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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명사에세이 > 문인에세이
· ISBN : 9788965743422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12-05-30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기까지
언제나 첫 마음 _천왕봉에서 성삼재까지
흔들리며 가는 삶 _신풍령에서 덕산재까지
절망까지도 재산이다 _덕산재에서 삼도봉까지
바닥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_우두령에서 괘방령까지
쪽동백나무에게 배우다 _괘방령에서 추풍령까지
오늘은 오늘에 단 한 번뿐인 하루 _추풍령에서 큰재까지
산 너머 산, 삶 너머 삶 _큰재에서 신의터재까지
오브라디 오브라다 라이프 고우스 온 _도래기재에서 늦은목이까지
약자가 곧 승자다 _대관령에서 매봉까지
아름다워서 다르고 달라서 아름다운 _저수령에서 차갓재까지
지나간 만큼 좋다 _피재에서 댓재까지
우리 동네 통장 쌀집 아저씨의 행복 _죽령에서 늦은목이까지
조오흘 때다! _화방재에서 도래기재까지
버리고 비워야 얻는 반짝임 _댓재에서 백복령까지
나는 너의 마지막 사람 _삽당령에서 닭목령까지
당신만의 백두대간 _백복령에서 삽당령까지/닭목령에서 대관령까지
고통은 가치가 있는가? _저수령에서 죽령까지
자존은 소유되지 않는다 _화방재에서 피재까지
길섶에서 보물을 찾다 _진고개에서 두로봉까지
깊은 눈맞춤이 이루어지는 순간 _조침령에서 단목령까지
길의 사랑, 사랑의 길 _한계령에서 마등령까지
남기고 가져갈 것은 추억뿐이다 _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
수수하고도 사소한 기적 _대간령에서 진부령까지
백두대간의 1~16차 구간|인용 시 목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백두대간 종주의 1차 산행을 지리산에서 시작했다면 우리는 내내 지리산에 붙매여 다른 산들이 갖는 각각의 아름다움과 흥취, 고통과 시련의 의미를 헤아려 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작은 산들을 오르내린 경험이 모이고 쌓여서야 비로소 ‘큰 산’ 앞에 주눅 들거나 경망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윤기가 반드르르한 검은빛 깃털을 자랑하는 오동통한 지리산 까마귀들이 홰쳐 오를 때 마음속으로 영혼들의 이름을 부를 여유를 갖고, 스키니 팬츠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관광’하러 오는 것으로도 모자라 케이블카를 타고 ‘정복’하겠노라는 오만방자한 도발에 분노하는 건 우리가 지리산을 닮은 숱한 산들을 넘어왔기 때문이다.
지리산은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만드는 곳이라고 한다. 지혜롭기 위해서는 우선 어리석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나는, ‘큰 산’ 앞에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리하여 시인은 단호히, 그리고 간곡하게 말한다.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고. 어리석음과, 그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그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꾹 눌러 참는 어리석음을 그럭저럭 이러구러 견딜 만하다면.
-「언제나 첫 마음」 중에서
어느 지점에서는 1시간에 3.7킬로미터까지 걸을 만큼 평탄한 구간이었다. 다행이 일기예보가 어긋나 주어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또한 따뜻했던 지난주 날씨 덕택에 무릎까지 쌓였던 눈도 다 녹아 있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산행은 힘들었다. 25킬로미터라는 거리를 하루에 주파한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발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무릎이 후들거렸다. 스틱을 잡은 팔에 힘이 빠지고 종내는 머리마저 멍해졌다.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말 그대로 산 너머 산이었다. 너무 힘들면 대화도 끊긴다. 바로 대여섯 발자국 앞에 누군가 가고 있지만 따라가 말을 건넬 기운이 없다. 그저 침묵 속에 오롯이, 고독 속에 가만히 침잠한 채 바람처럼 스쳐가는 상념들을 좇을 뿐이다.
-「산 너머 산, 삶 너머 삶」 중에서
산행이 30차를 넘어가면서 내가 얼마나 변했는가는 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초반의 산행은 오로지 내가 자아내고 지어낸 숱한 물음으로 번잡했다. 산에게 삶을 묻고 삶에게 산을 묻느라 나는 공연히 수다스럽고 경망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산에서 진정한 마음의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낮추고 때로 침묵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입을 다물면 된다. 값없는 질문과 덧없는 답변을 버리기만 하면 된다. 입을 다문 채 가만히 나무를 바라보고 조용히 구름을 쳐다본다. 길을 떠나기 전에 품었던 세 가지 의문은 길을 걷는 동안 저절로 풀렸다. 두타-청옥은 겁을 집어먹고 꺼릴 만큼 엄청난 ‘무릎 타격 구간’은 아니었다. 돌사닥다리와 너덜이 많지만 무릎보호대를 단단히 조이고 내리막에서 스틱을 활용해 걸으니 어지간히 견딜 만했다. 가파른 기울기와 낭떠러지가 만만찮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림 속의 뾰족뾰족한 바늘산 같은 건 없었다.
-「버리고 비워야 얻는 반짝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