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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65746461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18-03-2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_ 오래된 도시 서울의 무구한 기억들
1장 왕실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
‘왕의 남자’는 어떻게 살았을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그 여자와 그 남자가 헤어졌을 때
2장 오백 년 도시 산책
어쩌면, ‘헬조선’과 ‘탈조선’의 유래
가파른 길 위, 조용하지만 뜨거운 책의 집
끓는 물에 삶아 마땅한 죄
너의 그 사랑이 잠긴 못
3장 삶의 얼굴은 언제나 서로 닮았다
눈물은, 땀은, 모든 지극한 것들은 왜 짠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죄, 그리고 벌
세상을 그리다
4장 사랑도 꿈도 잔인한 계절
어쩌다 사랑은
영욕의 세월이 빚은 예술혼
태양의 뒤편, 빛과 그림자
그토록 차갑고 투명한 신의 선물
5장 한 발자국 바깥의 이야기
그 여자의 두 얼굴
아픔이 아픔을 가엾게 여기나니
맑고 질펀히 흐르다
내 자취에는 풀도 나지 않으리라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높다란 빌딩 앞 화단 한구석에 오늘 내가 찾아온 장악원 터 표석이 덩그마니, 여느 표석들이 그러하듯 생뚱맞고도 무심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돌은 차갑다. 돌 위에 새겨진 말도 딱딱하다. 아무리 거듭해 읽어도 감흥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연을 모르면 그저 돌덩어리에 불과한 표석을 휙휙 스쳐 지난다. 어디 표석뿐인가? 거의 모든 역사가 그러하다.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해 외우는 역사는 현재의 삶과 전혀 무관한, 시간의 박제일 뿐이다.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한다. 돌덩어리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건조한 설명을 곱씹는 대신 빌딩 앞 너른 터에 여러 개 놓여있는 벤치 중 하나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든 말든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 속에 빠져본다. 내가 역사를 읽고, 이해하고, 기억하는 방식은 그러하다. 수천 수백 년 전 바로 이곳에서 살았던, 이 땅을 밟고 지났을 사람들과 삶을 상상하며 그려내는 것.
―「‘왕의 남자’는 어떻게 살았을까?」중에서
숭인근린공원은 길을 경계로 둘로 나뉘어져 있다. 오른편 오르막길 위에 펼쳐지는 넓은 운동장을 우측으로 따라 돌면 장미 울타리 사이에 동망봉 표석이 있다. 그리고 다시 돌아나가 공원을 가로질러 왼편 끝까지 가면 후대에 지은 동망정이 나타난다. 전설에 의하면 단종과 헤어진 정순왕후 송씨는 시시때때로 동망봉에 올라 영월 방향인 동쪽을 바라보며 남편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동망봉에 서도 영월까지는커녕 동묘와 남산조차 시원스럽게 바라보기 힘들다. 아파트와 고층 빌딩에 가로막힌 시야는 헐벗은 봉우리 위에 홀로 서서 고통과 분노와 회한과 지독한 그리움을 곱씹었을 500년 전 그녀의 모습을 그려내기 어렵게 한다. 다시 상상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즐겁게 배드민턴 시합을 하는 공원 한구석에 앉아 어지러운 건물들과 번잡한 시간을 조금씩 지워내본다. 그녀가 홀로 살아남아 견딘 65년은 어떠했을까?
―「그 여자와 그 남자가 헤어졌을 때」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