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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88967350833
· 쪽수 : 306쪽
· 출판일 : 2013-11-18
책 소개
목차
1부 삶生 우리 곁의 나무
1. 도깨비집 소녀와 ‘가중나무’
2. 미뚱지의 가시나무 ‘보리수나무’
3. 마을의 노인나무, ‘산사나무’
4. 근대화와 함께 자란 ‘미루나무’
5. 열일곱 춘덕 엄마의 하나뿐인 혼수 ‘감나무’
6. 성황림의 붉은 행렬 ‘복자기나무’
7. 민초의 지팡이 ‘붉나무’
8. 봄이 오면 내 뿌리의 피눈물을 먹어라 ‘고로쇠나무’
9. 헛것을 본 듯 ‘귀룽나무’
10. 짙은 초록색의 우리말 ‘갈매나무’
11. 첫사랑 소녀의 서표 ‘은행나무’
12. 벽오동 심은 뜻은 ‘오동나무’
13. 법복, 군복, 미영치마 물들이던 ‘신나무’
14. 사쿠라에서 왕벚꽃으로! ‘벚나무’
15. 신을 향한 인간의 추파 ‘향나무’
16. 기름 발라 쪽찐 머리 ‘쪽동백나무’
17. 시린 청춘의 정점, 공단길의 ‘플라타너스’
2부 맛味 산채와 먹거리
1. 젖 떼려고 바르던 쓴맛 ‘소태나무’
2. 김치의 원조 ‘미나리’
3. 강남에서 온 옥빛 수수 ‘옥수수’
4 산채의 영의정 ‘더덕’
5 부지런한 며느리의 홑잎나물 ‘화살나무’
6 자시오 ‘잣나무’
7. 아버지의 도시락 ‘감자’
8 산중의 귀물貴物 ‘머루’
9 민초의 목숨줄 ‘콩’
10. 누이의 못난이손톱 ‘살구나무’
11. 고춧잎나물 ‘고추나무’
12. 산채의 제왕 ‘두릅’
3부 색色 유년의 꽃
1. 작고 귀여운 애첩 같은 ‘고마리’
2. 애향단의 길꽃 ‘코스모스’
3. 만이 누나의 방문 장식 ‘단풍나무’
4. 아버지가 만들어주던 겨울피리 ‘물참대’
5. 쌀에 섞인 돌 고르던 조릿대 ‘산죽’
6. 청군 백군 칠하던 연필꽃 ‘붓꽃’
7. 망국의 한恨 ‘아주까리’
8. 민족의 흥, 빙빙 돌아 ‘도라지’
9. 할머니의 소망 ‘할미꽃’
10. 잡초 중의 잡초 ‘바랭이’
11. ‘박꽃’에서 대박까지
12. 춘래불사춘, 청춘의 시린 추억 ‘목련’
13. 어머니가 남겨주신 쇠영꽃 ‘고광나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땅꾼의 아들인 기태 형은 더 늦기 전에 한글만은 깨치게 하겠다는 부친의 의지로 나이보다 서너 살 적은 아이들과 같이 학교에 다녔다. 형이 가장 잘하는 일은 땅꾼의 아들답게 역시 뱀 잡기였다. 마을 공동작업 때 뱀이 나오면 아주머니건 아저씨건 으레 “뱀이다!” 하지 않고 “기태야!” 했다. 그러면 기태 형은 번개처럼 뛰어와 이미 저만큼 풀숲으로 사라진 뱀을 구멍이 숭숭 뚫린 통일화 발로 재빨리 밟고는, 잡는다기보다 숫제 주워서 나오는 수준이었다. 돌 틈에 들어가 꼬리만 살짝 보이는 놈이건 독이 올라 똬리를 틀고 대가리를 흔들어대는 놈이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맨손으로 집어드는 기태 형이었다. 박쥐를 잡아 팔려고 한겨울에 오함마(큰 망치)로 횟골굴의 바위벽을 깨낸다거나, 한겨울에 보악소의 얼음을 깨고 비료 포대 가득 개구리를 잡는 그 담대함은 이미 초등학생이 아니었다. 가끔 인심 쓰듯 동네 조무래기들을 집으로 불러 뱀통에 든 뱀을 보여주는 일도 있었다. 온갖 종류가 뒤엉킨 뱀을 한 놈씩 집어내 ‘흑질백장’이네 ‘칠점사’네 이름과 값을 일러주며 “이놈한테 물리면 일곱 발짝도 못 가서 죽는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 ‘애향단의 길꽃 코스모스’
소목으로 시작한 아버지의 목수일은 그 솜씨를 인정받아 이따금씩 집을 짓는 대목의 일거리도 받게 되었다. 부모님은 그렇게 번 돈을 전쟁통에 주워둔 탄약통에 모았는데 통에 돈이 가득 차면 땅뙈기를 사거나 송아지를 사서 이웃집에 장려소로 주면서 차츰 재산을 늘려갔다. 그리곤 형을 볼 때마다 “저눔을 낳고 나서 우리 집 재물이 늘어났어. 저눔이 화수분 단지여!” 하고 말씀하곤 하셨다.
아무리 꺼내 써도 재물이 줄지 않고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 ‘화수분’.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몇 년 뒤 어머니의 의지로 낳은 늦둥이 자식이 그 화수분 단지에 들어앉은 ‘고만이’가 될 줄. 고만이는 재물이나 벼슬이 오르는 것을 막아 늘 ‘고만큼’에 머무르게 한다는 귀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화수분 형과 고만이 막내는 그 천성부터가 달랐다. 중학교 땐 해마다 교복을 맞춰줘도 한 철만 지나면 누더기가 되었고 집안의 시계·라디오·전축·재봉틀 등 기계란 기계는 다 뜯어서 망가뜨리곤 했다. 게다가 툭하면 참고서다 뭐다 노인이신 부모님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명목으로 수시로 돈 뜯어가고, 고등학교 땐 남의 애 이빨을 부러뜨려 뭉칫돈이 나갔다. 육성회비다 참고서다, 중학교 때부터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늦둥이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제 돈 관리는 임자가 하구려! 저눔은 우리 집 고매이여 고매이” 하며 혀를 끌끌 차셨지만, 어떤 명목으로건 달라는 돈을 덜 주거나 안 주신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들어가던 해 세상을 떠나셨는데 생전에 하시던 여러 말씀 중 고매이 아들인 내 귓전을 늘 맴도는 말이 있다. “핵교랑 농협이랑 병원은 다 도둑놈이여!”
- ‘작고 귀여운 애첩 같은 고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