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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한국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65745549
· 쪽수 : 428쪽
· 출판일 : 2016-05-24
책 소개
목차
1장 상실된 공간
2장 구해줘
3장 이중 노출
4장 낯익은 환영
5장 태초에
에필로그_탄생
작가의 말
참고 도서
제12회 세계문학상 심사평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다 버렸다.”
석주는 카메라 앞으로 돌아갔다. 암막천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이젠 붉은 소파밖에 없어…….”
스승이 웅얼거리듯 내뱉는 소리에 재혁은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15년 전 그 사건 이후, 석주는 현실을 피했다. 찍을 수 있으면서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아니, 누르긴 했다. 오직 저 2인용 붉은 소파에 앉는 사람들을 향해서만 석주는 셔터를 눌렀다. 붉은 소파와 거대한 뷰카메라를 싣고 부평초처럼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흑백사진을 찍어 옛날 방식으로 일일이 소파에 붉은색을 입혔다.
누군가를 찾기 위하여.
문제는 그 단서가 전혀 없다는 데 있었다. 스승은 자신의 감만 믿고 뛰쳐나가 15년을 허비했다.
―「1장 상실된 공간」 중에서
딸이 태어난 건 기적이었다. 석주는 딸의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이 석주의 데뷔작이 되었다. 석주는 사진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나, 사람들은 알아서 그 사진에 ‘탄생’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런 석주였기에 딸의 죽음을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의 손으로 어떻게든 사건을 매듭짓고 싶었다. 그래야만 다음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딸을 죽인 누군가를 잡겠다는 막연한 목표로, 딸이 만든 붉은 소파를 갖고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하여.
15년이 지나도록 추모식은 끝나지 않았다. 슬픈 마음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범인을 잡았다는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 추모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또 303호다. 게다가 딸이 죽었던 집에서 누군가 죽었다.
―「1장 상실된 공간」 중에서
사진작가의 마음속 공소시효는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이후로도 사진작가는 붉은 소파를 갖고 다닐 겁니다. 매일 사진을 찍을 겁니다. 범인이 잡히길 바라며, 그 범인을 만나 묻기 위하여, 왜 하필 내 딸이었냐고, 내 딸한테 꼭 그래야만 했냐고, 그리고…… 내가 오랜 시간 사진을 찍으며 당신을 찾는 동안 진심으로 사죄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느냐고.
그 사진작가가 한 사건을 우연히 접했습니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 하지만 범인을 알아버린 사건입니다. 범인의 정체를 들은 사진작가는 깨닫습니다.
아아, 당신도 나만큼이나 괴로웠겠구나…….
사진작가는 생각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죽인 그 누군가도 분명 괴로울 것이다. 너무 괴로워서 어딘가에서 자신의 몸 한구석에 주름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당신처 럼, 나의 그녀들처럼 소리치고 있을 것이다, 소브 무아, 제발 날 구해줘, 라고.
―「2장 구해줘」 중에서
“딸아이 사건의 시효가 끝나면, 모든 걸 관두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법이 바뀌었다지. 더 이상 시간의 제약은 없다고……. 그 말을 듣고 처음엔 혼란스러웠네. 나는 15년간 붉은 소파에 수많은 사람들을 앉혀왔어. 범인이 앉는다면, 알아볼 자신이 있었네. 하지만 결국 못 찾았어. 모든 걸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시효가 없어졌다는군. 처음엔 다시 붉은 소파를 갖고 여행을 떠날 셈이었네. 그런데 말이지, 이상한 일이 생겼어. 나는 분명 붉은 소파를 갖고 여행을 떠나려고 했는데 내 발이, 이곳으로 향한 거야. 라이카 3F를 들고 사진을 찍게 된 거야.”
“무엇을 찍으시려고요?”
“나도 몰라. 하지만 그냥…… 찍어야 할 거 같아. 막연히 그런 예감이 들어. 그래서 자네를 부른 걸세. 자네는 현장 감식을 한다니까 분명 현장에 가면 뭔가 내가 눈치채지 못한 것들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래서 처음엔 이 모든 걸 자네한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막상 자네를 보니 입이 안 떨어지더군. 어쩐지 자네 입에서 지난 15년간 뭘 하다 이제 와서 그러냐는 핀잔이 나올 것만 같아서…….”
―「3장 이중 노출」 중에서
석주가 이곳을 찾은 것은 보름 전이다. 그때에도 사람들은 저렇게 바쁘게 걷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 사이에서 석주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때 나영의 눈에 붉은 소파가 보였다.
정면의 카페, 거리가 마주 보이는 위치에 붉은 소파가 있었다.
나영은 그리로 뛰어들어 갔다. 바로 붉은 소파로 다가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유심히 살폈다.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색깔과 디자인이 비슷하지만 은혜의 붉은 소파를 따라잡기엔 한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호텔에서 나와서 우연히 이 소파를 본 석주에게, 그런 사소한 차이는 중요치 않았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정석주는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이 소파에서 죽은 딸, 이 소파에서 죽은 누나, 그리고 이 소파에서 잠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생각했을 것이다. 정석주는 내가 죽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자신이 죽는다면, 내가 무너지리란 사실도 알았을 거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딸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다. 정석주는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때, 이 붉은 소파가 보였다. 그래서 정석주는…….
“사진을 찍었을 거야. 붉은 소파에 앉은 사람들의 사진을.”
―「4장 낯익은 환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