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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63702346
· 쪽수 : 332쪽
· 출판일 : 2010-04-12
책 소개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1부 황후를 맞이한 삼국
왕비 민씨의 입궁 - 섭정의 그늘이 드리운 왕궁으로 시집오다
태후가 된 서태후 - 황제의 아들을 낳은 자가 권력을 잡는다
흥선대원군의 하야 - 제왕의 권력은 부자라도 나누지 않는다
동치제의 죽음 - 비정한 어미라 해도 권력을 놓은 순 없다
힘을 얻은 천황가 - 메이지 천황의 아름다운 황후가 되다
2부 왕권을 강화하는 삼국
왕비 민씨의 별입시 - 여자의 정치는 밤에 꽃핀다
어린 광서제의 등극 - 또다시 수렴청정으로 천하를 호령하다
강화도조약 체결 - 불리하다면 정권을 바꿔라
북양해군 결성 - 동양 최고의 해군력을 갖춰라
하루코 황후의 일상 - 도쿄에 부는 서구의 바람을 맞다
3부 외세와 부딪히는 삼국
복합상소운동 -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개화를 못할소냐
동태후의 죽음 - 권력자는 고독할 때 최고의 권력을 잡는다
임오군란 발발 - 이날의 치욕을 절대 잊지 않겠다
조공책봉체제 -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조공이 아까우랴
부녀감 간행 - 여자는 자고로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
4부 운명이 엇갈린 삼국
급진개화파의 갑신정변 - 왕비 민씨는 온건개화파였다
이화원 준공 - 화려함은 혜안을 가린다
감옥에 갇힌 왕 - 음모는 늘 뒤에서 이루어진다
청일전쟁 - 서태후, 북양해군과 함께 가라앉다
시모노세키 조약 - 일본으로 패권이 넘어가다
에필로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공교롭게도 1873년에 조선과 청나라의 정치 화두는 친정이었다. 당시 고종과 동치 황제가 이미 성년이 지났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친정은 국가대권이 오고 가는 큰일이었다. 넘겨주는 쪽과 넘겨받는 쪽 어느 한쪽이라도 불만을 가진다면 심각한 권력 투쟁으로 폭발할 수 있었다.
고종과 동치 황제는 섭정들로부터 명실상부하게 국가대권을 넘겨받고 싶어 했다. 그들은 이미 성년이 지났고 혼인도 치렀다. 그들의 배우자들 역시 명실상부한 왕비, 황후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섭정들에게서 확실하게 국가대권을 넘겨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과 청나라의 섭정들은 국가대권을 흔쾌히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고종을 대신해 10년이나 섭정 중인 흥선대원군은 친정에 대하여 언급조차도 하지 않았다. 18살의 동치 황제가 친정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22살이나 된 고종에게 국가대권을 넘겨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흥선대원군은 종신 섭정이 되려 했다. 친정을 원하는 고종과 섭정을 고집하는 흥선대원군 사이에 권력 투쟁은 피할 길이 없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하루코 황후는 1849년에 태어났다. 1851년에 태어난 명성황후보다 두 살 위였다. 하지만 혼인은 명성황후보다 2년 늦게 했다. 명성황후는 1866년에 16살의 나이로 혼인했지만 하루코 황후는 1868년에 20살이 되어서야 혼인했다. 하루코 황후가 메이지 천황을 처음 본 때는 1867년(고종 4) 6월 27일(양력)이었다. 결혼하기 1년 반쯤 전이었다. 그날 오후 1시쯤에 하루코 황후는 교토 어소의 학문소에서 메이지 천황을 만났다. 둘은 찬합 요리로 함께 식사했다. 사실 그 자리는 맞선 자리였다. 그렇지만 대등한 입장에서의 맞선은 아니었다. 맘에 들면 배우자로 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거절할 수 있는 권한은 메이지 천황에게만 있었다. 하루코 황후는 그저 선택되기만을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하루코 황후를 만나본 메이지 천황은 첫눈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다. 천황의 배우자는 이런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1부 중에서 - 미모와 지성을 갖춘 하루코 황후(힘을 얻은 천황가)
밤낮이 뒤바뀐 고종과 왕비 민씨의 생활습관은 결과적으로 왕비 민씨의 내조활동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고종과 왕비 민씨는 한밤중에 정치문제와 국정문제를 의논할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밤늦은 시간에 사사로이 신료들을 불러 밀담을 나눌 수도 있었다. 그 자리에는 사관도 없이 오직 고종과 왕비 민씨만 있을 뿐이었다. 아직 어린 세자도 가끔 참석하기는 했지만, 밤잠이 없는 세자가 부모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해서 함께 있는 것일 뿐이었다. 이렇게 사사로이 부름을 받고 들어온 신하와 고종, 왕비 민씨 사이에 오고간 밀담에 의해 중요한 정치문제 또는 국정문제가 결정되곤 했다. 당시 궁궐에서 있었던 한밤중의 밀담을 사람들은 별입시(別入侍)라고 불렀다.
별입시란 말 그대로 특별한 입시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입시와 별입시는 여러 측면에서 달랐다. 우선 장소가 달랐다. 보통의 입시는 외전 즉 정전이나 편전에서 이루어지지만 별입시는 내전에서 이루어졌다. 내전 중에서도 왕비 민씨가 머무는 내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고종 친정 후의 별입시는 왕비 민씨의 국정 참여를 위한 별입시였다.
2부 중에서 - 밤에 피는 정치의 꽃(왕비 민씨의 별입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