수공업이 모두 회복과 발전단계로 나아감

|1398~1435년|·32
명나라는 건문·영락·홍희·선덕 네 황제를 거치면서 기구의 증설, 완벽한 제도의 개선, 북경으로의 천도, 변경지역의 개발 등 중대한 조치를 실시하면서 이전에 없던 통일국면과 강성대국을 형성함

|1435~1521년|·57
명나라의 사회경제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였으나 영종 때에 출현한 환관의 전권은 명대 이후의 정치생활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기고‘토목보의 변’은 명나라가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됨

|1521~1620년|·85
명나라는 장기간의 안정으로 사회경제와 문화를 최고조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나 정치적으로는 경직과 부패를 초래하여 번영의 배후에는 거대한 위기가 이미 자라나고 있었음

|1620~1644년|·130
명나라의 내우외환은 오랫동안 쌓여 치유가 어렵게 됨. 사종의 근면한 정치도 명나라의 멸망을 막을 수는 없었고 명나라 통치는 결국 이자성이 영도하는 농민기의군에 의해 전복됨


청淸·160

|1644~1722년|·164
청나라 군대가 변경을 넘어와 명나라를 멸망시킨 후 전국을 통일하고 이전에 없던 방대한 제국을 건립. 강희제의 영도 하에 백성과 나라는 부유해졌으며 공전의 번영을 창조함

|1722~1799년|·210
청나라는‘강희와 건륭의 성쇠’의 궤도에 따라 지속적으로 평온하게 발전하였으나 중국이 자신의 성세에 빠져있을 동안 서양에서는 이미 공업혁명이 시작되었으니, 중국은 전통적인 문명강국으로서 낙후되기 시작함

|1799~1840년|·248
청나라의 번영은 쇠퇴의 길로 신속히 치달으며 전면적인 위기가 나타남. 백성들의 기의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외환 역시 지속적으로 가중되었고 아편전쟁은 심각하게 청나라의 경제와 안전을 침해함. 임칙서가 광동에서 아편을 금지하고 중국 근대사의 서막이 시작됨

|1840~1911년|·262
두 차례의 아편전쟁과 일련의 침략전쟁은 중국을 반식민지 고난의 심연으로 빠트림. 외세에 강하게 토지할양의 배상금을 요구하고 잔혹하게 농민 기의군을 진압하는 동시에 청나라도 일련의 개혁을 실시. 그러나 양무운동과 무술변법도 멸망해가는 청나라의 운명을 구할 수는 없었으니 청나라의 통치는 결국 신해혁명으로 무너짐

저자소개

강영매 (옮긴이)    정보 더보기
충남 예산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중문과 졸업 국립대만사범대학교 중문학 석사 대만문화대학교 일문학 석사 연세대학교 중문학 박사 (2017년 現)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겸임교수 광운대학교 연구교수, 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논문집으로는 《탕현조 모란정연구》, 《이노위에 야스시의 중국역사소설연구》, 《탕현조 한단몽기연구》가 있다. 소논문에는 〈모란정 시공간 구조분석〉, 〈모란정과 파우스트의 합창의 의미〉, 〈춘향전과 모란정의 천자문 수용양상〉, 〈모란정 언어기교의 해학성〉, 〈한·중 공연문화 교류현황> 등 다수가 있다. 저서에는 《고사성어문화답사기》(1, 2권), 《강영매의 한자여행》, 《한자특강》, 《사통팔달중국어》, 《동양고전극의 재발견》, 《춘향예술의 양식적 분화와 세계성》(공저) 등 다수가 있다. 역서에는 《중국통사》(전4권), 《중국역사박물관》(전10권), 《중국고전극연구》, 《중국의 성문화》(상하권), 《굴원》, 《채문희》, 《백록원》(전5권), 《선월》, 《중국인의 꾀주머니》, 《주룽지, 기자에 답하다》(공역) 등 4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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