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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64476284
· 쪽수 : 630쪽
· 출판일 : 2020-11-13
책 소개
목차
제5부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30장 | 해고, 사표, 면접을 반복하다
31장 | 삼총사 친구들과의 우정과 공사판 막노동 시작
32장 | 평화시장의 젊은 베르테르가 되다
33장 | 소설 형식의 자기고백서를 집필하다
34장 | 박정희 대통령과 근로감독관에게 편지 형식의 진정서를 쓰다
35장 | 허리우드 키드 전태일, 충무로의 단역배우가 되다
제6부 ╻ 생존의지
36장 | 전태일의 신앙고백과 종교적 신념
37장 | 모범업체 ‘태일피복’의 설립 착상과 계획
38장 | 348명의 직원을 두는 모범업체 CEO의 꿈과 좌절
39장 | 현실과 소설 사이, 행동하는 소설가의 꿈
40장 | 잦은 철거에 맞춰 오히려 점점 넓어지는 판잣집 주거 공간
제7부 ╻ 죽음의 결단
41장 | 삼각산 임마누엘수도원(修道院) 건축공사 헌신과 죽음의 결단
42장 | 임마누엘수도원 하산과 투쟁의 시작
43장 | 삼동회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투쟁하다
44장 | 분신 항거 1주일 전의 행적들
제8부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45장 | 1970년 11월 13일, 낮 1시 40분, 횃불을 들다
46장 | 엿새 동안의 영안실 투쟁: 1970.11.13.(금)~18일(수),
14일(토), 분신 항거 이튿날
제9부 ╻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47장 | 15일, 분신 항거 셋째 날
48장 | 16일, 분신 항거 넷째 날
49장 | 17일, 분신 항거 다섯째 날
50장 | 18일, 분신 항거 여섯째 날
덧붙임 ╻ 못다 한 이야기
I. 장례식 전후의 국내 주요 집회와 시위들
II. 전태일 분신 항거 현장에 대한 이견 논박
III. 분신 항거를 보도한 신문 기사들과 일기장 도난사건
IV. 전태일 일대기와 신상옥 감독
V. 분신 항거, 10.26 사태의 도화선이 되다
VI. 전태일의 분신 항거와 북조선(북한)의 반응
VII. 전태일 사진과 유서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제 전태일은 자신이 오금희에 대한 사랑에 괴로워하면서도 시들어 가는 평화시장의 동료들과 어린 여공들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끼며 그들을 하루빨리 고통에서 구출해 주어야 한다는 일념에 가득 차 있었다. 아울러 문학청년으로서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문제에 대해 자신이 품고 있던 모든 생각들을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자기고백 형식으로 연이어 작성했다. 여기에 수록된 4편의 미완성 소설 초안들은 말 그대로 완성되지 않은 초안들이 대부분이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약간 난해하거나 조악한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전태일로서는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소재로 해서 어떻게 하든 완성하려는 시도가 엿보였고 최선을 다해 소설 초안을 작성했다. 그러나 시간적인 제약과 소설 창작 경험 부족으로 인해 거의 초안 서두에서 모두 중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이 시기에 완성된 소설 초안 1은 ‘가시밭길’이라는 제목인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전태일의 소설 초안이다. 완성된 소설 초안 1은 <사랑이라는 차가운 수갑>(1969.11)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정리해 보았다. ‘준오와 정희의 다정한 데이트’, ‘준오와 정희의 이별’, ‘정희에게 보내는 준오의 편지’, ‘준오의 사망 관련 신문기사’ 등 크게 4단원으로 나누어지는 이 소설 초안은 마치 자기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하듯 섬뜩할 정도로 자신의 앞날을 내다봤다. 주인공 준오가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것과 주인공의 주검이 성모병원으로 옮겨지는 것과 주인공의 사인이 왜곡되는 것 등은 실제로 전태일의 죽음 전후에 발생했던 실화들이었기 때문이다.
<33장 _ 소설 형식의 자기고백서를 집필하다> 중에서
1970년 새해 벽두(1월 초)에 작성된 것으로 확인된 이 글은 이미 전태일이 투쟁의 각오 즉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며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그는 올해와 같은 내년을 남기지 않으려는 굳건한 마음을 품고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이 품은 생각조차 정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회 정화의 선구자가 되려고 하는가를 자책한다. 전태일은 이 사회의 선구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작년(1969년)까지 살아온 그의 여정도 이미 선구자적인 삶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나이 어린 청년 선구자는 엄동설한의 혹한도 참아야 했다. 주어진 고난과 역경이 아무리 무겁고 아파도 반드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만 했던 것이다. 전태일은 이 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죽음의 십자가를 달게 지고 가야 한다는 결단이 보인다. 아울러 주기도문을 묵상하며 기도를 한다.
<36장 _ 전태일의 신앙고백과 종교적 신념> 중에서
전태일은 자신이 일하던 한미사(韓美社)와 중앙피복(中央被服)을 연속으로 그만두고 그 후 중앙시장에 있는 형제사(兄弟社)에 취업하였으나 그곳에서 4개월 정도 재단사로 일을 하다가 결국 또 그만두고 쉬게 된다. 이때 전태일은 잠시 쉬는 공백 기간에도 임시직으로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돈벌이를 하였는데 그 시기가 바로 1968년 12월경이었다. 그 무렵에 모범업체 설립에 대한 최초의 착상을 시작한다. 근로기준법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다른 업주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살만한 모범적인 피복 제조업체 운영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자신이 평화시장에서 그런 업체를 직접 설립하려는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4~5개월 동안 전태일은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모범업체 설립에 대한 구상과 연구를 해 오다가 다음 해인 1969년 4월경에 구체적인 계획을 아래와 같이 착수한다. 상상 속의 꿈의 공장이 구체화되는 순간이었다.
<37장 _ 전태일의 신앙고백과 종교적 신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