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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65642237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8-10-3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과연 예술은 우리의 방황을 치유하는가?
1장. 회화의 히스테리적 욕망에 관하여: 베일의 전통
그림자의 그림자놀이로서의 회화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성상파괴
아케이로포이에토스
프라 안젤리코와 히스테리적 진리관
시모네 마르티니와 의미에 저항하는 이미지
말하는 이미지와 실어증의 이미지
2장. 회화의 우울증에 관하여: 팔루스의 전통
환멸의 시대
세계라는 환상과 성상파괴 운동
환상은 환상으로 극복된다
발튀스의 백일몽: 가장 은밀한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예수-팔루스에서 소녀-팔루스로
추락하는 팔루스의 전통
3장. 회화의 성도착과 승화에 관하여: 20세기의 수도사 발튀스
고정관념을 초과하는 아름다움의 힘
초과하는 아름다움이 도달하는 곳
성스러운 고양이 미추
신성과 신성모독은 같은 것이다
사드, 물신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는 기술
궁정풍 사랑, 공백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는 기술
결론: 반복은 반복으로 극복된다
에필로그: 진리의 전염병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예술작품이 치유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다. 그것은 우리를 더 아프게 해야 하고, 더 방황하도록 해야 한다. 아름다움의 권력을 더 이상은 신뢰할 수 없다는 불신감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린 끝에 옳고 그름이라는 윤리적 판단에 대한 확신마저 무너져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를 지배하던 모든 종류의 확신이 단지 현재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의 효과에 불과했다는 깨달음 속에서 환멸의 구덩이로 던져져야 한다. 건강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그런 미술을, 문학을, 음악을, 종교를, 정치를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선언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예술이 분명히 있다.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예술들의 계보학, 불손한 예술적 욕망의 계보학이다.
- 프롤로그: 과연 예술은 우리의 방황을 치유하는가?
제욱시스의 그림은 이미지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일종의 덫이다. 그림은 자신의 아름다움과 사실성을 자랑하며 관객의 시선이 요구하는 쾌락을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응시의 욕망을 진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라시오스는 다르다. 바로 여기에 회화에 대한 또 다른 인식의 가능성이 숨겨져 있다. 파라시오스가 그린 것은 베일이며, 이것이 가리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그 때문에 경쟁자 제욱시스는 그것을 눈으로 감상하는 대신 걷어젖히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파라시오스가 그린 것은 시선의 대상이 아니라 시선의 폐지, 또는 불가능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세계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리는 그림이었다. 따라서 관객의 시선은 그려진 이미지에 머물 수 없다. 관객은 자신 앞에 제시된 불가능성을 제거하고 그 너머를 보려는 욕망에 사로잡힐 뿐이다.
- 1장. 회화의 히스테리적 욕망에 관하여: 베일의 전통
히스테리의 욕망 구조는 그렇게 현실의 표면을 비틀어 균열을 발생시키고 그곳에 벌어진 구멍을 통해 아버지를 불러내는 문명의 형태다. 이에 대해 서구 중세 예술가들이 몰두했던 것은 이를 어떻게 신비롭게 비틀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슬람 문명의 엄격한 성상파괴 전통과는 다르게, 로마와 비잔틴의 기독교 예술가들은 이미지를 사용해 이미지를 넘어서는 방법을, 가능하면 매혹적으로 이미지를 비트는 방식을 택했다. 이처럼 우상을 파괴하기 위해 우상을 사용하는 기이한 전통은 19세기 말에 또다시 서구 미술사에 출현하게 된다.
- 1장. 회화의 히스테리적 욕망에 관하여: 베일의 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