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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9242500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5-05-20
책 소개
목차
첫 키스처럼 조심스럽게_김의경
이혼을 앞두고 열애중_김하율
첫 졸업_조영주
마이 퍼스트 레이디_정해연
추천의 글
리뷰
책속에서
친구들이 홍천으로 향하는 차에 올라탔을 즈음, 하림은 학원 가방을 멘 채로 민영 아줌마와 전화 통화를 하는 엄마에게 공손하게 물었다.
"엄마, 저 홍천에 가면 안 돼요? 다녀와서 배로 열심히 공부할게요."
엄마가 핸드폰 송화구를 막은 채로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안 된다고 했지. 그렇게 가고 싶으면 네가 운전해서 가든가."
하림은 젖 먹던 힘을 다해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면허가 없잖아. 나중에 엄마가 아프면 절대로 병원에 태워다주지 않을 거야!"
- 〈첫 키스처럼 조심스럽게〉 중에서
"결혼한 적이 없는데 혼인신고를 어떻게 해요?"
나는 따지듯 물었다.
"결혼식은 안 해도 혼인신고는 할 수 있죠."
딴소리하는 직원이 얄미워서 머리카락을 한 움큼 뽑아주고 싶었다.
"저는 혼자 산다고요. 부모님 외에 누구랑도 살아본 적이 없어요. 여자 친구도 없는데."
흥분해서 목소리가 높아진 나를 직원이 동요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진상 고객에게 이골이 난 듯한 무표정이었다.
"7년이 지났는데 모르셨다고요?"
나를 쳐다보는 직원의 눈빛에는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지, 하는 잔잔한 의문이 고여 있었다. 나는 내 이름 옆, 배우자 칸의 이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불안해졌다.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벌렁벌렁거렸다. 점심을 마친 직원들이 하나둘 들어와 자리를 채웠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자 딱해 보였던 건지 아니면 교대로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해서 그런 건지 단정하지만 머리숱은 없는 직원이 일어나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러고는 굉장한 팁을 주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경우 최선의 대응책은 말이죠."
잠시 사이를 두고 그가 말을 이었다.
"전문가를 찾아가는 겁니다."
- 〈이혼을 앞두고 열애 중〉 중에서
"기억나게 해드릴게요."
나는 다시 한번 속삭인다. 손을 움직여 커튼을 친다. 윤선자의 어깨가 움찔한다. 입을 천천히 벌린다. 뭔가 말을 하려는 것 같다. 나와 두 눈을 마주친다.
"날 알아보겠어요?"
윤선자가 허우적거리며 커튼으로 손을 뻗는다. 이 반응은 뭘까? 윤선자가 그때의 원장이란 뜻일까? 아니면 그저 치매노인의 집착에 불과할까.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지금, 윤선자가 괴로워하는 모습에서 강렬한 무언가를 느꼈다.
나는 예상치 못한 감정에 당황했다. 급히 커튼을 걷어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상황을 정리한 후 그 자리를 피했다. 커튼을 잡았던 양손을 들여다보며 방금 느낀 감정을 되새겼다.
이건 아마도 '그것'인데……. 하지만 왜 그 감정을 느낀단 말인가?
나는 이 감정을 믿을 수 없었다. 다시 윤선자에게 다가가 이 감정을 실험하고 싶었다.
- 〈첫 졸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