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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호러.공포소설 > 한국 호러.공포소설
· ISBN : 9788967998042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23-12-29
책 소개
목차
복행 마을 생활 수칙
여름의 끝자락에 아지랑이처럼 나타나 뱀처럼 움직이는 하얀 것
웃는 원숭이가 사는 산
미공개 로어 10편 선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망자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어 늙거나 병들어 자연사해 속이 비워진 시신, 노동력을 상실한 자의 시신, 분란을 일으킨 사람에게 무라하치부가 내려져 흉흉한 모습으로 떠오르는 시신들이다. 처음엔 구역질이 나올 만큼 역겨웠지만,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 계곡에선, 누군가의 장난으로 만들어진 듯한 불경한 것들이 떠내려올 때가 있는데, 그것에 대해선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무네 씨는 마을의 규율을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래서 사명을 다한 뒤 죽은 속이 빈 망자의 경우 합장을 하고 염을 하기도 하지만, 그 외의 경우엔 험상궂은 욕을 하며 거칠게 다뤄 망자의 사지가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무네 씨가 말하길, 마을에선 죽음으로 비워진 자리는 즉시 73명이 되도록 채워진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기껏해야 20명 남짓이고 강 건너의 집들을 세어봐도 50명이 채 되질 않는다. 그렇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 “복행 마을 생활 수칙” 중에서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행동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어. 피범벅이 된 채 충격을 받아 멍한 표정의 엄마가 뉘어져 있는 짚 더미에 이번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횃불을 들고 와 불을 붙인 거야. 짚에 불을 붙이자마자 엄마 주변으로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엄마는 점점 타들어 가는 짚 더미 속에서 왜 자기가 죽어야 하는지, 왜 자기를 지켜주지 않는지만을 생각하며 처음으로 부모를 원망했대. 불길은 점점 거세졌고, 살이 타들어 가는 통증이 조금씩 느껴지려는 찰나, 외할머니가 달려들어서 물을 끼얹으며 불을 껐고, 외할머니를 도와 외할아버지는 아직 불씨가 남아있는 엄마를 들쳐 안고 끌어낸 뒤 날카로운 농기구들로 엄마의 팔다리를 내리치기 시작했다는 거야. 그러자 엄마 몸에서는 ‘쩍, 쩍’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나면서 드디어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엄마가 움직일 수 없었던 이유는 몸이 석고같이 단단한 것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대. 축 늘어진 엄마를 외할머니는 끌어안으시고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외치셨대.
- “여름의 끝자락에 아지랑이처럼 나타나 뱀처럼 움직이는 하얀 것” 중에서
집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나를 마루에 내려놓으시며 무서운 표정으로 말씀하셨어.
“밖으로 나와도 괜찮다고 할 때까지 절대 나와선 안 돼!”
그리곤 날 다시 번쩍 안아 장롱에 넣어 두셨는데, 피로감에 난 그대로 장롱에서 잠이 들고 말았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구수한 미소국 냄새가 났고 아침 말고는 종일 먹은 게 없었던 나는 배가 꼬르륵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어. 그런데 내가 누워 있던 곳은 장롱이 아닌 잘 깔린 이불 위였지. 어머니는 아침처럼 이로리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고, 아버지는 마루에 앉아 작물들을 낫으로 손질하고 계셨어. 언제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우리 집의 모습이었지. 난 가만히 일어나 입이 찢어지게 하품하며 아버지 곁에 가서 안겼는데, 마당에는 어머니가 널어놓으신 빨래가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그 아래론 아버지가 해 오신 나무토막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며, 또 그 아래론 아버지의 도끼가 물에 담겨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어.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아버지는 굳은살과 향 내 가득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씀하셨어.
“교코, 절대 마을 앞의 안개가 자주 끼는 산에는 가지 말거라. 그 산에는 와라우사루(わらうさる-웃는 원숭이)가 살거든. 와라우사루는 사람의 정신을 이상하게 만든단다.”
- “웃는 원숭이가 사는 산” 중에서