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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64231586
· 쪽수 : 320쪽
책 소개
목차
산타가 오지 않는 집
웃음 가면, 좋은 엄마 가면
‘엄마’를 버리다
거짓말쟁이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역자 후기_ “언니는 착한 아이야!”
리뷰
책속에서
“간다.”
나는 말했다. 이것만은 꼭 말해야 한다.
“너는 나쁜 애가 아니야.”
간다는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생님은 알아.”
다시 한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
“너는 나쁘지 않아.”
간다가 믿어준다면 백 번이라도 말해 줄 수 있다.
“너는 나쁜 짓 한 게 없어.”
내가 이렇게 말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안다.
“넌 착한 아이야.”
언제나 반 아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는 간다. 운동장 구석에서 친구가 와주기를 기다리는 간다. 모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모두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해서 즐겁게 잘 지내는 걸 좋아하는 간다. 오쿠마와 친구들이 싸웠을 때도 같이 아파하는 표정을 짓던 간다.
“넌 착한 아이야.”
나는 다시 말했다.
“선생님은 알아.”
간다의 기다란 속눈썹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선을 그으며 천천히 지면으로 떨어진다.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나뒹굴고 있다. 벚나무 잎이다. 나무가 빈약해서 잎사귀도 작다. 간다의 어깨가 떨린다. 내가 안아 줘도 될까. 사실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다. 간다가 진짜 바라는 것은 내가 아니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도 그럴 수 없다면.
나는 조심스럽게 팔을 뻗었다. 간다가 놀라지 않도록. 나는 간다를 안아 주었다. 보기보다 더 납작하고 얄팍한 몸. 이런 몸으로 그 커다란 덩치의 남자를 상대해야 한다니. 간다는 떨고 있었다. 들척지근한 땀 냄새가 났다. 줄곧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간다. 나는 냄새와 함께 간다를 꼭 안아 주었다.
나는 무능한 선생님이다. 싸움도 왕따도 막지 못하는 한심한 선생님이다. 하지만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내일도 학교에 오자. 이 아이를 위해서 오자. 해가 진 하늘에는 달도 떠있지 않았다.
― 「산타가 오지 않는 집」 중에서
그때 스펀지 찻잔을 들고 있던 내 손으로 공이 날아왔다. 찻잔이 마룻바닥으로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미지근한 홍차와 함께 찻잔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어느 사이에 스펀지 배트와 공으로 야구놀이를 시작했던 모양이다. 아야네는 공을 던진 포즈 그대로 얼어붙었다. 히카루가 배트를 들고 있는 걸 보니 아야네가 던진 공을 치는 데 실패한 모양이다. 공은 나의 손에 맞고 미끄럼틀을 잡고 서 있는 하나 짱 발 아래로 굴러갔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일어났을 뿐이다. 그런데…….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아야네는 갑자기 큰 소리로 말하며 머리를 양손으로 감싼 채 그 자리에서 몸을 웅크렸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거실은 꽁꽁 얼어붙었다. 내 양말만 미지근한 홍차에 젖어 따뜻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밝혀질 날이.
“아무튼 요란을 떤다니까.”
그래도 얼버무리려고 말을 꺼냈다. 그런 나를 하나 짱 엄마가 정면에서 껴안았다. 파스텔 옐로우 덩어리가 나를 껴안았다. 남편도 이렇게 꼭 안아 준 적은 없다. 웃음의 조각들을 긁어모으고 있던 내 얼굴에 흰머리가 삐죽삐죽 자란 하나 짱 엄마의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이 닿았다. 따가울 정도로 두껍고 뻣뻣하다.
“학대받았죠? 나도예요. 그래서 알아요. 얼마나 힘들었을지…….”
하나 짱 엄마는 둔감하지 않았다. 전부 보고 있었다. 아야네의 허벅지에 난 손가락 자국을. 목덜미의 퍼런 멍을. 가슴 앞에서 손을 포개는 아야네의 버릇을. 공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야네가 나와 손을 잡지 않고 거리를 두고 걷는 것을.
― 「웃음 가면 좋은 엄마 가면」 중에서
초등학교 3학년 겨울이었다. 학교에서 수학 시험지를 나눠 주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70점. 나에게 불길한 숫자 7. 빨간색으로 쓰여 있었을 70이라는 숫자가 내 기억 속에서는 지금도 까만색으로 남아 있다. 곱셈 계산법을 잘못 알았는지 마지막 여섯 문제가 전부 틀렸다.
“이상하네, 계산법을 잘못 알았나?”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이제는 이름도 잊어버린 그 선생님의 입가만 기억난다. 그때 선생님은 태평하게 웃고 있었다. 자신이 매긴 점수로 제자가 어떤 꼴을 당할지도 모른 채.
나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점수가 씌인 부분만 찢어서 꼬깃꼬깃 구겨 공원 쓰레기통에 버렸다.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미와를 재우고 있었다. 미와가 낮잠을 자는 동안에는 야단치지 않는다. 나는 안심하고 시험지를 내밀었다.
“책상 속에 넣었는데 꺼낼 때 걸려서 찢어졌어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미와가 잠이 깨지 않을까 걱정 될 만큼 요란하게 심장이 콩닥거렸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시험지를 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나는 안심했다. 어리석게도 엄마가 점수를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일어나 주방으로 가며 말했다.
“가요, 이리 와.”
속삭이듯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간식이라도 주는 줄 알았다. 엄마 옆으로 뛰어가자 갑자기 나를 잡고 내 목을 졸랐다. 나는 팔을 허우적대며 버둥거렸다. 테이블 위에 있던 물건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났다. 컵이었는지 차가운 물방울이 뺨에 튀었다. 숨이 막혀 발버둥 치면서도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가 깜깜해진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린다.
“너 같은 애는 죽는 게 나아.”
‘이제 됐어. 죽어도 좋아.’ 그렇게 생각하자 모든 것이 깜깜해졌다. 그때 으앙, 하고 울음소리가 들렸다. 귀에 익은 울음소리. 미와다. 미와의 울음소리다. 나는 눈을 뜨며 고통스럽게 기침을 했다. 바닥에 엎드려 기침을 하다가 학교에서 먹은 급식까지 토했다.
“가요 짱, 가요 짱.”
미와는 울고 있었다.
그 소리가 어둠을 몰아냈다. 나는 밝은 빛 속에 있었다. 눈이 시려 아플 만큼 눈부신 빛이었다. 미와가 나를 살렸다. 엄마의 손에 죽을 뻔한 나를.
― ‘엄마’를 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