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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일반문학론
· ISBN : 9788966551897
· 쪽수 : 648쪽
· 출판일 : 2025-05-19
책 소개
목차
여는 글 이름 없는 것과 정명正名의 사이에서
제1부 서론
1장 분단문학에서 제노사이드문학으로 _23
2장 무엇을 제노사이드문학이라 부를 것인가 _39
3장 제노사이드와 재현의 문제—가독성·고백·증언 _66
제2부 문학적 이행기 정의의 형성기 : 1972~1987
1장 가족의 위기와 망자의례라는 재현의 공간 _117
○ 가족이라는 표적 _117
○ 금지된 매장과 말해질 수 없는 기억 _131
○ 매장의 회복과 실패 _149
2장 ‘순경 각시’와 제노사이드의 젠더 _168
○ ‘순경 각시’와 여성의 위기 _168
○ 남성의 부재, 여성 주체의 재귀속 _181
○ 여성의 재현 공간과 제노사이드의 젠더 _193
3장 빨치산, 제노사이드와 국민의 경계 _213
○ 역사로서의 빨치산과 상상된 가족사 _213
○ 죄의식과 국민 되기 _222
○ 점령지와 해방구, 국가의 시험대 _233
제3부 민주화 이후 제도적 이행기 정의와 문학의 재현
1장 민주화 이후 기억의 범람과 재현의 정치 _249
○ 문예지 복간과 과거사 재현의 활기 _249
○ 기억의 범람과 반공주의의 퇴조에 대한 기대 _257
○ 국가로 회수될 수 없던 가능성들 _275
2장 소설과 구술사, 자전적 글쓰기의 전략 _284
○ 증언과 구술, 자기 재현의 양상들 _284
○ 재현의 공백과 확장 _295
○ ‘고백’에서 ‘증언’으로 _312
○ 훼손된 공동체와 소설가의 성장 _339
3장 제노사이드의 계보화와 해원(解冤)의 서사 _355
○ 이행기 정의와 소설형식의 변화 _355
○ 기억을 새롭게 쓰는 주체 _366
○ 괴물의 연대기와 외부화된 해원 _381
제4부 공식기억의 교체와 주체의 복권
1장 민주화가 품지 못한 것—외국과 외부, 내부와 내면 _395
○ 제도적 이행기 정의와 그 외부들 _395
○ 외국와 외부, 국가의 제도가 닿을 수 없는 자리 _400
○ 내부와 내면, 문화적 부인과 제노사이드의 심성 _413
2장 공식기억의 교체와 전도된 저항 _433
○ 신 공식기억의 등장과 역사부정론의 대두 _433
○ ‘섬의 반란’과 전도된 저항 _445
○ 탈이념적 피해자상과 우익의 소외감 _459
3장 소설의 개작과 또 다른 ‘기획자’를 복권하기 _475
○ 정본 만들기와 소설의 개작 _475
○ 제노사이드 재현의 확대와 구체화 _487
○ 좌익의 정치적 주체화와 아버지의 복권 _509
제5부 결론 _541
저자 후기 다시,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 _544
□ 참고문헌 / 556
□ 미주 / 574
□ 색인–작가 & 작품 / 640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 책은 ‘정명’의 과제를 향한 응답이다. 나는 이 책에서 제노사이드에 대한 문학적 재현을 ‘제노사이드문학’이라고 부를 것이다.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제노사이드가 20세기 세계문학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되었음에도, 국내외의 연구들에서는 제노사이드 문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문학적 재현들은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절멸수용소에 대한 서사가 다수를 차지해서 ‘수용소문학’으로 엮이거나, ‘비교될 수 없는 제노사이드’로서 홀로코스트만을 단독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한국문학 속 제노사이드의 재현 역시 한국전쟁이나 분단, 냉전이라는 거시적 구조에 대한 문학들 사이로 흡수되거나, ‘빨갱이 가족’의 천형을 짊어진 작가들 개개인의 비극적 체험으로 흩어진다. 그래서 제노사이드라는 20세기의 중요한 현상은 역설적으로 문학적 논의의 주요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는 동시에 홀로코스트의 절대적 위상과 이를 뒷받침하는 서구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여는 글’, 「이름 없는 것과 정명(正名)의 사이에서」 중)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자행된 제노사이드로 인해 가족과 친족 집단이 경험한 주요한 위기는 제사와 매장에 대한 반공국가의 금지였다. 제노사이드로 인해 살해된 자의 무덤을 만들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은 친족 의례의 질서에 따라서 이루어졌다. 자연히 이를 주도하는 것 역시 살해당한 이의 가족과 친족이었다. 하지만 제노사이드로 인해서 살해된 이의 유해를 수습하는 문제는 가족 만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반공국가에 의해서 살해된 가족 구 성원이 무덤을 가질 수 없도록 폭력적으로 금지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장에 대한 반공국가의 금지는 희생자에게 국민의 자격을 박탈하고, 그 유가족들의 사회적 위치 역시 불안하게 만드는 조치였다. 그러므로 제노사이드 과정에서 살해된 가족의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모두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회복하는 수단이었다. 이와 같은 죽음에 대한 격하와 금지는 제노사이드가 전쟁과 같은 다른 집단적 죽음과 구별되는 주요한 지점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 전쟁과 제노사이드 같은 국가폭력을 경험한 사회는 여성들에게 전혀 다른 방향의 모순된 요구를 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남성이 죽거나 실종되는 등 사라진 상황에서 여성들은 집 밖으로 나가 일해야 했다.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가사노동에서 벗어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 생계 부양자가 급격히 증가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전쟁미망인과 같은 남성 가부장이 부재한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사회로 진출해서 일해야 했지만, 동시에 반공국가는 남성 가부장의 통제 바깥으로 나온 여성들을 다시 가정으로 귀속시키고자 했다. 살아남기 위해 생계 부양자가 되어야 했던 여성들은 동시에 ‘현모양처’라는 가족 내의 이상적 어머니로 살아야 한다고 요구받은 것이다. 이는 남성을 전쟁터의 군인으로 동원하고 부족한 노동력을 여성의 사회 진출에 의존하던 국가가 전역하는 군인들을 위해 산업구조를 다시 남성화하는 과정의 산물이자, 전후 핵가족화로 인한 새로운 가족 모델을 만들어가는 시도였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도 돌아올 남성이 없는 가족의 여성에게도 사회는 동일한 요구를 했다. 그리고 정치적 정체성을 의심받아야 했던 좌익 가족은 이러한 요구에 순응하는 일이 곧 생존의 전략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