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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작약

취, 작약

이진현 (지은이)
  |  
가하
2012-07-19
  |  
12,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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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작약

책 정보

· 제목 : 취, 작약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66473076
· 쪽수 : 560쪽

책 소개

이진현의 로맨스 소설. 온국의 왕제 진제강. 그의 마음을 흔든 여자, 위경여. 그러나 스스로 떠난 여자를 잊지 못하는 것은 안 될 말이다. 제 선택의 결과로 불행한 여자를 확인하는 것은 그나마 위안이 될까. 5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다시 만난 그들.

목차

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그 후 이야기
또 다른 이야기의 전조
글을 마치며

저자소개

이진현 (지은이)    정보 더보기
모년 4월 4일(음) 태어난 A형 황소자리. 가끔 몰아서 영화보기, 서점 구경가기, 괭이와 놀기를 좋아하며,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에 관심이 많다. 1998년 제3회 신영미디어 로맨스소설 공모전에서 ‘사랑할 때 이별할 때’가 당선되면서 작가로 입문하였고, 2001년 <제21회 간호문학상> 소설부문에 당선됐다. 출간한 소설로는 종이책으로 ‘정혼’, ‘기억의 저편’, ‘그대 그리고 나’가 있고, 2012년 현재 ‘보노보 프로젝트’, ‘경계를 넘다’를 출간 준비 중이다. 소통을 위한 작은 창을 이글루스에 열어두고 있다. 블로그 hyang2.egloos.com
펼치기

책속에서

“자, 잠깐만요.”

그가 등을 보인 그대로 멈춰 섰다. 천천히 그녀를 돌아보는 그의 눈빛에 경멸이 드러났다.

“왜? 싫다고 하더니 실은 원한다는 건가. 함께 밤을 보낼까?”

겨우 버티고 일어선 경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실히 그가 보기에도 욕정에 흔들리는 여자의 얼굴은 아니었다.

“그게 아니면?”

“나를 미워하죠? 나를 원망하는 거죠?”
비를 피하던 누각에서도, 신방에 들어온 후에도 경여는 예전과는 달리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다.

“미워하지. 원망해.”

그가 순순히 대답했다.

“그런데 왜 나와 혼인했어요?”

그의 말대로 굳이 혼인하지 않아도 그는 얼마든지 그녀를 취할 수 있었다. 어차피 아버지에게서 도망친 여자였다. 숨겨두고 제 원할 때 얼마든지 품어도 상관없는 여자였다.

“이 혼인, 정말 원해요? 원해서 하는 일이 맞아요?”

경여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물음이었다. 뜨겁다가 차갑다가 하는 그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원하지. 내게 안겨준 모욕을 얼마든지 되돌려줄 기회인데, 왜 내가 원치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허탈한 마음에 온몸을 긴장시켰던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혼인을 원하지만 그 이유는 그녀가 바라는 것과는 달랐다.

“다른 사내에게 빼앗기지도 않겠지만, 내 것이되 내 것이 아닌 여자! 그게 바로 위경여야! 호정엽이 찾아왔을 때 확실히 알았지. 위가의 부녀가 원했던 대로 왕이 되기 위해 돌아왔으니, 더는 도망가지 마! 그 자리에 있어.”

외롭고 쓸쓸하게, 그때 따라나서지 않았던 일을 후회하면서 시들어 죽게 만들고 싶은 충동!
엇나가고 비틀린 충동이 귀국 이래 종종 그를 사로잡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방을 나간 후 경여도 스르르 무너지듯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이유야 어떻든 당신이 이 혼인을 원해서 하는 거라고 하니 다행이에요. 경여는 그래도 작은 짐 하나를 덜어낸 듯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가 왜 이 원치 않는 혼인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전에는 마음은 주었으나 혼인하지 못했다. 이제 혼인은 하였으나 마음은 없다. 그래서 그의 곁에 있어도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과는 달리!

진제강은 위경여를 괴롭히고 핍박하며 말려죽일 작정이다.

어차피 경여는 그의 마음이 아니라면 이 혼인에서 잃을 게 없었다.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던 경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무거운 머리장식으로부터 혼인예복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가지런히 개키고 탁자 한 켠에 올려놓았다. 머리카락을 틀어 올렸던 장식을 뽑아내자 스르르 길고 윤기 흐르고 숱 많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두 번의 혼인! 한번은 원치 않는 사람과 또 한 번은 그토록 원하던 사람과!

외롭고 아픈데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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