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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65703433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16-07-01
책 소개
목차
1부 모든 것은 기울어진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다 _미황사
가장 먼 여행 _운문사
영혼의 구슬과 페르시아의 흠 _관음사
불일암은 잠언이다 _불일암
모든 것은 기울어진다 _수구암
오리 다리는 짧고 학의 다리는 길다 _은해사
아파야 새로운 것이 온다 _각연사
나비는 수평으로 난다 _원심원사와 석대암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해” _길상사
2부 모든 것은 사라진다
여시아문과 디아스포라의 불빛 _산방굴사
모든 것이 사라져간다 _봉원사
그리워할 대상 없어도 그리움이 사무치는 절 _부석사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뜨지 않은 별 _진관사
팔만대장경, 그 장엄한 언어의 숲을 찾아서 _해인사
이 세상에서 가장 여운이 긴 풍경소리 _정암사
네 몸속에 절 하나 지어보아라 _법흥사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달라 _상원사
서럽다. 화두 30년. _통도사
3부 기울어지다 사라진다
부처가 얼어 죽으면 경전이 무슨 소용인가 _봉정암
사찰로 가는 마음, 성찰로 돌아오는 마음 _송광사
가장 슬프고 애틋한 절 _운주사
피었으므로, 진다 _선운사
섬진강에서 화엄사 종소리를 들어보았는가 _화엄사
바다처럼 출렁이다 산처럼 무너지다 _보리암
살아 있는 부처의 눈 _보문사
저녁 산사에서, 묵념 _낙산사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장엄한 법당 _‘팽목항법당’
리뷰
책속에서
미황사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동백숲을 향해 내려갔다. 금강스님이 곱게 꺾어가라고 허락한 한 송이 동백꽃이 눈에 아른거렸다. 2010년 3월 10일 법정스님 입적 전날, 금강스님은 가수 노영심을 통해 눈 맞은 미황사 동백꽃과 매화를 병원 중환자실에서 폐암으로 투병 중인 법정스님에게 전했다. 자신의 고향인 먼 해남에서 온 붉은 동백꽃을 보며 법정스님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못 가니 그대가 왔구나. 멀리서 오느라 고생 많았다.”
누운 채 물끄러미 보던 법정스님의 눈시울이 조금씩 젖어갔다. 어쩌면 평생 좇고 좇아온 화두 한 송이가 죽기 전날에야 비로소 무심한 듯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심하도록 서러운 화두 56년이라면, 차라리 꽃을 꺾는 대신 산을 옮기거나, 다리를 건너는 대신 강을 옮기는 게 더 불이(不二)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불일암은 부사와 형용사가 없는 절이다.
내 고교 시절인 1970년대 후반의 송광사 불일암은 점 이전의 물방울 혹은 눈부처 같은 절이었다. 보통 한 절의 주지스님이 유명해질수록 절의 살림살이도 점, 선, 면으로 세속의 영역을 확장해가기 마련이다. 선은 소유의 경계선을 긋는 토대이고 면은 성채를 지어 군림하는 토대이다. 다행히 법정스님의 인기가 절정에 달하고 스님이 입적한 이후까지도 불일암은 동백꽃이 떨어지는 순간처럼 간명하고 간결하다. 단지 열반 이후 부쩍 늘어난 추모객들의 편의를 위해 대숲 오솔길을 조금 단장해 ‘무소유길’로 이름 붙인 것만 달라졌을 뿐이다. 난 그 ‘무소유길’을 소유욕으로 걷지는 않는지 거듭 스스로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