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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언론비평
· ISBN : 9788965700722
· 쪽수 : 272쪽
책 소개
목차
여는 글 | 민주시민으로 살기 위한 올바른 주권 사용법
1부 뉴스 제대로 읽기
뉴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뉴스는 생선이다 | 뉴스는 관계다 | 부적절한 관계와 합리적 의심 | 의심의 합리성
언어의 감옥에 갇힌 언론
언론이 갖다 붙인 이름 | 모래성 속의 기둥 | 판단 착오의 원인 | ‘노 터치’와 ‘체벌’의 행간
원인 분석의 오류와 억울한 희생양
결과 안에 숨어 있는 원인 | 이빨 빠진 원인 찾기 | 부적절한 관계의 피해자
조건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최소한의 조건 | 사실과 조건의 부조화 | 조건에 대한 의심과 판단
적벽의 변수와 어긋난 예측
복잡다단한 조건 | 무리한 예측과 전망 | 헤아리지 못한 변수, 어긋난 상수 | 작용과 반작용의 변수
계획된 죽창 vs 우연한 죽창
근거가 곧 증거다 | 미약한 증거와 성급한 일반화 | 절대수치가 말하지 않는 것 | 객관성, 대표성, 신뢰성
희망버스를 보는 두 가지 잣대
판단 기준이 되는 전제 | 임의의 전제도 참이어야 한다 | 있는 대로 보기, 보고 싶은 대로 보기 | 정파적 논리와 차단의 벽
[ 정리 ]
2부 뉴스를 둘러싼 것들
사건 지도에서 뉴스 좌표 찾기
뉴스 속 퍼즐 조각 맞추기 | 민간인 불법사찰의 구도 | 성격, 역학관계, 여론 | 평범한 은행원과 빨갱이 사이 | 정당한 고발인가 정파성인가
피플오션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공방전
시대와 민심의 긴밀한 관계 | 사각 링 위의 공방전 | 민심 들끓게 만든 ‘나홀로 특채’ | 강렬하지 못한 이슈 | 너는 얼마나 깨끗한데?
선수로 뛰어드는 언론
언론과 특정 세력의 긴밀한 관계 | 세력 대결에 개입하는 언론 | 판세를 바꾸려는 꼼수
부처님 손바닥과 같은 민심
‘내 문제’와 ‘그들의 문제’ | 민심을 우습게 본 결과 | 여론을 읽으면 앞날이 보인다
[ 정리 ]
3부 글쓰기의 최전선
논리적인 글쓰기의 기본 원리
읽기와 쓰기의 원리는 같다 | 관점은 곧 주제다 | 어디에 방점을 찍을 것인가? | 논리적 관계의 흐름 | 엄밀한 표현이라는 덕목
송곳과 과녁 먼저 만들기
진부한 글, 내달리는 글 | 무엇을 논증할 것인가? | 관점을 먼저 설정하라
곧게 뻗은 대나무처럼 쓰기
왜 논리적인 글을 쓰는가? | 논증의 과정 파악하기 | 자가당착과 논점 일탈
팽팽하게 펼쳐진 우산의 살
탄탄한 기둥 세우기 | 전제를 참으로 만드는 근거 | 복합적인 분석의 함정 | 전제는 근거에 의지한다
마디에서 마디로 가는 과정
글에도 마디가 있다 | 전제들 간의 교통정리 | 물고 물리는 전제와 주장
논리적 표현은 기교가 아니다
개념 구사의 엄밀성 | 개념과 개념의 관계 | 문장과 문장 간의 관계 | 표현은 기교가 아니다
[ 정리 ]
닫는 글 | 더 큰 세상에서 자유롭게 소통하기 위하여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사람들의 뉴스 ‘사용법’은 이성적이지도 않고, 비판적이지도 않다. ‘각종 문서’ 가운데 함정이 가장 많고, 정치적 함의가 가장 농후한 게 뉴스인데도 사람들은 이를 거르지 않는다. 뉴스 그 자체를 사실로 간주하고, 뉴스 행간에 숨은 의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어떤 뉴스를‘교리’로 삼고, 어떤 뉴스 생산자를 ‘교주’로 받든다.
뉴스를 이성적으로 곱씹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뉴스에 담긴 사실들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인지, 뉴스에 담긴 사실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언론의 정파성, 뉴스의 정치성이 갈수록 노골화되는 최근의 추세를 고려하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이 세상에 100% 완전한 진리는 없다. 100% 오류도 없다. 그 어떠한 것도 부분적 진리를 담고 있고, 부분적인 오류를 안고 있다. 따라서 뉴스를 이성적으로 곱씹기 위해서는 논리로 무장해야 한다. 이치에 합당한지를 따지는 방법으로 진리와 오류를 가려내야 한다. 뉴스에 함몰되는 게 아니라 한 발 떨어져 감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친다. 자기 생각에 부응하는 뉴스를 접하면 “참 통쾌하게 썼다”며 글 솜씨를 칭찬한다. 반대로 자기 생각과 다른 뉴스를 접하면 혀를 찬다. “그래, 너희들이 그렇지, 뭐” 하며 냉소를 보낸다. 이렇듯 높고 두터운 성향의 울타리를 쳐놓고 뉴스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인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진보의 색깔을 띤 뉴스만,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보수의 색깔을 띤 뉴스만 받아들인다. 진보적인 논조를 지닌 뉴스도 보수적인 논조를 지닌 뉴스도 그 속에 오류와 왜곡이 담길 수 있는데도 이를 살피지 않고 자기 성향과 맞는 진보의 색채, 보수의 색채만을 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